[땅이름으로 보는 조상의 지혜] 서울 순화동

08/10(화) 16:43

서울 중구에 자리한 순화동은 1914년 4월1일, 일본제국주의가 우리 강토를 도륙질하면서 부제(府制)실시라는 이름아래 ‘화천정(和泉町)’이라 부르던 땅이름.

본디, 한성 서부 반석방(盤石坊)의 미전하계(米廛下契), 차동(車洞), 야동(治洞), 순동(巡洞), 자암동(紫岩洞)의 각 일부와 옛 순청(巡廳), 간동(簡洞)을 병합, 오늘날 남대문로 5가에 있는 쪽우물의 뜻을 따서 일제가 화천정(和泉町)이라 부르다가 조국이 광복되면서 1946년 10월1일 왜식 동명 변경때 오후의 순화(巡和)동으로 바꾼 것.

옛날 순라(보초)군의 집이 있었다하여 순청(巡廳)이요, 그 순청에서 비롯된 땅이름이 순동이다. 그 순동을 부드럽게 바꾼것이 순화동.

이 순청골(순동)에는 조선조 정종 때 이조판서(吏曹判書) 강희맹(姜希孟)의 집이 있었고, 그 집 정원에는 대부송(大夫松)이라는 큰 소나무가 있었다.

이 소나무는 연산군(燕山君)이 세자가 되었을 때, 강희맹의 집에 가면 늘 이 소나무 밑에서 놀았으므로 연산이 즉위후 그 소나무에 대부(大夫:정3품) 벼슬을 주고 금띠(金帶)를 둘러 주었다.

그래서 그 집앞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말에서 내리게 하였다.

또한, 순청골의 수렛골(車洞)은 조선조 숙종의 비, 인현왕후(仁顯王后) 민(閔)씨가 태어난 터이기도 하다.

인현왕후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딸로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어, 20여세가 되도록 왕자를 낳지 못하는 것을 죄스럽게 여겨 숙종에게 장희빈(張禧嬪)을 후궁으로 천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23세 되던 해에 도리어 장희빈의 모함을 받아 쫓겨냐 6년 동안 칩거 생활을 하다가 28세에 다시 복위되고 35세에 요절한다.

영조 37년(1761) 8월에 영조는 몸소 인현왕후가 태어난 터를 돌아보고 그 자리에 비를 세워, ‘인현왕후 탄강구기(仁顯王后 誕降舊基)라는 어필을 남기기도 해, 차동을 ‘추모동(追慕洞)’이라 부르기도 했던 역사의 땅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근에 풀무질(대장간)을 하던 풀뭇골(治洞), 자연바위가 있어 ‘자연바위→잽배→자암(紫岩)’으로 부르기도 했다.

순화동은 이와같이 옛 순라(보초)군의 부릅뜬 눈이 사방을 경계하던 순청이 있던 곳에 걸맞게 1919년 7월10일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해임시정부의 국내의 업무연락과 정보수집활동을 펴며, 군자금 모집 등의 목적으로 1919년 7월10일, 나라안에 은밀히 이루어진 지하비밀조직인 ‘연통부(聯通府)(순화동 5번지, 현 동화약품(주)자리)’가 있었으니 ‘순동(巡洞)’이란 땅이름의 지기(地氣)탓일까!

또 그자리에는 서울시가 1995년 8월15일,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연통부’ 기념비를 세워, 선조들의 구국과 나라사랑 얼을 기리니, 수레골(車洞)이 추모동(追慕洞)으로 변한 옛 땅이름의 기연 탓일까!

아 세월이여…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