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송일곤과 폭력에 관한 영화

08/10(화) 16:48

송일곤 감독(28). 불과 넉달전만 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5월 칸영화제에서 ‘소풍’(35㎜, 14분)으로 한국영화 사상 처음 단편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아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 올랐을 때“송일곤이 누구야”라고 물으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이 가장 쉬웠다. “96년 데이콤 CF에서 어머니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리던 그 유학생”이라고. 그러면 대부분 “아, 그 친구”라고 기억해 낸다.

영화학도로 95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긴 세월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는 두편의 단편 ‘간과 감자’(98년)‘소풍’(99년)을 찍었고 두편의 다큐멘터리 ‘광대들의 꿈’(96년)‘물고기들’(97년)을 만들었다.

‘광대들의 꿈’은 제3회 서울단편영화제 우수작품상, 제40회 샌프란시스코영화제 다큐멘터리 동상을, ‘간과 감자’는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이탈리아 시에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소풍’은 지난해 ‘아름다운 시절’이 신인 이광모감독을 띄운 것처럼 이제는 CF를 들먹이지 않아도 송일곤을 기억하도록 만든다. 8일 폐막된 호주 멜버른국제영화제 단편부문에서도 대상을 받았고, 발렌시아영화제, 팜스프링스 단편영화제, 로테르담영화제에 진출해 상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말하는 ‘소풍’은 “우리사회의 폭력성”이다. 그것을 우리 색깔과 정서로 드러냈다. 사업실패와 빚때문에 30대 가장이 차안에서 배기가스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자살한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용어조차 없는 ‘가족동반자살’이 갖는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폭력. 그는 이 시나리오를 4년전에 써놓았다. 어느날 신문 사회면 구석에 난 넉줄짜리 동반자살 기사를 읽고서였다. 가장이란 권리로 행해지는 살인. 무방비 상태에서 희생당하는 아내와 아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인을 하고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소풍’은 결국 우리사회 곳곳에서 행해지는 나쁜 폭력에 관한 영화다. ‘간과 감자’는 보다 근원적인, 어쩔수 없이 일어나는 폭력에 관한 영화다. 성서에 기록된 인류 최초의 살인인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동생의 간을 팔아 감자를 구해 가족의 허기를 채우는 형.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을 용서하는 동생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이유속에 저질러지는 폭력과 희생의 상관관계를 찾아보았다. 준비중인 첫 장편‘칼’(가제)역시 같은 주제다. 칼을 통해 폭력의 구조를 탐색한다. 송일곤은“이 작품까지 하고나면 ‘폭력’이란 화두가 풀릴것 같다”고 했다.

그가 왜 이토록 ‘폭력’이란 화두에 집착할까. “20대 후반인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주변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누구를 죽이고, 복수하고…. 이런 일이 너무나 많다. 우리사회는 너무나 폭력성이 많다”고 했다. 중학시절 그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무방비상태에서 폭력으로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때의 아픔과 기억을 그는 아직 갖고 있다. “자라면서 눈을 크게 떠보니 그 폭력은 인간관게, 사회, 역사에 무수히 존재하고 있을을 발견했다. 시대가 변할 때마다 폭력과 희생이 다르고, 심청이나 에디푸스같은 희생양들이 반복해 나타난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시절 모든 것에 저항했다. 학교와 사회체제가 싫어 머리깎고 산에 들어가기도, 섬에서 지내기도 했다. 바로 폭력과 희생의 시대인 80년대였다. 그가 자신의 표현수단인 영화를 만났을 때, 그 폭력의 실체와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얘기하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김현씨의 책 ‘폭력의 구조’를 읽고 생각을 정립했다고 한다.

우리는 영화에서 무수한 폭력을 보아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오락(액션)이었다. 복수와 원한을 갚는 수단으로, 아니면 통제와 억압의 수단으로서 폭력은 영화에서 언제나 화려하고 잔인했다. 그 뿐이었다. 송일곤의 말처럼 지금도 우리는 보이건, 보이지 않건 무수한 폭력속에 살면서 그것을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거나 망각하고 있다. 어쩌면 송일곤의 영화야말로 진짜‘폭력영화’인지 모른다. 끔찍한 현실의 한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우리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하는. leedh@hk.co.kr

이대현·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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