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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군으로 가는길] 한반도 주변국 군이 바뀐다

생존욕구를 가진 모든 것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군도 예외일 수 없다. 적자생존이 자연계의 법칙이듯이 전략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군대는 패하기 마련이다. 급속한 과학적 진보와 정보화로 요약되는 현대의 변화추세는 군에도 과학화를 요구하고 있다. 선진국 군대들이 앞다퉈 군사혁신(RMA)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RMA는 그러나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정치적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군도 사회의 한 부분인 만큼 사회·정치환경에 구속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구소련 군대의 흥망에서 잘 드러난다.

RMA 개념을 처음 창출한 것은 구소련 전략가들이었다. 그것도 미국보다 10여년이나 앞선 70년대였다. 당시 구소련 전략가들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각각 한차례의 군사혁신이 일어났다는 전제하에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혁신방향을 내놓았다. 이들은 1차대전 당시 항공기와 철도, 전차 등 기계화 장비, 장거리포, 기관총이 출현하면서 전략·전술의 변화를 가져 왔다고 말했다. 항공모함과 수륙양용 장비, 레이더, 미사일, 핵무기의 등장은 2차대전 중에 일어난 군사혁신의 촉진제.

구소련 전략가들은 1, 2차 세계대전에 이은 새로운 군사혁신은 소형화, 자동통제 시스템, 탐지기술, 정밀유도무기 등에 의해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구소련은 80년대 고르바초프 서기장 당시 첨단무기의 개발과 운용을 위한 혁신에 착수했다. 그러나 구소련의 RMA는 소련의 붕괴에 뒤이은 사회경제, 정치적 혼란속에서 채 피기도 전에 고사해 버렸다. 90년대 들어서도 러시아는 경제와 방위산업의 피폐로 여전히 군사혁신 방면에서 미국에 엄청나게 뒤져있다.

러시아는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 하원(두마)이 97년 봄에 통과시킨 ‘군개혁 법안’이다. 이 법안은 군대와 군조직, 방위산업, 전시동원용 자산, 징병체제, 장병복지, 군사예산 등 전반적인 문제에서 군의 질적인 향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군개혁 법안의 통과에 뒤이은 논쟁을 통해 러시아는 군사개혁 방안에 대한 대체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러시아 두마 군사위원회의 알렉세이 아르바토프 부위원장은 계간 ‘국제안보(International Security)’지 98년 봄호 기고문에서 합의점을 4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경제에 과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가까운 장래에 직면할 수 있는 실제적 위협과 긴급사태에 대비할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질적향상을 위해 양적인 측면을 일방적으로 희생할 수는 없다. 셋째, 지구적 규모의 장기전에서 지역분쟁과 단기전으로 군의 대비태세를 바꿔야 한다. 넷째,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와 지정학적 취약성을 상쇄하기 위해 핵전력에 최고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이것은 탈냉전 시대 러시아의 RMA 방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대규모 전쟁을 염두에 뒀던 과거의 전략을 수정하는 대신, 경제력에 걸맞는 소수정예 군대로 점차 재편성한다는 것이다. 옐친 대통령이 최근 기존의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겠다고 구상을 밝힌 것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러시아가 구소련의 군사적 명예를 조기에 회복할 수 있을 지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핵강국의 면모를 유지하면서 군사운용체제를 정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계속 주요 행위자로 남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러시아는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핵탑재용 장거리 미사일 ‘토폴’의 발사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러시아가 재기에 발버둥치고 있다면 중국의 과제는 새로운 군사력을 건설하는 것이다. 중국은 95년 군사력 현대화를 위한 5개년 계획과 15개년 장기계획을 수립해 전략정립과 정보전 능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96년 5월 미육군대학원의 전략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RMA 전망은 이중적이다.

보고서는 현재 중국군의 과학기술적 능력은 미군에 비해 20년 이상 뒤져 있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군이 현대화를 차질없이 수행하더라도 2015년께 가서야 겨우 1990년대 미군의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그러나 중국군이 추진중인 RMA, 이른바 ‘중국적 특색의 군사정예화’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앞으로 대응에 상당한 난점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군사혁신의 목표로 삼고 있는 ‘첨단기술조건하의 제한전쟁(高技術條件下局部戰爭)’은 미국이 걸프전에서 보여준 전쟁수행 능력을 모범으로 삼고 있다. 중국이 가장 부족한 신속전개, 원거리 작전, 전자전 등 방면에서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250만명에 달하는 중국군을 모두 이같은 방향에 따라 개편하는 것은 경제능력으로 봐도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군이 추진중인 RMA의 방향은 첨단기술부대와 재래식 부대, 정규군과 민병대를 결합해 전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군대로 수렴하되 병력자원의 우세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과 조직개편에 주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첨단기술하의 제한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중국이 양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지상군 전력은 약 12개 사단. 7대 군구별로 1~2개 사단을 중핵으로 삼아 이들 부대를 전장으로 신속히 전개시킬 수 있는 수송수단과 각종 전자전 장비를 보급하고 있다. 이와함께 러시아제 수호이 27, 수호이 32 등 첨단 전투기와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2척, SSN 22 대함 순항미사일을 도입해 해·공군의 정예화도 상당한 진척을 보았다.

현재 중국군의 고급간부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참전 경력을 갖고 있다. 미국의 엄청난 화력과 물량공세를 경험한 것이다. 국공내전의 영웅 주더(朱德)원수는 “우리는 어떤 무기를 가졌는가에 따라 어떤 전쟁을 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군의 생각은 달라졌다. “우리는 어떤 전쟁을 할 것인가에 따라 어떤 무기를 보유할 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인해전술의 대명사 중국군이 80년대 이후 병력을 150만명을 줄였다는 사실은 중국군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시사한다.

일본은 95년 수립한 ‘신방위계획 대강’과 97년의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 라인)’개정을 통해 군사력 재정비와 국제안보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영국의 ‘전방우선 계획’, 프랑스의 ‘2015년 신군사력 모델’, 독일의 ‘국방정비 지침’등도 국방 합리화와 군사혁신을 위한 방안들이다.

특히 일본은 과학적 능력을 바탕으로 RMA에서 미국을 제외한 여타 선진국에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 미 랜드연구소의 연구결과다. 랜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은 전자시스템, 항공기 시스템, 탐지장비, 정밀유도 무기, 스마트 폭탄, 세라믹 엔진, 스텔스 기술, 잠수함 관련 기술을 특히 중요시하고 있다. 랜드연구소는 이와 함께 일본 자위대의 교육이 창조성과 사고의 독창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첨단무기가 승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척도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첨단무기의 효율을 최대화할 창조적 사고와 세련된 조직, 전략이다. 이같은 사실은 과거의 전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차대전 초반 독일이 항공·전차·보병부대를 결합한 전격전을 통해 순식간에 프랑스를 유린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독일군의 무기와 기술수준은 프랑스와 비슷했지만 각군을 통합운영하는 전략·전술적 측면에서 우위에 있었던 덕분에 승리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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