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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군으로 가는길] 미국, 2020년 군사혁신 완료

‘첨단기술은 미군을 고향으로 불러 들일 수 있을까?(Can High Technology Bring U.S. Troops Home?)’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할론 교수가 계간 ‘외교정책’ 98년 겨울호에 실은 기고문의 제목이다. 그는 이 글에서 현재 미국에서 진행중인 군사혁신(RMA)에 관한 논쟁의 초점은 ‘첨단과학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고 말했다.

RMA에 대한 논쟁이 과학과 인간의 대체 가능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것은 냉전종식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탈냉전 시대의 대규모 군사비 지출은 필연적으로 정당성 논쟁을 낳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1년 군사예산은 약 2,700억 달러, 병력수는 140만명에 달한다. 물론 80년대 후반에 비해 30%가량 감축되긴 했지만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비둘기파는 “앞으로 15년 이내에 미국의 국제적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적 경쟁세력이 출현할 가능성은 없다”는 전제하에 국방비를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군비 옹호론자들은 이를 한마디로 일축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전략평가 연구소는 “2020년까지 지역패권, 세계패권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으리라 낙관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라고 강변한다.

인간과 과학의 대체 가능성이 부상한 것은 바로 이같은 논쟁을 중화시킬 수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첨단기술 병기로 재래식 무기와 병력을 대체해 나가면 예산은 줄이면서 전투력은 오히려 향상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B2 스텔스 폭격기의 예를 들어보자. 기존의 폭격기는 자체 방어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출격할 때는 반드시 요격 전투기의 엄호를 받는다. 폭격기 1개 편대가 출격하면 요격기도 1개 편대가 같이 떠야 하는 만큼 부가적인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결국 폭격기의 운용을 위해 상당수 요격기 편대를 유지·관리하고 조종사를 양성·유지하는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는 셈이다.

스텔스 폭격기는 이론상 이같은 문제를 깜쪽같이 해결할 수 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아 적의 미사일과 적기로 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요격기의 엄호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스텔스기가 대당 2억 달러의 가격(일반 전투기의 4배 이상)에도 불구하고 효용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텔스기는 이와 함께 한번의 공중급유 만으로 지구를 반바퀴 돌 수 있는 장거리 비행능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이라크와 코소보 전투 때는 미 본토에서 발진한 스텔스기가 인도양에서 공중급유를 받은 뒤 폭격임무를 마치고 다시 귀환하기도 했다. 이같은 견지에서 본다면,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유럽 각국에 재래식 폭격기 편대를 전진배치할 필요가 없다. 미군의 전진배치가 정치·외교적으로 점점 골치인 상황에서는 더욱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다.

현재 미국의 해외 주둔군은 아시아 10만명, 유럽 10만명을 비롯해 총 25만명이다. 해외주둔군의 장비, 교육, 월급 등 비용으로 매년 500억달러가 든다. 예산감축 시대에 해외주둔군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작전중 미군이 사망할 경우 초래되는 국내정치적 부담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간과 과학의 대체 가능성은 이미 미국의 최고 국방 관계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또 현실화하고 있다. 1997년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은 클린턴 2기 행정부의 국방정책을 정립한 ‘4년주기 국방검토(QDR)’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RMA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국방부의 RMA 계획을 거듭 밝힌 것이다. 로널드 포글먼 공군참모총장은 한 발 더 나아가 21세기 첨단기술혁명의 비전을 자신만만하게 제시했다. “21세기 초반 미군은 지구표면에서 움직이거나 설치된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발견, 추적,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미 국방부 전략평가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미군이 추진중인 RMA의 방향은 대체로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장거리 정밀타격. 원거리에서 적의 작전 및 전략상 중요 목표를 정확하게 타격해 행동불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 전자전 우위. 통신방해, 통신기만 등을 통해 적의 정보수집 능력을 무력화하고 아군의 정보능력은 극대화하는 것이다. 셋째, 기동성 우위. 제공권 장악과 수송능력 혁신을 통해 병력을 적시적소에 신속 투입하는 한편, 적의 병력이동 속도를 지체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은 전방위 방호체계. 전장에서 적의 공격과 진행방향을 사전 감지해 아군에 경고하고 필요한 명령을 실시간으로 내리는 것이다.

이같은 구상은 한마디로 미군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미국의 전지구적 작전능력을 고스란히 유지·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아시아와 유럽에 10만명씩 전진배치하는 기존의 전략이 수정될 수도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 경우 미국은 한반도에서도 한·미동맹 유지를 위한 상징적인 수준의 병력만 잔류시킨 채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있다.

RMA는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포괄적인 정책과 전략적 판단, 그리고 장래 출현할 미국의 경쟁자와 경쟁자의 군사적 특징에 대한 예측에 따라 진행되기 마련이다. 미국 예일대의 폴 브라켄 교수는 21세기 미국이 직면할 수 있는 도전을 3가지로 나누고 있다. 전지구적 패권 경쟁자와 지역패권 경쟁자, 테러집단의 저강도 전쟁이 그것이다.

미 고위 군관계자들은 대체로 2020년께 미군의 RMA작업이 일차적으로 완료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 때까지 첨단과학 장비가 일반화하고 이들 장비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한 군조직 개편이 마무리된다는 의미다.

왜 2020년일까. 다수 미 전략전문가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이 때까지 미국에 대항할 전지구적 경쟁자가 출현할 가능성은 적지만, 그 이후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잠재적 경쟁자가 등장하기 전에 준비를 완료한다는 의미다. 물론 이 기간 동안 군사문제에 관한 국내의 정치적 논쟁이 정리되고, 이에 맞춰 고통스러운 구조개혁도 마무리될 것이다.

기술혁신의 특징은 ‘부익부 빈익빈’이다. 강한 자는 더 강해지고, 약한 자는 더 약해지는 상대성을 갖고 있다. 강대국 지위를 탐내는 국가들이 기를 쓰며 탐내는 항공모함을 예로 들어 보자. 미국에서는 이미 항공모함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무용론자들은 “항공모함은 1940년대 기술의 산물이며 21세기에는 낙후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항공모함은 많아야 70~80대의 함재기를 운용하는 고철 활주로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장거리 스텔스 폭격기와 순항미사일이 함재기의 기능을 대체하고 있는 판에 척당 5,000여명을 태우고 바다에 달러를 뿌리며 다니는 항모가 왜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여기서 나온 것이 일명 ‘병기선’구상이다. 대량의 미사일을 탑재한 스텔스형 군함을 분쟁예상지역 주변해역에 띄워 놓고 필요할 경우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병기선 주창자들은 인원과 비용이 항모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싼 반면, 효과는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중진국이 항모를 건조해 운용하기 까지 걸리는 기간은 짧아야 10년. 진수할 때 쯤이면 미국은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저만큼 앞서 가고 있을 것이다. 기술격차는 상상력의 차이를 낳고, 상상력은 전쟁의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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