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표류하는 대우] 대우차에 실은 김우중의 마지막 꿈

“여건만 허락한다면 당장이라도 푹 쉬고 싶다. 그러나 불명예퇴진은 죽는 것보다도 싫다.“

김우중회장의 측근들이 전하는 그의 최근 심경이다.

세계에 400여개의 현지법인을 거느리던 ‘20세기의 징기스칸’김우중. 그는 올 7월 19일 대우 유동성개선대책을 내놓을 당시만 해도 대우전자, 대우중공업등 그룹내 주요 계열사를 정리해 자동차부문을 강화시키고 나면 대우증권과 ㈜대우 건설부문등까지 거느린 소규모 그룹으로 재도약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장이 그의 꿈을 앗아갔다. 금융시장은 대우 회생이 불투명하다고 판단,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직전을 방불케하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부가 대우를 산산히 쪼개 팔겠다는 선언하고 나서야 시장은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대우는 결국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그룹해체, 극심한 충격으로 방황

해체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극심한 심리적 충격과 방황을 겪어야 했다. 그가 지난달 12일 리비아로 출국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당시 정부의 대우증권 매각 방침이 전달되자 김회장은 모처에서 채권단의 한 은행장을 만나 “도대체 팔아보았자 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몇 푼 도움도 되지않는 대우증권을 굳이 매각하려는 의도가 무엇이냐“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대우증권 매각은 그의 생명줄 단절을 의미했다.

김회장은 이날 정부와 채권단의 방침이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당일 오후 미수금반환 협상을 벌이러 간다며 최측근에게만 알리고 리비아로 출국해버렸다. 그는 리비아에 이어 중동지역을 방문하며 미수금반환 협상을 편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느 나라에서 누구와 만났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8월 25일 청와대 정·재계간담회를 앞두고 정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회장 귀국을 종용하고 나설 때까지 10여일 동안 그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결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나름대로 심경을 정리한 듯하다.

청와대 간담회 직전 정부의 대우 워크아웃 방침을 통보받았을 때 그는 저항없이 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 간담회 후 28일로 예정된 우즈베키스탄 카리모프대통령을 만난 김회장은 29일 귀국했다.

김회장은 외견상 30여년 쌓아올린 초대형 다국적그룹 총수에서 2~3년 후 퇴진해야할 자동차전문기업 경영자로 전락한 인상이다. 그러나 불과 1개월여만에 이같은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역할을 다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측근들은 그의 정신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자동차를 정상화시킨 후 퇴진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그의 관심은 이제 ‘대우자동차를 어떻게 도약시키느냐’인 것으로 보인다.

김회장은 요즘 오전 7시면 부평공장으로 출근, 아침 회의를 시작한다. 김태구사장, 김석환부사장 등은 고정 멤버고 회의내용에 따라 참석자 범위를 조정한다.

그는 하루에도 5~7차례씩 회의를 열 때가 많다. 부서별로 집무실로 불러 회의를 갖기도 하지만 가까운 부서는 직접 찾아가 회의를 주재하기도 한다.

수출부서와의 회의 때는“외상거래를 하던 거래처가 현금으로 거래하자고 나올 것이다. 하지만 본사에서 지원해주기가 어렵다. 현지에서 관리를 철저히 하고 여유자금이 있으면 본사로 곧장 송금토록 하라”고 직접 지시한다.

회의가 없을 때는 자동차 각 분야에 대해 연구한다. 신차 프로젝트에서 엔진까지 과목도 다양하다. 궁금한게 있을 때 사장이 자리에 없으면 실무자를 직접 찾고 그래도 답답할 때는 직접 사무실로 뛰어간다.

퇴근은 일러야 오후 9시. 자정까지 사무실에 머무르는 것도 종종 목격된다.

김 회장은 요즘‘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어려운 회사사정과 이로인해 흔들리는 직원들 때문이다. 자신이 나설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책임감만큼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그래서인지 외부와의 접촉은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외출은 물론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는 회수도 크게 줄었다.

다만 꼭 필요한 외부 행사는 챙기고 있다. 이달 1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자격으로 제3기 노사정위원회 위원위촉장 수여식과 제1차 회의에 참석했고 9일에는 전경련 월례 회장단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김회장은 장기간 외유에서 돌아온 후 공식행사로는 처음으로 지난 4일 경기 용인 대우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지점장 영업력 강화 세미나’에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선단식 공격경영 재벌총수’에서 ‘자동차 전문경영인’으로 새롭게 탄생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회사를 이끌어온 사람으로서 대우가 워크아웃에 처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세계 경영으로 해외 시장 선점 등 성과를 거두고 투자비 회수 단계에 이르렀으나 해외사업에 주력하다보니 국내 자금시장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고 최근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21세기를 대비해 자산, 매출보다는 캐시플로우(현금흐름)와 이익을 중시하는 회사로 변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향후 자동차 내수와 A/S, 부품 등 서비스 선진화에 주력하겠다. 대우자동차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 선진국 사업을 한국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룹내 다른 회사를 팔아 자동차 부채를 줄이고 집중투자할 계획이라며 워크아웃이 끝나면 좋은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회장은 신차에 강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인상도 풍겼다. 그는 “올해와 내년중 선보일 신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특히 올 하반기 출시하는 신차가 성공해야 회사 이미지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현재 세계 17위인 대우차를 10위로 올려놓고 퇴진하는게 마지막 꿈이다. 최선을 다하고 깨끗한 경영을 통해 모범적인 경영인으로 마무리하겠다”고 말을 맺었다.

김회장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천적으로 엄청나게 부지런한 분’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소유욕보다 성취욕이 강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회장은 외견상 만신창이가 된 요즘에도 측근들에게“지금이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도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한다.

빚을 내 사업을 확장하는 경영방식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는 우리나라의 역대 어느 재벌과 달리 2세 세습체제를 반대한 독특한 경영자다. 그는 샐러리맨에서 출발해 세계 초대형 다국적그룹에 당당히 맞서 경쟁한 한국인의 표상이기도 했다.

많은 젊은이들은 앞으로 김회장이 자동차정상화에 성공해‘영원한 청년의 우상’으로 남기를 기대하고 있다.

박정규·경제부기자 jkpark@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5월 제2829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2020년 03월 제2820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