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표류하는 대우] 국가 '大憂'로 치닫는 대우사태

대우사태가 꼬이고 있다. 지난 7월19일 “4조원의 자금만 지원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시작됐던 정부의 ‘대우그룹 구출작전’이 불과 두달동안 대우그룹 처리원칙이 자력회생→워크아웃→은행관리 등으로 3번이나 수정되는 등 혼선을 거듭하면서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따라 대우그룹 협력업체가 연달아 도산하고, 수출 차질액이 15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대우의 위기’가 자칫 ‘한국의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태다.

우선 대우사태의 충격은 한국 경제의 유일한 살 길인 수출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우그룹에 따르면 ㈜대우의 채권 은행단이 자금지원을 미루면서 ㈜대우의 9월중 수출 목표액이 60%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대우그룹 관계자는 “채권 은행단이 자금 지원을 지연시켜 내국 신용장이 개설되지 않을 경우 대우의 9월 수출 목표액인 18억5,000만달러중 6억5,000만달러만 수출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8월달에도 16억8,900만달러를 수출목표로 정했으나 은행이 지원기피로 12억5,700만달러 밖에 수출하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대우의 수출차질액은 15억달러를 넘어서는 셈이다.

협력업체들 무더기 도산위기에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대우그룹 협력업체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채권단이 추자자금 지원이라는 기본적 원칙에는 합의하고도, “그러나 우리 은행은 안된다”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면서 세계물산 등 6개 대우그룹 관계회사들이 이미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나머지 협력업체 역시 자금난이 심해질 경우 이달 중 무더기 도산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우위기가 심화되면서 철강, 고무, 플라스틱 공급업체들이 대우그룹 협력사에 현금결제나 추가담보를 요구, 공급량을 줄이면서 심각한 원자재난을 겪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의 대우자동차 협력업체인 C사는 최근 철강업체인 P사가 현금을 주지 않으면 철강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하는 바람에 현금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남동공단의 또다른 대우 협력업체인 H사도 대기업계열 플라스틱 공급업체인 L사가 공급량을 대폭 줄임에 따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부품생산에 필수적인 몇몇 품목의 경우 공급량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 앞으로 협력업체들의 부품납품에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협력업체 지원방안은 ‘생색내기’일 뿐이다. 대우전자 납품업체인 Y사의 자금담당자는 “정부가 대우그룹에 대한 지원방안을 내놓으면서 5억원 특례보증을 내세우지만 어지간한 규모의 협력업체는 한달에 할인받는 액수가 10억원을 넘어간다”며 “2주일을 버티고 그 다음에 쓰러지란 말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대우자동차 협력업체인 H사 관계자는 “9월6일 채권 금융기관이 가까스로 대우그룹에 대한 지원방침에 합의를 했지만 자금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럴 거면 왜 워크아웃을 신청했는지 모르겠다”며 정부대책을 비판했다.

우왕좌왕 정부대책, 일 더 꼬여

그렇다면 당초 정부의 장담과 달리 대우사태가 꼬이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정부의 적절치 못한 상황파악과 대응이 대우사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부실기업 정리에는 필연코 손실이 발생하는데도 정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은채 대우처리에 나선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투자 리스크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수익증권 가입자들에게 정부가 대우채권의 환매를 자제하는 조건으로 사실상 원금 보호를 약속한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그룹을 시장에 맡기겠다고 공언한 약속을 정부가 지키지 않은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다. 정부는 7월19일 4조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면서 “대우그룹을 가장 잘 아는 김우중 회장의 경영권은 인정하겠다”고 밝히고 “모든 것을 시장원리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가의 대폭락과 투자자들의 환매사태로 금리가 급등하자 당초의 방침을 번복해 8월26일에는 ‘12개 계열사의 워크아웃’을 발표했고, 이 마저도 채권 금융기관의 이기주의로 비틀거리자 결국 9월6일에는 사실상의 은행관리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4조원에 불과하던 대우에 대한 자금지원 규모는 이미 10조원을 훌쩍 넘어버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서 실패한 경영으로 낙인찍힌 대우그룹을 시장원리로 처리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며 “정부가 대우사태 초기에 시장원리를 고집, 결과적으로 대우에 투입될 자금규모만 늘려 버렸다”고 지적했다.

부도·실업증가, 경제전반에 ‘암운’

한편 대우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서울지역 어음부도율이 위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는가 하면 하락세로 돌아섰던 실업률도 또다시 꿈틀거리는 등 경제전반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8월중 서울지역 어음부도율은 1.58%로 7월(0.11%)에 비해 1.47%포인트나 상승했다. 서울지역 어음부도율은 97년 12월 2.25%를 기록한 이후 98년 1월 0.58%, 5월 0.49%, 99년 3월 0.10% 등 지속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해 왔는데 대우사태가 또다시 부도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우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융통어음이 부도처리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대우를 제외한 부도율은 0.09%로 전월에 비해 오히려 0.02%포인트 떨어졌다”고 말했다.

대우사태는 내년 중반까지 실업자수를 100만명 이하로 낮춘다는 정부의 실업률 관리목표까지 위협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자금사정에 압박을 받고 있는 대우협력 업체들의 도산이 현실화할 경우 올해 하반기 실업률을 5%대로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목표는 사실상 물건너 갈 것이라는 일반적 예측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재 6.1%까지 떨어진 실업률을 5%대로 끌어 내리려면 6만~7만명만 줄이면 되지만 대우사태로 오히려 최고 10여만명의 실업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 모로 보나 대우(大宇)가 대우(大憂)로 변하고 있는 위기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