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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무기화시대] 쌀... 식량안보가 위협받는다

21세기 한국 농업이 직면할 가장 큰 도전은 쌀농사의 생존 여부다. 95년부터 빗장이 풀린 외국산 쌀 수입확대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쌀농사의 운명을 좌우할 외국산 쌀 수입폭 결정이 상당부분 한국의 손을 떠나 있다는 사실이다.

차세기 한국 쌀농사의 운명이 다음달 국제회의에서 도마 위에 오른다. 11월30일부터 12월3일까지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제3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그 출발이다. 이 회의를 계기로 WTO 차기 농산물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번 협상에서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 교역 자유화와 다른 농산물들도 테이블에 오르지만 역시 한국에게는 쌀이 가장 관심거리다. 쌀 이외의 다른 곡물들은 이미 자급률이 심각하게 떨어져 사실상 수입이 자유화한 상태기 때문이다.

WTO 농산물 협상, 쌀시장 개방 불가피

차기 농산물 협상은 93년 12월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의 후속 협상이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쌀 관세화 유예 대상국’으로 지정돼 수입 전면 자유화는 일단 면했다. 대신 국내 소비량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최소시장 접근물량(MMA)’방식으로 95년부터 쌀을 들여 왔다.

MMA 방식을 택하더라도 수입 비율이 자동적으로 높아지면서 수입쌀의 양도 대폭 늘어났다. 95년 국내소비의 1%에서 올해는 2%로 늘어 수입된 쌀은 10만톤에 달했다.

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한국은 2004년까지 쌀의 관세화를 유예하되 2005년 이후의 관세화 유예 연장 여부는 2004년 중에 재협상키로 돼 있다. 다음달 부터 열리는 농산물 협상은 바로 2005년 이후를 위한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도 한국은 농산물 수출국들로 부터 거센 개방공세를 받을 것이 확실하다. 한국은 일단 2005년 이후에도 관세화 유예 연장, 즉 MMA 방식의 수입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국들은 관세화 유예 연장은 절대 안될 뿐 아니라 농업상 개도국 지위도 더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나아가 이들은 쌀을 다른 농산물과 패키지로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품목으로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한국은 다른 농산물 수입을 늘리는 대신 쌀수입량을 제한하기가 매우 곤란해 진다.

한국에게 이번 협상은 93년보다 더 어려울 전망이다. 쌀수입 문제에서 한국과 한편이었던 일본이 올해 4월부터 MMA 방식에서 관세화로 조기에 선회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이 MMA 방식을 고집할 경우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협상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쌀농사 고사 가능성

물론 한국도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관세를 높게 물려 수입을 억제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위험부담이 있다. 우선, 일단 관세화한 이후에는 비관세화 조치로 복귀할 수가 없다. 국제가격이 대폭 하락할 경우 쌀수입이 급증할 우려도 있다. 또한 차기 협상에서 고율관세가 대폭 삭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수출국들은 시장접근 확대를 위해 수입물량 확대와 관세인하를 강력히 주장해 왔다. 관세화한 품목에 물리는 고율관세가 사실상 수입제한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수입개방 효과가 미흡하다고 보는 것이다. 관세화 후 수입국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시행할 수 있는 ‘특별긴급관세제도’도 자의적으로 발동될 가능성이 높다며 철폐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 쌀농사는 고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쌀 자급도는 104.5%. 먹고 약간 남아도는 수준이다. 쌀 생산농가는 109만8,000호로 총농가 중 77.7%를 차지한다. 정곡기준의 총생산량은 509만7,000톤이고 호당 생산량은 4.6톤(32석)이다.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한국의 쌀농사는 국제경쟁력이 없다. 국산쌀값이 미국산에 비해 4~5배 높고 중국산, 동남아산과 비교해서도 한참 비싸다. 외국쌀을 싸게 수입해 먹으면 가계부담이 줄고, 그만큼 다른 공산품에 대한 소비여력이 생긴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하지만 쌀을 단순히 단기적, 경제적 관점에서만 봐도 좋을까.

돈주고도 식량 못사는 시대 올수도

21세기 불확실성 중의 하나는 세계적인 식량수급 문제다. 현재 수요자 위주의 세계곡물시장이 공급자 위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돈주고도 식량을 못사는 ‘식량의 무기화’시대를 의미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농가당 3명의 부양가족이 있다고 칠 때 쌀농사에 의존하는 인구는 약 330만명이다. 쌀농사 피폐로 초래될 실업문제,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이 심화할 것은 자명하다. 논이 가지는 유수(留水)효과도 적지 않다. 논이 없어지면 장마철 빗물이 하천으로 바로 유입되고 수해의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두차례의 석유파동을 돌이켜 보자. 기름값이 오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고 유화제품이 비싸면 소비를 줄이면 된다. 하지만 굶고는 못산다. ‘사흘굶어 담 안넘어 가는 사람없다’는 속담은 식량위기와 식량무기화 시대의 위험을 압축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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