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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을 찾아라] 근거있는 일확천금의 꿈

진귀한 보석과 문화재를 가득 실은 보물선을 찾고자 하는 욕망은 모험을 즐기고 부귀 영화를 꿈꾸는 인간 본성의 하나다. 그로인해 수세기에 걸쳐 숱한 탐험가와 몽상가들이 이 꿈을 쫓아 일생을 바쳐왔다. 그러나 성공보다는 좌절과 실패를 맛본 사람이 훨씬 많다. 정말 ‘운’좋게 일확천금을 챙긴 사람도 없진 않았지만 이 경우도 대개 비밀에 붙여져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보물 발굴에 성공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초창기 보물선 탐사는 영국의 R.L.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로 해적들의 근거지인 무인도 은밀한 곳에 은닉한 금은 보화를 추적하거나, 풍랑을 맞아 침몰한 해적선을 찾는 것이었다. 8세기 스칸디나비아반도 부근을 휩쓸었던 ‘바이킹’이나, 16세기 영국과 프랑스 해역을 주름잡아던 ‘파이리트(Pirate)’, 카리브해 부근에서 악명이 높았던 ‘버캐니어(Buccaneer·고기를 훈제하는 사람)’등이 대표적인 해적들이다. 동양에서는 원(元)말, 명(明)초 시대의 ‘왜구’, 15세기 무렵 중국의 ‘해구’등이 있었다. 당시의 노획품은 소량의 금과 비단, 도자기, 가죽, 향료 등이 대부분이었다. 탐사 기술도 열악해 얕은 곳에 빠진 배에 들어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무자비한 약탈이 만들어낸 보물선

보물은 항상 약탈과 깊은 상관 관계를 맺고 있다. 예전의 보물선은 해적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근대화가 한창이던 1930년대 지구상에는 또 한번 보물선이 만들어질 대규모 약탈이 자행됐다. 바로 ‘대동아 공영권’을 표방하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전쟁 비용과 전후 복구비 마련을 위해 한반도를 비롯한 중국, 동남아 각국에서 조직적이고도 무자비한 약탈을 시작했다.

특히 일본 패망이 가까왔던 1940년대초 한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서 사령관을 지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 일본군 대장은 약탈한 금괴를 필리핀 땅굴속에 숨겨놓거나, 병원선으로 위장해 일본으로 실어 보냈다. 그중 상당수가 연합군에 포착돼 한반도와 필리핀 근해에서 침몰됐고 그러면서 ‘야마시타 보물선’이라는 ‘전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확인되진 않았지만 그 보물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간간이 들려왔다

‘야마시타 보물’의 진실은 제2차 대전이 막 끝날 무렵부터 시작됐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보물의 장본인인 일본군 대장 야마시타 도시유키가 1945년 10월 전범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됐을 때 연합군의 맥아더 장군은 히로히토 일본 국왕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야마시타에게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털어놓도록 설득해주면 총살형에 처할 야마시타의 죄를 감형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히로히토는 보물이 숨겨진 172곳중 야마시타가 2곳 정도만 미국에 알려줘 야마시타를 풀려나게 한 뒤 나머지 금괴를 모두 찾아 전후복구비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그에게 친서를 보낸다. 국왕의 편지를 받은 야마시타는 몇 군데 은닉처를 알려주었고 미국은 CIA의 전신인 OSS(전략서비스기구)의 지휘 아래 2년반의 탐사를 거쳐 수천만달러 상당의 금괴를 찾아냈다. 미국은 이같은 일을 비밀에 붙인 채 일절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것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르코스, 보물 밑천으로 대통령까지

‘야마시타의 보물’로 인생이 바뀌 예로는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이 자주 회자된다. 물론 이 역시 명확히 확인바는 없다. 그러나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 마르코스 보물 이야기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필리핀 북 일로코스에서 변호사일을 하며 지역 의회 의원으로 할동하던 그는 그해 봄 왕위군 고참병에게서 밀린 월급을 받아 달라는 두명의 노동자를 만나게 된다. 그들로부터 마르코스는 군 기지 부근 웅덩이에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곳에 가서 사실을 확인한 마르코스는 곧바로 무장한 군인을 동원해 일본 경비원들을 죽이고 2톤이 넘는 금괴를 차지한다. 그뒤 마르코스는 5년간 일본 정치인과 사업가를 통해 다른지역 보물 지도를 손에 넣게 되고 이를 가지고 상당량의 야마시타 금괴를 추가로 찾아낸다. 결국 마르코스는 1965년 이 자금을 무기로 대통령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후에도 마르코스는 도쿄로 보낸 군 문서에서 캠프 아퀴날도 국기 계양대 아래에 금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2,000톤에 달하는 금괴와 귀중품을 독차지하는등 ‘아시아 최고의 부자’로 군림하게 됐다. 그런 연유로 그의 왕궁앞에 금 제련소가 있었다.

90년대 중반이후 동남아 등지서 보물발견

야마시타 보물은 ‘꿈을 쫓는’ 이들에 의해 90년대 중반 이후 수차례 발굴됐다. 94년 6월 민다나오섬에서는 순도 90%의 금괴 수백개가 발견됐다. 이 금괴는 섬의 남쪽 깊숙한 동굴에 가지런히 쌓여져 있었는데 다른 것들과 달리 주변에 부비 트랩이 설치돼 있지 않아 쉽게 꺼내졌다. 당시 발견한 양은 약 2,075톤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해 7월30일에도 정교하게 설계된 185피트 깊이의 동굴 안에서 상당한 금괴 더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96년 7월에도 서쪽 500㎙ 깊이의 터널안에서 1㎙ 높이로 길게 늘어서 있는 12.5㎏짜리 금괴 10만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이 금괴에는 ‘캄보디아’, ‘5 star’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얕은 곳이라 부비 트랩이 설치돼 있어 발굴에 상당한 애로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일본과 호주와 중국 해역 등지에서 몇차례 ‘야마시타 보물’로 여겨지는 금괴와 문화재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밖에 ‘야마시타 보물’과는 관련이 없지만 1980년 7월 미국인 멤 피셔가 플로리다 앞바다에서 1622년 태풍으로 침몰한 스페인 상성 마루가리타호를 찾아냈다. 이 배에는 당시 시가로 약 126억원 상당의 금은 보화가 있었다. 또 그해 9월에는 일본 해양개발회사는 쓰시마앞 9㎞ 지점 해저 96㎙에서 1,350억원 상당의 백금괴를 발견했다. 이것은 1905년 노·일 전쟁 당시 해전에서 침몰한 구 발틱함대 소속 순양함 나히모프호(8,526톤급)의 후미 선실의 일부였다.

국내에서는 아직 금괴 더미와 같은 보물이 발견됐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지금까지 가장 알려진 것으로는 신안 보물선을 들 수 있다. 76년부터 9년여년간의 발굴 작업을 통해 청자 1만2,359점, 백자 5,303점, 엽전 2만6,775㎏(약 100억원상당), 칠기·목재·목간 500여 등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재가 발굴됐다. 또 83~84년 2년에 걸쳐 전남 완도 약산면 어두리앞 해저에서 해저 문화재 발굴조사단이 청자 1만4,624점등 유물 2만1,800여점을 찾아 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천, 영광, 옥포 등지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발견된 기록이 있다.

송영웅·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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