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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와 21세기] 공짜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지금 우리사회에서 무언가 성공적인 것이 있다고 장담할만한 그런 것이 있을까? 21세기를 목전에 둔 한국사회에서 비전이나 어떤 기대를 말하기란 매우 조심스럽다. 한때 통일의 시대가 온다고 들뜬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한반도에서 냉전의 해체는 북한의 기근과 함께 아주 지리하고도 비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IMF가 오면서 이른바 ‘GNP 1만달러, 세계경영의 신화’도 무너졌다. 벤처기업이 선망의 대상처럼 떠오르고 있으나 이 또한 사회적 인프라의 부족이 해소되지 않고 일확천금의 투기심리가 진정되지 않는 한 또 다른 해프닝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386세대’를 말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런 일련의 거품현상중에서도 가장 알맹이 없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 시기를 산 사람들에게 공통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체체 어떤 의미를 지닌단 말인가? ‘세대’까지 동원해 허망한 작위적 비전을 그리려는 것 같아 편치가 않다.

사실 이른바 ‘386세대’들이 87년 6월 민주항쟁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그러나 6월항쟁은 오랜 독재시절의 압력이 만들어낸 일종의 화산작용이었지 ‘386세대’들이 일구어 낸 것은 아니었다. 6월항쟁은 정치적 민주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천민적 소비자본주의의 발화점이기도 했다. 탈권위주의화와 함께 그간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각인되어 왔던 천민사회적 한계,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논리, 흑백논리와 무임승차주의, 소아적이고 배타적인 연고주의 등 개발시대의 누적된 문제점이 폭발한 계기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러한 전 근대적 유산에 관한 한 ‘386세대’들은 할 말이 없다. 이 세대는 6월의 정치적 민주화의 강렬한 경험만큼이나 그들 스스로 개발독재시대의 사회문화적 유산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고 아직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에 제도정치권을 비판한 이들이 급속히 제도정치권으로 편입되는 최근의 현상이 그 예이다. 세상이 살만해졌고 ‘386세대’가 유별나게 영웅적인 세대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빠르게 기성화된 한 세대가 그러한 자체한계를 얼버무리고 “우리가 넘이가?”하는 정치적 수사의 뒤로 숨어버리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 점에서 소비세대의 대표주자라 할 신세대들이 정치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도 솔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서구의 ‘68세대’들이 기성 정치문화를 비판하면서 형성했던 어떤 ‘문명적 울림’이 우리의 신세대들에게서는 감지되는 것 같지는 않다. 미지수를 의미하는 ‘X’를 따서 ‘X세대’로 불려지는 그들이 역설적이게도 기성소비문화와 스타시스템에 정복당하고 길들여지고 있다. 정치의 휘발성이 패션의 휘발성으로, 개발독재시대의 천박성이 소비시대의 천박성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IMF를 만난 한국사회에서 물신화된 비전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김정치? 통일? GNP 1만달러시대? 세계경영?…영웅과 신화의 시대는 갔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은 풀뿌리에서 시작된다. 미래의 우리사회를 살만하게 만드는 힘은 일상에서의 변화의 힘이다. 공짜는 없다. 내가 시민운동을 하는 이유는 진짜로 세상을 바꿀 변화의 뒷심이 조금씩 형성되는 것에 기여하고 싶어서이다. 부실경영을 주도한 재벌총수가 응당한 사회적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자영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명제도 흔쾌히 받아들여지는 사회, 실업자 구제책과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도 동등하게 보장되는 사회, 언론이 왕성하게 발전할 뿐 아니라 언론이 여론을 하루아침에 좌지우지할 수도 없는 사회, 나는 이런 사회에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서 시민운동을 한다. 최근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서 작은 소망을 발견해서가 아닐까?

이태호(31·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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