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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국 건국 50년] 우리는 중국(인)을 얼마나 알고있나

베이징(北京)행 비행기에 처음 몸을 실었다. 두렵고 긴장된다. 어느새 발 밑으로 평야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붉은색 오성기가 점점 가까워진다. 두 시간도 채 안 지났다. ‘이렇게 가까운 나라였나?' 의아하다.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먼 나라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료함을 달래려는 듯, 내게 들려주던 옆자리 아저씨의 중국인들에 대한 열변이 마르기도 전이었다.

베이징대학에서 중국친구들과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인지도 벌써 5년이 지나간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속에서 줄곧 나를 붙들었던 화두는 ‘중국, 중국인 과연 무엇인가’였다. 이제 며칠 후면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중국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난 무지를 숨기기 위해 거짓과 위선으로 답해야 한다. 괴롭기만 하다. 갈수록 모호해지는 중국의 정체가 나의 귀국길을 무겁게 한다. 솔직한 필자의 유학시절 감상이다.

흔히 우리는 주위에서 ‘중국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을 늘 마주친다. 학자, 관료, 기업인, 그리고 인천항의 보따리 상인들까지. 중국행 비행기에 한 번이라도 탑승해 본 사람은 모두 전문가가 돼서 돌아온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금까지 만나본 최고의 중국 전문가들이 내놓은 공통의견은 “중국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도 베이징행 비행기는 만원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중국! 중국!’을 외치며 대륙으로 향하는 걸까.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중국은 하나의 신비한 나라다. 일종의 ‘짝사랑’과 ‘호기심’의 대상인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사진 한장 찍기 위해 한국의 고위관료와 기업인들은 줄을 서고 일반인들은 천안문의 마오쩌둥(毛澤東) 사진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하지만 중국과 중국인을 먼저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중국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먼저, 중국인은 손님접대에 능하다. 초면에도 온갖 음식과 술을 내놓고 시종일관 “펑요”(朋友·친구)를 외친다. 정성어린 접대를 받으면 첫만남에서부터 진짜 오랜 친구가 된 듯이 믿고 감격하게 된다. 그러나 환호성을 터뜨리기엔 너무 이르다. 우리를 감동시킨 그 중국친구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도 감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조급하고 충동적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옛 애인(미국)과 새 연인(중국)사이에서 선택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다. 한 두번 만남으로 속까지 보여줄 수 있는 친구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자서만 환상 속에서 우정과 신의를 키우다가는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는 중국 친구의 응대에 분노와 배신감을 표출할 수도 있다.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하던 한국 목사들에 대한 갑작스러운 구금조치와 한국정부의 중국내 탈북자 문제 개입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의 조치에 충격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경솔함을 탓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중국인은 자존심이 강하다. 그것은 열등감에서 비뚤어지게 표현되는 독단적이고 공격적인 자존심이 아니다. 개인차원의 자존심도 아니다. 바로 ‘중국’‘중국인’이란 집단적 존재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문화적인 긍지에서 비롯된다. 중화사상(中華思想)에서 비롯되는 우월의식은 중국인의 내면세계에 항상 잠재해 있다.

중국 정부가 진정 한국을 대등한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옌볜(延邊)지방을 여행하던 한국 관광객이 차창밖으로 돈을 뿌려, 우왕좌왕하며 돈을 주으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곤 환호성을 질렀다더라”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한 중국친구의 냉소섞인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인에게 우리는 ‘힘없던 동생이 땅부자로 돌아와서 형을 괄시하는 사람’들로 비쳐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셋째, 중국인은 ‘상대방이 조급해 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사람들이다. 중국인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은 ‘慢慢的 君子像(만만적 군자상)’,즉 항상 침착하고 부드럽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다. 중국인은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참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게 됐다. 이러한 습성은 그들의 일상생활이나, 정부간 혹은 상거래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중국인과 대화나 협상에 참여해 보면 이런 태도는 금방 드러난다. 그들은 여유있고 부드러운 태도로 분위기를 이끈다. 그리고 상대가 몸이 달아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먼저 제의하도록 끈기있게 기다린다. 자신이 먼저 총대를 메지 않겠다는 뜻과 체면없게 자신의 의중을 먼저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도다.

넷째, 중국인은 현실적이고 실용주의적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백묘흑묘’(白猫黑猫·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와 ‘선부론’(先富論·남보다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에서 보듯이 그들에게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비즈니스에서도 그들은 국민모두가 장사꾼이다.

중국의 대외관계도 마찬가지다. 명분상 이상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외교를 표방할 지는 몰라도, 실제는 철저히 국가이익에 의해 움직인다. 결국 우리가 줄 것이 있었기에 그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혼돈이고 모순덩어리이고 말이 안되는 곳이 중국이다. 여러개의 얼굴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곳도 중국이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살아온 미국친구가 들려준 말 “Don't believe your assumption”, 즉 “당신의 가정을 믿지 말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그러나 정작 그속에서 수천년간을 살아오고 있는 ‘왕서방’들은 지극히 편안하고 여유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인은 대범하고, 통이 크고, 보다 멀리 보며, 사려가 깊은 사람들이라는 막연함과 인구가 많고, 시장이 넓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선입견은 곧 중국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부족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것은 우리가 좀더 치밀하게 상대방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인식보다는 감정적인 느낌을 더 중요시하는 습관에서 비롯됐는 지도 모른다.

‘중국, 중국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내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모르겠다고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들인 중국인들과 계속 얼굴을 맞대야만 한다. 장사를 위해 흥정해야 하고, 우리의 안보와 생존을 논해야 한다.

중국인은 무엇일까. 중국을 평생 연구한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제서야 중국을 조금 알 것 같다.”

송정훈(정치학 박사·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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