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신중국 건국 50년] 북한은 중국의 외교자산

이상옥 외무장관과 치엔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이 국교수립 협정문에 서명하고 문서를 교환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2분. 92년 8월24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짤막한 수교의식은 동북아에서 탈냉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또 하나의 큰 걸음이었다.

10여년간 조심스럽게 오가던 양국의 추파가 드디어 결혼으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러시아, 중국과 손잡고 북쪽으로부터 북한을 포위한다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결실을 본 것이다.

올해로 한중수교 7년. 여염집 부부로 치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만큼 들 세월이다. 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조강치처(북한)와 새로 얻은 아내(남한) 사이를 오가며 착실히 두집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어차피 한국이 문제삼지 않긴 했지만 중국의 두집살림에 대해 두 아내 모두 큰 불평은 없다.

중국의 남북한 동시 수교의 목적은 무엇이고, 동시 수교로 형성된 한국과 중국, 북한의 삼각관계는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전개될까. 중국에게 북한의 존재는 무엇이고, 남한의 존재는 무엇일까.

출발은 역시 중국의 개혁개방이다. 러시아, 미국과의 관계가 안정되면서 외부로 부터의 위협에서 크게 벗어난 중국이 이데올로기보다는 실리로 대외관계의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80년 1월25일 황화(黃華) 중국 외교부장은 대남한 정책과 관련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關門不尙鎖(관문부상쇄·문이 닫혀 있지만 아직 자물쇠가 채워진 것은 아니다)” 남한의 투자에 손짓한 것이다. 직효였다. 79년 1,900만 달러에 그쳤던 양국의 간접교역이 2년만에 3억5,300만 달러로 늘었고 88년에는 30억8,700만 달러로 급상승했다. 89년 6월 천안문 사태로 서방자본 유입이 급격히 줄어 중국이 곤경에 빠졌지만 한국의 투자는 오히려 늘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도 함께 끌어 안았다. 없는 돈을 쪼개 섭섭지 않게 대우한 것이다. 54~80년 중국의 대북한 경제원조는 8억4,510만 달러. 이후로도 82년 1억 달러와 90년 3억 달러를 보태 주었다. 중국은 남한과 수교한 후에도 여전히 북한의 최대 원조자로 남아 있다.

남한으로부터 경제협력을 기대하면서 북한에는 원조를 하는 이중성은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무엇인지 가늠할 척도가 된다. 한중수교 후 한-중-북 삼각관계에서 중국의 속셈을 알 수 있는 큰 사건은 3가지. 93~94년 북한 핵위기, 94년 7월 김일성 사망, 올해 미사일 협상이다.

핵위기는 중국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 이른바 북한카드를 이용해 미국으로 부터 과실을 얻어 냈기 때문이다. 당시 치엔치천 외교부장은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개발되는 것은 한반도 뿐 아니라 중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이 구석으로 몰리거나 미국에 의해 숨이 막히는 것은 더욱 싫었다.

중국은 양면작전을 구사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국의 지위를 십분 활용해 대북한 제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내비친 것이 하나다. 또 하나는 대북한 군사지원을 시사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가 최고점에 있던 94년 8월, 중국은 북한과 인접한 랴오둥(遼東)반도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 최광이 방중한 지 두달 뒤였다. 당시 최광은 핵개발 동결을 약속하는 대신 중국 지도부에게 유사시 군사적 지원에 대한 보장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을 깨달은 미국이 내놓은 당근은 최혜국(MFN)대우 연장과 정치·군사 고위급 인사 교류였다. 94년을 계기로 미 행정부는 MFN대우와 중국내 인권상황간의 연계를 철폐했다.

김일성 사망 이후 중국의 행동은 대북한 정책의 기저를 보여 주었다. 김일성 사망 직후 김정일은 중국에 특사를 파견해 자신의 승계를 인정하고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화답은 ‘김정일의 최고 지도자 승계를 지지한다’는 것. 그러나 곧이어 막후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입해 장주석을 질책했다고 한다. 김정일을 후계자로 못박아 지지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덩의 질책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명하다. 중국의 궁극적인 관심은 누가 김일성을 승계하는가에 관계없이 북한이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중국의 완충지대로 남아 있으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으로 남아 있다. 90년 러시아가 한국과 수교했을 때 북한은 러시아를 “배반자”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중수교에 대해 북한은 공식적으로 중국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 차이는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우방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중국외교에서 가장 격이 높은 ‘전통적 혈맹’이다. 반면 중국과 남한은 격이 두단계나 낮은 ‘협력동반자관계’에 있다. 이것도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하면서 ‘선린우호관계’에서 한 단계 격상된 것이다. 최근 북한 미사일 문제와 탈북자 문제에서 중국이 보여준 태도는 바로 이같은 남북한의 외교상 격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다.

92년 한중수교에 따라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하나의 한국(북한)’에서 ‘두개의 한국(남북한)’으로 변했다. 그러나 두개의 한국이 다시 ‘남한에 편향된 하나의 한국’으로 바뀔 가능성은 별로 없다. 중국은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버린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의도적으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게 북한은 외교적 자산이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