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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35년] 끼리끼리 뭉친 '재벌은 한가족'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KBS 대하사극 ‘왕과 비’에서 세조의 큰 며느리인 수빈 한씨는 자신의 둘째 아들인 자을산군을 한명회의 딸과 결혼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대 최고의 권력가(한명회)를 등에 엎고 자신의 아들을 임금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물론 수빈 한씨의 이같은 책략은 대성공을 거둬 아들은 성종으로, 자신은 인수대비로 등극하게 된다.

이같은 사례는 50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 온 나라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재벌의 혼맥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야말로 ‘재벌은 한 가족’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재벌끼리의 혼사, 재벌가문과 정치가문의 혼사가 다반사라는 점을 금방 알 수 있다. 요컨대 재벌들은 대부분 정계의 실력자와 사돈을 맺고, 유력한 정계 인사들은 또 내로라 하는 재벌들과 사돈을 맺어 재벌과 재벌은 한 다리 건너 사돈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하나의 성층권이 형성된다. 이 울타리 속에서 특혜와 유착이 생기고 때로는 비리가 저질러지기도 한다.

분석의 범위를 ‘10대 재벌’로만 한정할 경우 혼맥으로 이어진 재벌의 연결고리는 더욱 명확해진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10대 재벌’의 혼맥을 편의상 삼성그룹에서부터 풀어가보자.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세째아들인 이건희 회장의 장인은 홍진기 전 내무부장관. 그런데 홍진기 전 장관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사돈인 노신영 전 국무총리에게 막내딸을 시집 보냈으므로,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은 두 다리 건너 사돈관계인 셈이다. 결국 홍진기 가문이나 노신영 가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국내 굴지의 두 재벌인 삼성과 현대가 친·인척으로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또 노태우 전 대통령과도 혼사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즉 홍진기 가문이 양택식(전 서울시장) 가문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처남인 김복동 가문과 연결된다. 당연히 노 전 대통령의 장녀인 소영씨가 시집간 SK그룹 가문과도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또 직접 사돈간인 LG그룹(이병철 회장의 둘째 딸인 숙희씨가 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세째 아들인 자학씨에게 시집갔음)을 통해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주 등과 한다리 건너 인척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LG그룹이 한진그룹(조중훈 가문), 효성그룹(조홍제 가문), 벽산그룹(김인득 가문) 등과 혼사를 맺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그룹은 사실상 대부분의 10대 그룹과 두세 다리 건너 사돈관계로 얽혀 있다.

그렇다면 ‘재벌과 재벌’, ‘재벌과 정치권력’의 혼맥을 통한 유착은 왜 벌어지는 걸까. 물론 항상 “당사자들의 순수한 애정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르지만 재벌이 선택한 정치권의 유력가문이 권력의 부침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은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시절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중앙정보부장 출신의 이후락씨는 맏아들을 서정귀 전 호남정유 사장의 딸과, 차남은 한국화약 창업주 김종희씨의 딸과, 4남은 선경그룹 창업주인 최종건씨의 막내딸과 결혼시켜 세간의 화제를 모았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도 각각 재계의 거물급 집안과 사돈관계를 맺었으나 지금은 모두 혼사가 깨어진 상태이다. 92년 대선을 앞두고 민자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태우 정부가 ‘한국이동통신’을 사돈 기업인 선경그룹에 넘겨주기로 결정한 것을 반 강제로 철회시켰던 사례는 혼맥의 뒷편에서 벌어진 정경유착의 그림자를 짐작케하는 단서이다.

앞으로도 이처럼 피로 맺어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지키려는 정경유착이 계속되고, 권력이나 돈을 쥐지 못한 일반인들은 영원히 이들의 세계에 얼씬도 못할지도 모른다. 21세기의 재벌은 “혼사는 정략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분명히 아니다”라는 점을 몸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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