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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35년] 21세기 재벌, 5+3원칙에 달렸다

21세기 재벌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문어발-선단식 경영’, ‘총수의 황제식 독단경영’, ‘교묘한 수법을 통한 부의 세습’등을 일삼는 ‘돈많은 집단’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있을까. 아니면 세계 초일류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하자가 없는 투명한 집단이라는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1세기 재벌의 모습은 전적으로 DJ정부가 추진중인 재벌개혁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틈만나면 역설하는 소위 ‘재벌개혁 5+3원칙’이 대통령 임기중에 별다른 부작용없이 성과를 거둔다면 ‘멋있는 재벌’의 출현도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계를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정부 정책은 너무 급진적이며 자칫 재벌이 갖고 있는 장점마저 없애버려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요컨대 ‘재벌개혁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는 현 정부의 희망에 가득찬 낙관론과 급진적 재벌개혁의 부작용을 강조하는 기득권층의 비관론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개혁 5+3원칙’이란 독특한 이름의 재벌정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그리고 정부와 재계는 ‘5+3원칙’중 어느 부분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까.

우선 ‘5+3원칙’은 김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1998년 1월, 5대그룹 총수와 회동한뒤 내놓은 ▲경영의 투명성 제고 ▲2000년 3월까지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해소 ▲1999년말까지 부채비율 200%로 축소 ▲핵심업종으로의 경영역량 집중 ▲총수의 경영책임 등 5개 원칙과 ‘재벌해체 파동’까지 불러 일으킨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천명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억제 ▲계열사간 순환출자 금지와 부당내부거래 차단 ▲재벌 2세로의 변칙상속 금지 등을 합친 8가지 원칙이다.

‘경영의 투명성 제고’부터 ‘부(富)의 부당한 상속’까지 정부가 내놓은 8개 원칙이 구구절절 옳은 얘기이므로, 재벌들도 겉으로는 ‘5+3’원칙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특히 순환출자와 부당내부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후속조치로 내놓은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후보 추천위원회’와 ‘출자총액제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현실을 외면한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대주주를 대신해 회사의 주식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은 사외이사가 이사를 선임한다는 발상은 마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외이사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기업의 중대한 비밀이 새어나갈 가능성이 크며, 실제로 그같은 일이 벌어진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부는 재벌의 반발에 대해 “개혁을 회피하려는, 충분히 예견된 재벌들의 변명”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정부는 재벌들이 지난 1년동안 겉으로는 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오히려 반 개혁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정부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 재벌 총수들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은 오히려 강화됐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IMF체제 직후인 1998년 1월1일과 1999년 8월31일의 10대 재벌 주식보유현황을 비교, 조사한 결과 총수의 지분율은 3.22%에서 2.82%로 줄었으나 계열사(재단법인 포함) 지분율은 19.95%에서 28.73%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총수 개인과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계열사 등을 포함한 내부지분율은 IMF체제 이전의 27.23%에서 34.60%로 크게 증가했다.

한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5+3원칙’이 관철될 경우 ‘21세기 재벌’은 삼성, 현대, LG라는 회사이름만 공유할 뿐 사실상 독립된 회사의 느슨한 연합체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요컨대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물산은 ‘삼성’이라는 이름을 함께 쓰는 것 말고는 더 이상 공통점이 없는 별개의 회사인 것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경우 ‘5+3원칙’에 대한 반대논리를 개발해 정부의 재벌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또다른 한편에서는 만일의 사태(재벌해체)에 대비, 재벌해체이후 유일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갖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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