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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35년] 살아남는 그룹은 삼성.쌍용 뿐

‘생존률 20%’

불치의 병에 걸린 암환자의 생존확률이 아니다. ‘생존률 20%’는 놀랍게도 주간한국이 창간되던 해인 1964년 ‘10대 재벌’의 반열에 올랐던 기업중 아직까지 살아남은 기업을 가리키는 숫자이다. 요컨대 1964년 당시 위세도 당당했던 10대 재벌중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업은 삼성, 쌍용그룹 등 2개에 불과했다.

반면 당시 재계 3위와 10위였던 삼호그룹과 개풍그룹은 세인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이고, 99년 현재 명실상부한 재계 1위인 현대그룹은 96위에 랭크, 100대 기업에 가까스로 턱걸이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된다”라는 말을 실감케 하기 충분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방직·목재등에서 전자-통신·중공업으로

실제로 이같은 재계의 판도변화는 ‘후진적 농업국가’였던 대한민국이 35년만에 ‘선발 공업국가’로 압축 성장해온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64년 ‘10대 재벌’의 주력업종이 대부분 방직, 제당, 목재 등 1차 가공산업에 불과했으나 99년에는 전자, 통신, 중공업으로 재편된 것은 결국 정부가 추진했던 ‘중공업 정책’에 호응했던 기업만이 살아남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10대 재벌의 경제력 역시 수천배에서 수만배이상 성장했다. 64년 당시 부동의 재계 1위였던 삼성그룹의 총 매출액은 38억5,000만원. 이는 35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약 1,950%)을 감안하더라도 99년 3월말 현재 그룹 전체 매출액인 98조9,570억원의 0.08%에 불과하다. 거꾸로 말한다면 35년간 삼성그룹은 매출액 규모가 1,319배 늘어난 것이다.

현대그룹의 경우는 더욱 경이적이다. 64년 당시 현대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현대건설의 경우 연간 매출액은 3억7,400만원. 이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99년 3월말 현대그룹 전체의 매출액(94조2,080억원)의 1만2,922분의 1에 불과한 수치이다. 이제는 그룹 이름조차도 LG그룹으로 바뀐 락희그룹 역시 64년 7억4,300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35년후에는 64조6,410억원으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지난 35년동안 삼성, 현대, LG(락희)그룹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한때의 강자였던 삼호, 개풍, 동명그룹 등은 왜 비운의 운명을 맞아야 했을까. 그리고 1만배가 넘는 재벌의 외형성장은 순전히 자신들의 노력때문이었을까.

불행하게도 특정 재벌의 급격한 침몰과 99년 현재 한국을 주름잡는 ‘10대 재벌’의 성장배경에는 떳떳하지 못한 이력이 숨겨져 있다.

정부시책 호응정도에 따라 부침거듭

60년대 재벌의 부침은 정부시책에 어느 정도 호응했는지에 따라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6 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 정권은 정치적 정통성의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내자조달을 위한 화폐개혁을 시도했다. 박정권은 또 이제까지의 자유 기업주의식 정책에서 벗어나 정부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개발정책으로 전환, 적극적인 차관도입과 수입대체 산업육성 및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재벌은 정부정책의 충실한 수행자여야 했고, 정부의 눈밖에 나는 즉시 퇴출되었다.

당시 정부는 직접적인 금융통제로 재벌을 조종했다. 즉 정부의 정책적 육성산업인 정유, 화학비료, 화학섬유, 시멘트 산업과 수입대체 산업 등에 참여하는 재벌에 대해 특혜적 금융지원이 이뤄졌던 것이다. 국내 은행금리가 25~30%이던 상황에서 금리가 연 5~6%에 불과한 대외차관을 얻기만 하면 그야말로 앉아서 떼돈을 벌 수 있었으므로 당시의 재벌들은 정치인과 고위 경제관료를 상대로 차관자금 획득을 위해 치열한 로비를 벌였다. 실제로 1969년 22억9,500만달러에 달하던 차관자금중 21%인 5억200만달러가 10대 그룹의 몫으로 돌아갔다.

한편 1964년 9월부터 시작된 한국군의 월남파병도 재벌판도에 영향을 미쳤다. 즉 월남전에 소요되는 군수물자의 일부를 한국이 공급함으로써 면직물, 합판, 목재, 해운을 비롯한 운송부문이 월남전으로 인한 특수경기의 직접적 혜택을 누렸는데 현대, 한진그룹 등은 월남파병의 최대 수혜자였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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