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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칠 수 없는 당근 '관계정상화'

지난 5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추진체의 엔진분사시험을 실시함으로써 조성됐던 한반도내 긴장국면은 7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베를린 북미회담을 통해 해결의 가닥을 잡아 나갈 것으로 보인다.

임동원 통일부장관은 8월30일 미국에서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베를린회담은 한반도문제 해결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회담결과는 희망적”이라고 덧붙였다. 임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그가 평소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베를린회담에 거는 한미 양국의 기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적대정책 거두면 발사 안할수도”

베를린회담은 북한의 미사일발사 잠정중단을 대가로 미국이 북한에게 선물을 주는 회담이 될 것 같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이 줄 것, 미국이 줄 것을 교환하는 회담”이라며 “또 포괄적 접근방안(페리제안)을 논의하게 될 북미 고위급 회담의 의제 등을 정리하는 준비회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회담이 포괄적 방안의 본격적 논의를 위한 전초전이라는 전망이다.

5월이후의 미사일 위기국면이 낙관적인 분위기로 돌아선 것은 8월 제네바 4자회담을 전후로 열린 북미접촉에서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이때 대화파트너인 찰스 카트먼 미 한반도평화회담 특사에게 “북한은 미국이 적대적인 정책을 그만두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어 김용순 노동당비서는 광복절 직전 CNN 기자와 대담에서 “만일 손님이 떡을 갖고 오면 우리 역시 떡을 줄 것”이라며 회담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을 ‘떡’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8월18일 제임스 루빈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측에 미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음을 밝혀왔다”며 “여기에는 연락사무소및 외교대표교환 가능성과 경제제재의 해제·완화 가능성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임장관은 “미국은 우선 행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경제제재 해제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은 대북경제제제를 해제하고 일본과 함께 자국기업의 대북투자를 허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를 종합하면 제네바 핵합의이후 논의됐던 연락사무소 개설 등 관계정상화 조치는 물론 미 수출관리법상의 물자수출금지 조치, 대적성국 교역법상의 금융거래금지및 북한자산동결조치, 교역·방산물품판매·수출입은행 보증금지 해제 등의 조치가 이번에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미국과 일본 기업의 직접 투자가 가능해져, 북한 경제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아 북한으로서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당근이 될 것이다.

회담성사 이전의 과정이 이렇다면 회담의 결과는 대강 그려질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 잠정 중단조치를 약속하고,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 것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사일 재발사는 물론, 미사일 수출및 개발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북미 고위급위급 회담의 의제와 스케줄을 확정하는 수순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미사일 재발사에 관한 문제만을 논의하고 개발과 수출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한미 양국이 바라는 고위급회담 개최는 물건너 가게 된다. 친북논조를 견지하고 있는 미국내 통일학 연구소 한호석소장은 최근 발표한 ‘남·북·미 삼각갈등과 한반도 정세변화’라는 글을 통해 북측이 포괄적 접근방안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유고전쟁을 계기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등 결정적 수단의 포기를 생존권 포기로 간주하고 있으며 미사일 개발 중지대가로 내세우는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북미관계정상화는 이미 제네바 핵합의때 이뤄졌다고 본다”고 밝혔다.

미사일 잠정중단과 정제제재 해제NLL무효화 선언의 노림수는?

이와 함께 2일 북한의 북방한계선(NLL) 무효화 선언에서 나타났듯,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회담 또는 남한및 미국과의 3자 정치·군사회담을 통해 북미평화협정체결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에 대해 발벗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포괄적 접근방안과 함께 북미평화협정 체결에서 미국측의 성의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게 북한의 요구이다. 북한은 줄곧 북미, 또는 남북한·미국의 군사회담을 통해 NLL문제는 물론 북미평화체제 수립문제를 다루려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체제 수립은 군사회담이 아니라 정치회담에서 다뤄져야 하므로 3자 군사회담은 장차 3자 정치회담으로 발전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따라서 NLL 문제의 취급을 의제로 하는 3자 군사회담 개최를 압박하는 북한의 NLL 무효화 선언은 베를린회담에서 미국측이 북미평화체제 수립논의에 관한 전향적인 자세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문은 주한미군의 지위변경및 NLL문제 등을 북한측이 원하는 형식의 회담을 통해 다룰 수 없고 다룰 시기도 아니라는 남한과 미국의 입장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베를린회담에서는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와 맞물린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잠정중단 조치가 이뤄지는 어정쩡한 타협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보다 클 것 같다.

복잡한 속사정, 결과 속단 못해

일부에서는 어정쩡한 타협의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6월과 8월 북미접촉에서 북한과 미국은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줄 수 있는게 무엇인지에 대해 상당히 깊은 얘기를 나눈 것은 사실이다. 북한으로서는 이 문제를 협상으로 풀더라도 손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험발사 일시중단 선언이 미사일 개발자체를 영구적으로 중단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또 자신들이 발사를 천명한 적도 없기 때문에 체면손상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경제제제 해제라는 떡만 챙기면 된다. 하지만 북한이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이행을 보고 잠정적인 발사중단을 선언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미국측이 제네바 핵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해온 북한이 이렇게 나올 확률도 만만치 않다. 선조치를 강요받을 경우 미국이 선뜻 동의해줄 지는 미지수다. 또 당초 북한미사일 문제 전체를 경제제재 해제라는 카드로 풀려했던 미국이 ‘재발사 중지’라는 작은 성과에 만족해 경제제제 해제라는 큰 보따리를 풀 것인가라는 미국내 회의적인 분위기도 협상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결국 일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낙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협상당사자들의 복잡한 속사정으로 인해 그 결과를 쉽게 속단할 수 없는 형편이다.

미·북관계 진전은 곧 남북관계 진전

한편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중단조치가 이뤄졌을 경우 우리측이 마련해야 할 대북한 ‘보따리’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김대통령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 기고에서 “우리는 북한이 대량파괴무기 생산을 중단하고 한국과 군사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경우 북한에 보상해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 재발사 중단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말은 아니지만 미사일 시험발사를 미사일 생산을 위한 일부과정으로 간주할 경우 보상카드를 마련할 수 있다는 시사다. 임장관도 같은 맥락에서 “미북관계에 진전이 있게 되면 남북관계에서도 진전이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80년대부터 개발한 스커드미사일의 사정권내에 우리 국토가 놓여있고, 미사일 협상은 미국의 세계전략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점 등을 들어 베를린회담 타결에 따른 우리측의 대북직접 지원에는 별 명분이 없다고 말한다.

이영섭·정치부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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