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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 이인제, 때는 왔는가

국민회의 이인제 당무위원의 최근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위원은 지난 대선에서 후보사퇴를 거부하고 김대중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공신’. 대선후엔 국민신당 그룹을 이끌고 국민회의와 ‘조용한 합당’을 한 뒤 여지껏 당의 외곽에서 침묵해왔다. 외국에서 견문을 넓히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여권의 차세대 주자군중 한명인 그가 신당 창당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 여권 내부에서 소리는 작지만 울림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8월 30일 이위원이 신당창당을 선언한 국민회의 중앙위원회에 불참하자 당안팎에선 그의 앞길을 두고 온갖 이야기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만섭 총재대행에게 ‘노모의 건강’을 이유로 사전 양해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뭔가 단단히 응어리가 맺힌 것이 있다” “탈당이나 독자노선을 걷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있었다.

목소리 높이는 국민신당파

실제로 이위원의 참모들은 하루전인 30일에 “이위원이 (중앙위에) 안가실 확률이 90%이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같은 이위원 캠프의 기류에 “대통령 옆자리에 자리를 만들테니 참석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지만 이위원측은 한 귀로 흘려버렸다.

이틀후인 9월1일 오후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른바 국민신당 동지회 비상대책회의는 마치 야당의 선거 유세때나 들을 법한 독한 소리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인제 추대’와 ‘자민련 비판’이었다.

“우리는 이인제 동지가 더넓은 안목으로 세계를 공부하게 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이고문을 외국으로 떠나보내면서…” 마이크를 잡은 전 국민신당 출신 한 당직자는 목이 메이는 듯했다. 이어 그는 “아무리 찢어지게 가난해도 양자(養子)는 가지 맙시다” “우리끼리 합시다”라고 소리쳤다. 다들 격앙된 듯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성환 동지회장의 이어지는 대회사. “국민회의에서 당을 해체하려 하는데 이제 우리도 진로를 다시한번 검토해 보아야한다. 이 조직과 이념 정책 인물구성 가지고는 내년 총선에서 도저히 안된다. 민심은 집권 여당을 떠나 훨훨 날아갔고 여의도 (국민회의)당사와 청와대에 앉아 ‘민심아 돌아오라’는 식으로는 절대 안된다.”

자민련에 대한 비판은 듣기 민망할 정도. “내각제는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당연한 발언을 한 사람에게 양주나 쏟아붓고 이런 당은 간판을 내려야 한다” “이른바 후삼김시대의 패거리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이인제 동지와 더불어 새출발해야 한다” “김종필 총리는 이인제 위원에게 전폭적으로 자리를 양보하라” 등등.

이날 자리에 참석한 전 국민신당 지구당위원장과 사무처 요원 300여명은 ▲대통령 직선제 지지 ▲김대중 대통령의 당적 포기 ▲당지도부의 완전경선제 도입 등 3개항을 결의하고 ‘3김정치 연장저지’를 위한 전국적인 정치결사체 조직에 착수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잠시후 국민회의 당사. 이영일 대변인은 “전 국민신당 당직자들의 결의 내용은 그런 결의를 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실제 영향력도 없다”면서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이날의 ‘위력시위’는 옛 국민신당 출신들이 국민회의 신당창당과정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표출된 것으로 합당당시 약속했던 20%의 지분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이위원은 이날 행사에 불참하고 측근들을 대신 보냈다.

활동범위 넓히며 ‘저울질’

과연 이위원의 본심은 무엇일까. 이위원이 여권 핵심부의 신당 창당 방식과 양태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신당창당과정에서의 소외감. 김대통령이 8월 26일 이위원을 불러 신당문제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자리에서 이위원은 “나는 국민회의가 신당을 어떻게 만든다는 것인지 누구로부터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등의 불만을 털어놨다.

둘째는 자민련과의 통합문제. 이위원측이 신당의 우선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사항이다. 이위원측은 “충청권도 아우르지 못하고 영남권에서도 지지세가 없는 신당이라면 무슨 전국정당이 될 수 있느냐”면서 “현재의 상태대로 2여 1야로 총선을 치르면 백전백패”라고 말한다. 이위원도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통합해 새로운 차원의 전국정당이 만들어지게 되면 야당도 함께 바뀌게 된다” 며 ‘선 자민련 통합’을 신당 만들기의 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국민의 지지가 없는 내각제는 가당치도 않다”는 것이 지론인 이위원은 최근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16대 총선출마 문제에 대해 “고향(충남 논산)과 대전, 경기 안양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 대전과 고향에서 나오라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속마음을 비친 것이다.

이위원 캠프에선 16대 국회에서 이위원이 원내로 진입하는 방식을 놓고 내부논쟁이 벌어졌는데 대략 상황이 정리되었다는 의미이다. 논쟁이란 이위원이 과거 지역구이자 현재 자택이 있는 안양에 출마해 수도권을 대권도전의 지지기반으로 삼느냐, 아니면 현실적인 지역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충청권을 공략하느냐 하는 것. 특히 후자는 정개개편 과정에서 김총리와 자민련의 향배와 직접 연결이 된다. 만약 이위원이 충청권 출마를 염두에 둔다면 이는 곧 지역구도로 갈라진 정치현실을 어느정도 수용, 일단 지역 기반을 마련한 뒤 대권도전을 하겠다는 큰 틀의 전략을 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스트 JP넘어 포스트 DJ로?

그렇다면 이위원의 행보에 담긴 노림수는 무엇일까. 정가에선 이위원이 당장 탈당을 하거나 독자행보를 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위원도 어불성설이라며 부인한다. 그러나 연말쯤 정국이 요동친다면 독자노선을 걸을 것인지에 대해선 “그때쯤 많은 변화가 오겠지”라며 대답을 피한다.

이위원은 6일에도 용인시장 보궐선거 지원을 위해 당 선거대책본부를 찾았다. 이 자리에는 대전 충남북 시도지부 부위원장과 충청지역 지구당 위원장, 구 국민신당 출신 지구당 위원장등 20여명이 참석, 용인지역에 살고 있는 충청 출신 유권자들을 상대로 지원대책을 협의했다. 이위원은 이미 당내에서 충청권의 대표주자역을 자임하는 듯한 인상이다. 과연 이위원은 ‘포스트 JP에서 포스트 DJ까지’의 행보를 시작한 것일까.

이태희·정치부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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