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목 졸리는 재벌 "장난이 아니네"

청와대의 재벌개혁작업이 심상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

대우사태를 서투르게 대응하면서 재벌개혁 의지까지 의심받던 정부가 김대중대통령의 8·15선언을 계기로 재벌개혁을 위한 손놀림을 빠르게하고 있다.

대우가 전격 워크아웃에 들어간데 이어 검찰이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정주영명예회장 일가까지 수사선상에 올려놓을 기세로 진행되고 있다. 또 안정남 국세청장이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그동안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의 편법증여여부에 대한 내사사실을 공개하고 공정거래위는 재벌들의 내부거래에 대해 사상 최대액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관련기관들이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재벌을 압박해나가고 있다.

정부 “재벌 기 꺽을 절호의 기회”

전경련과 재벌들은 사태가 예상밖으로 발빠르게 진행되자 가용 정보루트를 총동원해 청와대의 의중을 탐색하는 등 긴장된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 등까지 나선 일련의 움직임이 결국 재벌개혁을 밀어붙이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판단하고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대한 검찰수사와 국세청의 삼성그룹 내사 마무리 단계쯤에 드러날 정부의 ‘진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시말해 검찰수사와 국세청의 내사는 대우가 사실상 뇌사상태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재벌로 남은 현대와 삼성의 기세를 꺾어놓겠다는 전초전 성격이라는 분석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검찰수사와 국세청내사는) 정부가 재벌들의 항전의지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아니겠느냐”며 “재벌들의 항복을 받아놓은뒤 정부가 재벌개혁안을 제시하고 수용을 종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의 수사배경과 수사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는 김영삼정부 당시 최악의 시련을 당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국민의 정부들어 LG반도체인수, 대북사업진출 등 그룹의 사세가 크게 확대되면서 일부에서는 특혜시비까지 일었다. 정부가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에 손을 댄 것도 이같은 특혜시비를 불식시키고 재벌개혁에는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느긋하던 현대, 검찰 기세에 전전긍긍

검찰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기자단에 정식으로 엠바고(시한부 보도자제)요청을 한뒤 현대증권의 계좌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를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현대측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데 검찰이 과연 제대로 손을 대겠느냐’며 느긋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현대측이 ‘경제영향론’을 내세워 전방위 로비를 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 실무책임자인 이훈규 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여러분(기자)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수차례 말하기도 했다. 실무검사들도“검찰이 소환하면 언제라도 출두하겠다고 약속한 이회장이 갑자기 잠수하더니 고공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불쾌해 했다.

그러나 사태는 현대측의 예상보다 심각하게 돌아갔다. 언론사들이 2일“이미 이 사건이 증권가에 모두 퍼진 상태에서 보도자제를 계속 유지할 경우 개인투자자들만 손해를 볼 수 있다”며 보도를 하기로 결정했고 검찰로서도 악소문이 그치지 않자 이회장 출국금지 등 수사내용을 발표해 공개수사에 나섰다.

이 사건에 쏠린 관심은 과연 검찰이 현대그룹의 어느 선까지 손을 댈 것이냐에 맞춰져 있다. 현대측은 “투자차원이었을 뿐 시세조정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현대그룹의 현대전자 주식매매행태만을 볼 때 증권거래법상 금지하고 있는 시세조종의 혐의는 벗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증권가에서는 “잠적한 이회장이 자신이 구속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해달라고 로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 현대전자 주식매매에는 모두 2,2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는 등 그룹차원에서 개입했다는 의혹이 만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삼성변칙증여 내사도 관심

국세청의 삼성그룹 변칙증여 내사의 향방도 관심거리다. 삼성측은 “도덕적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현행법테두리내에서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내심 불안한 심정이다. 국세청이 마음먹고 정밀조사할 경우 꼬투리가 잡힐 수 있고 자칫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검찰과 국세청, 공정위 등의 움직임이 역대정권의 재벌길들이기 방식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산하 연구기관 관계자는 “재벌개혁을 하겠다는 목적이라면 법제도적 정비 등 정상적인 방향으로 추진돼야지 권력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들어 겁부터 주는 식으로 진행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대와 삼성 최고위층의 고개숙이기 정도에 따라 사법처리나 세무조사의 강도가 적절히 조정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돌고 있다. 다시말해 현대와 삼성측이 백기를 들고 재벌개혁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할 경우 사법처리수준 등을 낮춰주는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어떤 수순을 밟든 과연 김대중대통령이 8·15선언을 통해 국민에게 약속한대로 재벌을 개혁한 사상 최초의 대통령이 될지 아니면 역대 정권처럼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의 화풀이를 대신하는 ‘재벌혼내주기’로 끝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5월 제2829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2020년 03월 제2820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