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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엇갈린 검.경, 인권신장 진일보

“완전히 허를 찔렸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위·위원장 김영준)가 9월 7일 사법개혁 1차시안을 발표하자 경찰이 발칵 뒤집혔다. 경찰 고위간부들은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사개위에서 경찰의 권한이 축소되고 검찰의 감독권이 대폭 강화되자 의외의 일격을 맞았다며 허탈해 했다. 일부 경찰대 출신 간부들은 “지휘부의 방심으로 사실상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물건너간 것 아니냐”며 흥분했다.

경찰이 이렇게 ‘당하게’된 것은 사개위의 중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 사개위 멤버들 대부분이 법조계 인사나 법학교수 등으로 구성됐을 뿐 경찰측 인사로는 최인기 순천대총장(경찰위원회 위원장)만 참여하고 있어 경찰로서는 제목소리를 충분히 내기에 역부족인 실정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동안 위원 개별접촉조차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손놓고 있다가 뒤늦게 허둥거리는 꼴이 됐다.

경찰은 대통령의 최종 결정과 입법과정에서 경찰의 의견을 강력히 개진하겠다는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재정신청 확대등 긍정적 평가

이번 1차시안만 볼 때 검찰이 가장 큰 소득을 거두었다. 검찰은 구금기간단축 등을 양보하면서 즉결심판 등 경찰이 갖고 있는 권한을 이양받아 경찰에 대한 감독권을 강화하는 한편 경찰 수사권독립요구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또 법원이 독점하고 있던 보석권한 일부도 가져오는 등 짭짤한 수확을 거두었다.

검찰과 경찰의 희비가 교차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사개위 1차 시안은 일단 법률서비스 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피의자수사에 변호사 참여를 보장한 점이나 재정신청의 범위를 불법체포·감금 등 공무원의 직권남용범죄나 선거범죄에서 공무원의 직무관련 범죄 전부로 확대하고 수사및 재판기관 종사자,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국회의원및 자치단체장 등 일정 선출직공무원의 모든 범죄도 포함시킨 것은 인권신장의 한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인신구속도 현행 형사소송법상 긴급체포후 48시간 이내 구속영장을 청구토록 하고 있으나 긴급체포후 ‘지체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토록하면서 체포영장 청구시한을 48시간으로 못박아 판사가 발부하는 영장없이 체포하는 관행이 크게 줄 전망이고 구속기간도 30일에서 최장 25일로 줄였다.

또 현재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 보석, 구속적부심, 구속집행정지, 구속취소 등을 통합운영토록 하고 형소법상 필요적 보석 조항의 보석제외사유를 축소키로 했으며 판사만이 할 수 있었던 보증금 납입 조건부 석방제도가 검사까지로 확대하는 등 인신구금 해제방안을 다양화했다.

권한축소 경찰반발, 진통예상

그러나 사개위 1차시안중 일부는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규정돼 실효성이 의심스러운데다 경찰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제도화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경찰은 특히 경찰서장이 청구할 수 있는 즉결심판 개선안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개위 시안에 따르면 경찰서장이 즉결심판을 청구하고 구류·벌금 등 선고가 가능한 현행 즉결심판을 경미한 범죄는 범칙금·과태료를 매기되 구류·벌금 등은 검사만이 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경찰청은 8일 기자간담회를 갖고“현실을 무시한 처사로 오히려 전과자를 양산하고 수사의 어려움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경찰이 반대하는 첫째 이유는 사개위 시안대로 할 경우 기존에 전과자로 분류하지 않았던 구류나 벌금형도 일반형사사건으로 처리하게 돼 1년에 35만명 정도가 추가적으로 전과자가 된다는 것. 또 연간 108만여건에 달하는 즉결심판 대상사건중 범칙금·과태료로 처리할 사안과 구류·벌금형으로 분류할 기준도 없으며 구류·벌금형은 검사의 기소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검찰의 조사를 또 받는 등 국민불편과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사개위 시안중 현행 10일인 피의자 구속기간을 5일로 줄이고 필요할 경우 검사의 허가를 받아 5일을 연장할 수 있도록한 것도 검찰이 구속기간연장을 불허할 경우 수사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구속기간 연장을 위해 서류를 준비 등 업무만 번거롭게 한다는 입장이다.

법률서비스 향상, 실효성엔 의문

사개위가 민사소송에서 채무자의 재산추적을 위해 스스로 재산목록을 공개하는 ‘재산명시제도’ 대신 공적 전산망을 통해 재산을 파악할 수 있는 ‘재산조회제도’를 도입했지만 재산을 조회할 수 있는 전산망이 완비되지 않은 상태인데다 악성 채무자의 은닉재산을 찾아내는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변호사 공익활동 의무화 규정을 신설한 것도 보강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다. 변협은 연간 50시간 이상의 공익활동 의무화 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 변호사들 사이에 반대의견이 만만찮은 데다 편법으로 공익활동 시간을 때우는 식의 파행운영을 막기 위해 ‘강제장치’가 필수적이다.

현행 27.3%에 불과한 민·형사 법률구조를 전국민의 50%까지 연차적으로 확대하고, 국선변호 대상을 모든 구속피고인에서 구속피의자, 단기1년 이상의 불구속 피고인까지 단계적으로 넓히기로 한 것은 서민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였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라는 평가다. 그러나 민·형사 법률구조의 경우 3,000억∼5,000억원 규모의 재원이 필요한데다 법률구조공단의 제도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하고 국선변호 확대도 1,000억원에 가까운 예산확보가 만만치 않아 실현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들 “기득권 안에서의 개혁”

시민단체들도 이번 사개위 1차시안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법조계 기득권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참여연대 서울YMCA 등 1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사법개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8일 사개위 1차시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피의자 조사시 변호사참여, 법률구조대상의 확대, 표준양형기준 등 몇가지 개혁조치안에 불필요한 단서조항을 붙이거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명시하지 않는 등 법조계의 기득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대회의는 특히 “사개위는 건전한 시민의 상식을 대변하는 시민대표들이 압도적 다수가 되도록 재구성해야 위원회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길”이라며 “잘못된 사법제도의 피해자가 시민이고 사법개혁은 시민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사개위 회의는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개위가 인권신장을 위한 제도개선에는 합의했지만 앞으로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로스쿨 도입및 법조인력양성방안, 검찰과 법원의 조직및 인사제도 등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들을 연말까지 마무리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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