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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피해소송, 흡연자 모두가 당사자

최근 담배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우리나라에서 제기됨에 따라 소송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담배소송이 관심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의 흡연인구가 세계최고수준이기 때문.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한국 15세 이상 남성의 흡연율은 68.2%. 미국 27.2%는 물론이고 일본 59%에 비해서도 월등하게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담배소송이 승소할 경우 미칠 파장도 세계 최고 수준일 수 밖에 없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모두 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담배사업은 민간기업이 아니라 국가전매사업이나 다름없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 의미는 더욱 크다. 그래서 담배소송의 피고가 외국의 경우 민간기업인 반면 우리나라에선 국가 또는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36년동안 담배를 피우다 폐암에 걸린 외항선원 김모(56)씨. 김씨는 9월초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소송은 원고측이 먼저 흡연으로 인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입증한 뒤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가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데 소홀했다거나 또는 이를 일부러 은폐했다는 불법성을 주장하는 순서로 진행될 전망이다.

소송을 맡은 최재천변호사는 소장에서 “김씨는 36년동안 매일 국산담배 1~2갑을 피우다가 지난해말 폐암에 걸리게 됐다”며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발암물질이 포함된 담배에 대한 위험성을 전혀 알려주지 않아 폐암에 걸린 만큼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변호사는 특히 국가에 대해 “국가는 재정수입을 위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해악을 끼치는 담배판매를 오히려 장려 촉진했을 뿐아니라 담배인삼공사의 감독의무 또한 소홀했다”고 주장했다. 최변호사는 이어 “담배의 위해성에 대한 경고문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89년에야 비로소 부착된 만큼 이미 그전에 담배에 중독된 김씨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측이 이를 순순히 동의할 리 만무하다.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측은 담배와 폐암이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담배는 피우고 싶으면 피우고 말고 싶으면 마는 일종의 기호식품이라는 점, 흡연을 강요한 적이 없다는 점, 경고문구까지 부착했는데도 계속 흡연했다면 이는 모두 당사자 책임이라는 점 등을 부각시키면서 책임이 없음을 주장할 방침이어서 향후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그러나 담배소송에 대한 관심만큼 승소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조심스런 반응이다. 미국에서 최근 승소판결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전망이 밝다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리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이기기 매우 힘든 소송이란 지적이다.

패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측에선 소송의 쟁점인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먼저 꼽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주한길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측은 먼저 폐암에 걸린 이유중에 흡연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며 “폐암과 흡연과의 인과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이 제출된다 해서 무조건 원고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는 만큼 당사자가 이에 해당한다는 것을 다시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쟁점인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의 불법행위를 밝혀내는 것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국가가 세수확보와 국민건강 보호의무 사이에서 세수확보를 위해 일부러 담배의 위해성을 홍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고 항변하면 공사가 이를 알고 있었다는 객관적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승소판결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담배제조회사들이 담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구결과들을 일부러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였다. 심지어 담배제조회사들이 흡연자를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니코틴 수준을 조작했다는 증거가 공개되며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미국에선 64년 미국 외과의사협회에서 처음으로 담배가 폐암 등의 질병을 일으킨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후 보고서는 매년 새로운 연구결과들로 보완됐다. 9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니코틴이 강력한 중독성이 있고 담배제조회사들이 흡연자를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니코틴을 조작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ABC방송은 담배제조회사들이 니코틴을 조작하는 장면을 보도, 충격을 줬다. 담배제조회사의 연구원이 청문회에 나와 담배피해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없앴다고 증언하고 담배제조회사의 조직적인 불법행위를 보여주는 내부서류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승소판결이 가능했던 미국과는 달리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수준을 기대하긴 힘들다는 지적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재판과정을 통해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이미 담배가 암과 직접 관련이 있고 중독성 물질이란 점을 알면서도 흡연자를 중독자로 만들기 위해 니코틴 수준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다. 법조계가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는 주요 이유중의 하나이다.

외국에서 승소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와는 소송 절차와 법리, 대상 등이 판이하다는 점도 소송의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조물책임(PL)법이 제정되지 않아 입증책임이 모두 원고에게 있다. 제조물책임법이란 유해한 제조물을 생산한 업체에 무과실 책임을 묻는 법률이론으로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제조회사측이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조물책임법이 제정되지 않은 만큼 개인인 원고가 국가와 한국담배인삼공사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셈이 된다.

특히 여론의 영향이 결정적인 배심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법원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원칙이 공고하다. 미국에선 연일 담배의 폐해와 담배제조회사들의 불법성이 폭로 보도되며 담배제조회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의 공감대가 형성됐었다는 점이 재판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담배사업이 사실상 국가전매사업이어서 민간기업을 상대로 한 외국의 담배소송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94년 미국 미시시피주의 마이크 무어 법무부장관은 담배관련 질병에 주정부가 지출한 의료비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49개 다른 주들이 잇따라 유사소송을 제기, 담배제조회사들의 무릎을 꿇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소송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거꾸로 개인 대 국가의 싸움이다. 미국에서조차 담배제조회사들이 거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원고측 변호사를 파산시킴으로써 결국 소송이 무산된 전례가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한편 미국의 최근 담배피해소송에서 수천억원의 배상판결이 난 것도 우리나라에선 적용될 수 없다. 지난 3월 미국 오리건주 순회법원 배심원은 폐암으로 사망한 윌리엄스씨의 유족들이 필립 모리스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징벌적 배상금으로 7,950만 달러와 순수배상금으로 80만달러를 지급하라며 한화로 1,000억원이 넘는 사상최대 손해배상 평결을 내렸다. 징벌적 배상이란 공익성이 높은 재판의 경우 제조회사측에 경종을 울린다는 차원에서 엄청난 배상액을 물리는 것.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규정이 없어 이러한 정도의 손배액을 기대할 순 없다.

더구나 담배피해소송에서 승소판결이 난다해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흡연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또 폐암환자 A씨가 승소했다 해서 같은 폐암환자인 B씨가 소송을 제기, 반드시 승소하리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의 담배피해소송은 이제 시작이란 사실이다. 미국에서 담배피해소송은 54년 시작됐다. 이후 40년동안 패소판결만이 이어졌다. 94년에야 비로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됐고 승소판결이 나온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40년 후에야 승소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40년에 걸친 패소사가 우리에겐 귀한 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배피해소송의 재판결과 여부와는 달리 담배소송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들도 많다. 소송제기 자체만으로도 담배사업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고 있다는 점, 앞으로의 재판과정을 통해 흡연의 폐해가 다시한번 부각될 것이라는 사실 등이 이러한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박일근·사회부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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