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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지적받기를 꺼리면

지적은 변화의 동력입니다. 지적이 활발한 사회는 깨어있습니다. 지적 받기를 꺼리는 사회는 고인 물과 같습니다. 지적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독선적인 사람입니다. 바른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미봉하려 할 때 괴리가 생기고 괴리는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언론 등에 의해 지적된 일부 사례들을 생각해봅니다.

불법 도청·감청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관련 기관들이 경쟁하듯 개선안을 내놓았습니다.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그러나 의지만 있었다면 이미 개선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청을 신청하거나 신청을 받는 기관, 불법을 단속하는 기관이라면 이전에 이미 실상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국민들의 불안감이 마구 확산되자 뒤늦게 개선안을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야의 논쟁이나 당직자들의 말에서 유추될 수 있습니다.

기관들의 불법 도청·감청이 문제가 된 것은 규정을 지키지 않거나 행정편의주의적인 편법을 동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당은 합법도청이 줄었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올해 감청장비 구입율이 기존 장비의 20%에 이르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반박합니다. 지적의 본질이 흐려집니다. 국민회의의 한 당직자는 ‘현재의 감청시비는 대통령의 APEC 성과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성과가 옷로비 의혹사건으로 희석됐다는 주장을 펴며 그같이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정부나 여당이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국민의 정부에서는 불법 도청·감청이 없다는 것을 광고를 해서라도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개선안이 제대로 실행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는 자민련 한 당직자의 최근 발언입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김종필 총리에 대한 사법처리 요구는 건전보수세력 결집을 훼방하는 일부 진보세력의 조직적 음해공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진보세력은 당을 떠나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세력 일각을 뜻한다’면서 ‘김총리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모임도 급조된 단체로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유독 자민련과 김총리를 겨냥한 음해가 반복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은 의도적인 행위’라는 설명입니다.

그의 발언은 박계동 전의원이 김총리가 100억원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하면서 촉발된 파문이 확산되자 나왔습니다. 그가 급조된 단체라고 주장한 ‘김종필총리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시민연대’는 학계 시민·사회단체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차 서명자 명단에는 반부패특별위원회 위원인 강철규 서울시립대교수도 들어있습니다.

그의 ‘음해’‘공작’등의 표현은 불법 도청·감청 시비로 가뜩이나 불안한 국민들을 으시시하게 만듭니다. ‘음해세력’이 모호해 더욱 그렇습니다. 시민연대가 급조됐다거나 사주를 받은 단체라는 표현도 옳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시민단체들이 각계 인사들과 연대해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어 활동해온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김총리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각하결정을 내렸습니다. 야당은 ‘너무 쉽게 내린 결정’이라며 ‘정의의 잣대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고 논평을 했습니다. 시민연대는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의 수사, 반부패특위에서 다룰 것을 요구합니다. 국민들도 좀더 명확한 것을 알고 싶을 것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어떻습니까. 그가 민주산악회 재건을 연기한 것은 지적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적을 제때 받아들이지 않아 낭패를 당한 것 같습니다. 지적을 더 일찍 받아들였다면 부산 경남지역 초·재선의원들이 ‘독립선언’까지 했을까요. 김 전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한 듯 독립선언이 있은 뒷날 계획됐던 모임도 취소했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꺼리는 개인이나 조직에게 반면교사가 될 만 합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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