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편집실에서] 한 농민의 분노

경남 함양군 지리산 자락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강득문(50)씨는 8월 중순 서울의 한 농협 공판장에서 수박을 경매한뒤 기절초풍했습니다. 그가 천리길을 싣고온 수박은 개당 8kg이상으로 모두 802개였습니다. 낙찰가는 20만원이었습니다. 개당 250원꼴입니다. 20만원도 기가 찰 노릇인데 그의 손에 잡히는 돈은 4만원이라는 말에는 열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개당 50원인 셈이지요. 봄부터 여름까지 심혈을 기울여 키운 ‘분신 802개’의 가치였습니다. 달랑 4만원이 그의 손에 떨어지는 이유는 공판장측이 수수료 3만원, 하차료·선별비 등 제경비 16만원을 제했기 때문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4배나 컸습니다.

생산비 등을 생각하면 더욱 한심해집니다. 수박을 키우는데 드는 생산비는 인건비를 제외하고 종자대 비료대 약대 등만 100만원이 훨씬 넘습니다. 여기에 서울까지 수송비가 28만원입니다. 손에 잡히는 돈 4만원은 수송비의 7분의 1입니다. 생산비 인건비 등까지 고려하면 이만저만한 헛농사가 아닙니다.

공판장의 제경비와 수송료를 손해보더라도 다시 가져가기로 작정했습니다. 아파트 등을 돌며 팔면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지리산을 찾는 피서객을 상대로 가족들이 모두 나서 길에서 팔아도 개당 2,000원은 족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들이 모두 나서는 것도 그렇고, 제때 팔지 못하면 질이 떨어진 수박으로 소비자를 속이는 것이기에 상경한 것이지요. 고민과 아픔은 그래서 더 컸습니다. 길거리에 쏟아 놓고 짓밟아 깨버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4만원을 달랑 들고 내려가기에는 가족들의 얼굴이 눈에 밟혔습니다. 그가 ‘개선’하기를 기다리는 이웃 수박농가들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수박농사를 지은지 8년동안 이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공판장측은 또 한번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8만원을 더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4만원이 순식간에 12만원이 된 것입니다. 개당 150원꼴입니다. 강씨는 도대체 이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려 3배’나 많아진 것에 홀려 넘겨버렸습니다.

그런 강씨는 한통에 30만원짜리 무등산수박이 서울의 한 백화점에 나왔다는 보도를 보고 보름여전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박생산이 끝나는 시점에 출하되는 무등산수박이 맛과 크기가 다르고 희소성까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생산자 몫이 궁금했습니다. 9월 3일 열린 무등산수박 출하 기원제 및 시식회에서 7-9㎏짜리가 1만5,000-2만5,000원, 10-12㎏ 4만-6만원, 13-15㎏ 8만-10만원, 16-18㎏ 11만-14만원, 19㎏이상은 15만원 이상으로 가격이 형성됐습니다. 30농가가 참여하는 무등산수박 작목반은 철저한 선별작업을 거쳐 규격상품을 공동출하합니다. 전혀 다른 수박의 두 모습입니다.

강씨의 이번 경험은 혼자만 겪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생산량 조절, 출하시기 지도 등 농정부재가 빚은 농민들의 피해사례를 우리는 자주 보고 들어 왔습니다. 물론 돈이 된다면 너도 나도 뛰어드는 농민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를 예방해주는 것 또한 농정입니다. 강씨가 경험한 공판장의 ‘횡포’가 그럴진대 중간상인들의 농간까지 생각한다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입는 피해의 정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일부 아파트단지 부녀회는 농민들과 직거래를 합니다. 중간 유통과정을 없애 모두가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중간상인의 횡포를 막는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직거래는 생산자가 좋은 상품을 공급하고 부녀회는 판로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신뢰로 직거래가 이뤄지면 철따라 작지만 훈훈한 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김장철에는 배추 고추 마늘 등으로 아파트가 장터를 방불케 할 것입니다. 도시와 농촌을 잇고 가교이자 서로를 이해하는 장입니다. 숱한 지적에도 불구 개선되지 않고 있는 농산물 유통구조를 보며 아파트단지마다, 동네마다 직거래가 이뤄지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최근에는 직거래장터를 운영하는 자치단체들이 늘어나고 있어 상상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재룡 주간한국부 부장 jrchung@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11월 제2855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11월 제2855호
    • 2020년 11월 제2854호
    • 2020년 11월 제2853호
    • 2020년 11월 제2852호
    • 2020년 11월 제2851호
    • 2020년 10월 제2850호
    • 2020년 10월 제2849호
    • 2020년 10월 제2848호
    • 2020년 09월 제2847호
    • 2020년 09월 제2846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천년 세월 담아낸 보헤미안의 도시'체코 프라하 '천년 세월 담아낸 보헤미안의 도시'체코 프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