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편집실에서] 꿈을 빼앗는 제도

IMF사태로 구직난이 가중되면서 많은 대졸자나 대학 재학생들이 고시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취직이 안되는데다 당분간 어려울 상황이라면 도전해볼만한 것이 고시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는 동안 실업자라는 주위의 눈도 피할 수도 있어 너나 없이 뛰어든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지난해의 특수상황이 아니더라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시공부를 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조선조의 과거제도는 입신양명의 창구였습니다. 특히 쇠락한 양반들에게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수단이었지요. 요즘도 고시가 돈없고 힘없는 집안이 일어설 수 있는 길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농촌이나 소도시에서 법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행 고시제도가 과거제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응시자격(양반)’제한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고시제도를 바꾸는 방안이 최근 추진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것을 내놓았습니다. 3년 과정의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에게는 법무박사 학위와 함께 사법시험 1차시험이 면제되며 28세까지 입영연기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대학원은 전공에 관계없이 학사학위 소지자를 선발해 교육한답니다. 개혁안은 또 사법시험 1차시험 응시자격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거나 부전공 등으로 법학과목을 36학점 이상 이수한 경우로 제한했습니다. ‘고교와 대학교육을 정상화하고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의 도입이유입니다.

그러나 그같은 취지와는 달리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먼저 기회의 박탈입니다. 응시자격 제한은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평등권에도 위배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질 때 다양성 확보가 쉽습니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전문분야에 종사하다가 고시에 합격해 법조인으로서의 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에게 부여되는 박사학위, 1차시험 면제, 28세까지 입영연기는 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기회는 원천봉쇄하면서 특혜까지 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사회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박사학위 부여는 5학기(실제로는 3년)을 수료하고 종합시험에 합격한 뒤 논문심사에 통과해야 겨우 석사학위를 받는 행정·환경·교육 분야 전문·특수대학원과 형평에도 어긋납니다. 게다가 전문대학원은 ‘돈이 있어야 판·검사,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반발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합니다. 또 다른 특권층을 만드는 격이지요.

셋째, 입시가열이 해소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위적으로 기회를 제한한다고 해서 법대지망생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은 안이한 생각 같습니다. 법대 출신들에게 취업문이 넓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그같은 현실이 경쟁률을높혔던 이유중의 하나였음을 간과했습니다. 법대생은 모두 고시공부를 한다는 등식으로 보아서는 안되지요. 결국 전문대학원이 설치되는 대학에서 법학과가 없어지더라도 줄어드는 만큼 다른 대학의 법학과 경쟁률이 높아질 개연성이 큽니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은 ‘특혜’ 때문에 경쟁률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 뻔합니다. 고시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특혜들은 모두에게 솔깃한 것들입니다.

경쟁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자질이나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경쟁사회입니다. 또 질적 향상은 경쟁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검사가 될 사람을 상대로 전문분야에 대한 교육기회를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법연수원의 교육기간을 늘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교육을 하거나 예비 판·검사제 도입 등도 방법일 것입니다. 학부에서의 전공이 판·검사 업무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고려할 때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합니다.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꿈은 활력소입니다. 꿈이 있음으로해서 개인이 발전하고, 조직도 발전하며, 국가도 발전합니다. 이번 개혁안이 처음부터 다시 검토되고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