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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조작, 이젠 '똑똑한 아이'까지?

최근 미 프린스턴 대학의 생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똑똑한 쥐’를 탄생시켰다.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비롯한 IQ가 보통 쥐보다 훨씬 뛰어난 ‘두기’를 창조한 것.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를 역추적하고 이에 따라 유전자를 조작해 낸 결과였다. 두기는 ‘똑똑한 인간’창조에도 서광을 비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최근 복제양에 이어 또다른 윤리·사회적 논쟁을 빚고 있다. 타임 9월13일자의 지상논쟁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언젠가는 부모들이 유전자 카탈로그들을 쭉 훑어본 뒤, 담갈색 눈과 빨강머리, 외향적인 성격에다 완벽한 품위를 갖춘 아이를 특별주문하게 된다.’

우리는 이같은 전망이 조만간 실현될 것이라고 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자들이 실제로 ‘IQ 결정 유전자’를 발견했는지 여부나, 지능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접어 두자. 매번 이어지는 새로운 발견들은 우리가 채 시작도 하지 못한 논쟁의 형태와 이에 대한 초점을 제공한다. 비관론자들 조차도 이같은 문제가 현실화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만약 자신의 아이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면 공평성에는 문제가 없을까.

“아이 ‘주문생산’ 시대 올 수도” 경고

IQ 결정 유전자 조작과 관련한 공평성, 인간의 운명, 무익성, 가치의 문제는 윤리적, 경제적으로 당혹스러운 것이다. 부작용이 나타났을 경우 우리는 어느 것을 용인할 것인가. 아이들을 더 똑똑하게 만들기도 하고 더 바보로 만들기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부자만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신은 인간에게 자신을 재창조할 능력과 함께 여기에 저항할 도덕적 힘도 부여했을까. 펜실베이니어 대학의 생물윤리학자 아서 카플랜은 “이같은 문제에 대해 학교와 교회,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도 토론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더 지체하면, 앞으로 5년내에 유전자 의사들이 ‘똑똑한 아이를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간판을 길거리에 내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논쟁을 더 골치아프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위험한 지경에 와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들은 담낭 섬유증이나 뒤셴형 근위축증과 같은 유전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아를 관찰할 수 있다. 언젠가 의사들은 이같은 질병을 자궁속에서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와 완전함은 별개다. 만약 의사들이 앞으로 자폐증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다면, 정상적인 아이를 더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기술은 항상 수요에 따라간다. 태아 성감별 시험은 유전병을 퇴치하기 위해 나왔지만 현재는 아들 딸을 가려 낳는데 사용되고 있다. 성장 호르몬은 심각한 성장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됐다. 하지만 이제는 1년에 3만 달러의 주사비를 댈 수 있는 가정에서는 의도적으로 아이의 키를 키우기 위해 사용하는 실정이다.

인체조직의 불균형 초래

자기개발은 미국에서는 일종의 종교였다. 하지만 무엇이 정상적인 지에 대한 척도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치열교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지만 비뚤어진 코를 교정하는데는 망설였다. 하지만 지난 7년간 10대의 플라스틱 교정수술은 2배나 늘었다. 지적인 편의성에서도 마찬가지다. 효과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을 모짜르트의 음악에 푹 파묻거나 장난감 컴퓨터를 요람속에 집어 넣는 등의 조기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하버드 대학으로 가는 속도를 단축시키려 한다. 불임부부들은 난자를 얻기 위해 신문에 광고하고 기업가들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정자를 판매한다.

“아이들을 보다 좋은 학교에 취학시키는 것과 보다 좋은 유전자를 갖게 하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생물윤리학 싱크탱크인 하스팅스 센터의 에릭 페어렌스는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그것은 능력을 개발하는 것과 구입하는 것 사이의 차이나 마찬가지다.”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교육시키는 것은 아이의 천부적 재능을 향상 시킬 수 있지만 천부적 재능을 사는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을 소재로 하는 소설과 영화들은 한가지 경고를 시사한다. 바로 이러한 실험들이 우리가 예측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은 알약이나 여름학교 학급보다는 훨씬 지속적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통제할 수 없는 사항들을 결정하지만, 이같은 결정의 장기적 영향은 불확실하다. 하스팅스 센터의 토마스 머레이 소장은 “인체 조직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는 장식물과는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인체의 한 부분을 변화시키면 다른 부분에 매우 예민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과학자들이 기대하지 않았고, 실험해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생쥐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지적인 능력을 향상시켰을 때 다른 인성특징에 변화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UCLA 신경생물학자 알치노 실바는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한다. “기능향상을 위해 어떤 유전적 변화를 일으켰을 때 다른 기능이 영향을 받는 것은 매우 흔한 현상이다. 말끔한 일이란 결코 없다.”줄기차게 생물학 기술을 비판해 온 제레미 리프킨 같은 비판론자는 한 술 더 떠서 이렇게 묻는다. “정신적 괴물을 창조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나. 우리는 스스로를 멸종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새로운 형태의 차별 낳는 일

보다 광범위한 우려는 공평성에 관한 것이다. 지능향상은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을까, 아니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한정될까. 리프킨의 견해는 부정적이다. “모든 부모들이 이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이같은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까.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차별을 낳을 것이다. 기술을 이용하지 못해 IQ가 낮은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게 될까.”우리의 똑똑함이 자연적인 것인지, 아니면 인공적인 것인지를 판별할 권리는 누가 가지게 될 것인가. 변형 유전자를 가졌는지 아닌지 여부는 배우자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부모가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아 똑똑하게 되지 않았다면, 장래 아이가 부모를 대상으로 소송을 거는 일은 없을까.

논쟁의 편의를 위해 IQ향상이 아주 간단한 작업이라고 상상해 보자. 과학자들이 두뇌향상 연구소를 만들어 여기에서 아스피린 처럼 값싸고 간편한 약을 발명했다고 상상해 보자. 한 알을 먹고 난 다음날 아침에는 좀 더 똑똑해 진다고 할 때 이것도 문제삼을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다.

일부에서는 좀더 크고, 더 잘빠지고, 더 똑똑한 식으로 사람들을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에모리 대학 캔들러 신학대의 윤리학자 엘리자베스 바운즈는 말한다. “도덕적인 다양성의 측면에서 볼 때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특정의 지배적인 가치에 따라 훨씬 단일적인 사회를 만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훨씬 조작된 사회라는 것이다.”

기억력 향상, 과연 행복한 일일까

이같은 논쟁은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우선 왜 우리는 기억력을 향상시키기를 원하는가. 인간을 보다 행복하고 부유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똑똑하지만 불행한 사람이 있고, 엄청나게 성공했으면서도 자기집 전화번호도 기억못하는 사람이 있기 한지만. 더 똑똑해 지는 것은 더좋은 학위, 더 좋은 직장을 얻는데 도움이 될 수 도 있지만, 반대로 원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스탠포드 대학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로버트 맬렌카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모든 사람이 환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망각은 인간의 적응에 엄청난 순기능도 한다.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아지면 행복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강간 피해자나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을 생각해 보라. 두뇌가 특정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데는 이유가 있다.”

비전을 제공하고 경고를 발해야 하는 것은 결국 과학자들이다. 뛰어나게 생생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은 때때로 정신적인 과부하에 대해 불평하기도 한다. 아이오와 대학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시오 박사는 “이런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는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매번 결정할 때 마다 20개의 어려운 선택지를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망각에는 즐거움과 평화가 따른다. 말 그대로 망각은 마음을 깨끗하게 해줄 뿐 아니라, 목전에 놓인 특정하고 직접적인 증거 보다는 일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해준다. 망각은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여유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 나은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정리=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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