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문화로 세상읽기] 한국영화 '질주'와 청춘의 초상

10대, 20대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질주한다. 그들은 마치 누가 빨리 달리는가를 내기하듯 굉음을 내며 몰려다닌다. 우리는 그들을 ‘폭주족’이라고 말한다.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거칠고 위험하게 달리는 족속들이란 얘기다. 기성세대가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정상적인 젊은이들이라면 저럴수 없다”고 말한다.

오죽했으면 55년 니콜라스 레이 감독,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을 보면서 영화제작자들이 “저들을 보라.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영화제목까지 그렇게 붙였을까. 이 영화 역시 제임스 딘이 여자친구를 놓고 절벽앞에서 자동차 경주를 벌여 친구를 죽게 만든다.

어느 시대에나 청춘은 있고, 영화는 그 청춘의 초상을 담았다. 그것은 시대와 제도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 편안히 지나가는 청춘들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들은 새로운 가치를 찾고, 기성의 틀에 저항하는, 그래서 더욱 소외되고 상처를 안은 청춘들이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그들을 반기지 않는다. 그들의 외침을 파괴나 혼돈의 폭발물로 취급한다. 그래서 그들은 빨리 그 시대가, 자신의 청춘이 지나길 바란다. 사방을 둘러봐도 희망과 꿈이 없는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 스피드는 그래서 고달픈 젊음의 자기표현이다. 이 때 그들은 자기만의 속도를 갖고 싶어한다.

69년 대니스 호퍼 감독의 ‘이지 라이더’에서 두 히피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한다. ‘진정한’미국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들 눈에 60년대 미국은 탐욕과 모순의 국가였다. 젊음의 자유가 숨쉴 곳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농부는 그들의 긴 머리가 불손해 보인다며 총을 난사해 죽인다. 질주가 끝나는 곳에는 항상 청춘의 죽음이 놓여 있다.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청춘은 달리고 싶다. 홍콩의 젊은이도, 프랑스 젊은이도, 일본의 젊은이도, 우리의 젊은이도. 7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입영열차를 타고 자포자기적인 탈출을 시도했고, 80년대에는 3등 열차를 타고 ‘고래사냥’을 떠났다.

90년대 청춘은 그보다 더 빨라졌고 맹목적이 됐다. 학교에서 배척당한 ‘비트’의 민은 갈 곳을 모른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질주해서는 부탁받은 폭력을 행사한다. 이제 최소한의 낭만도 남지 않았다. 오직 허무와 그 허무를 가르는 질주와 자기파괴 뿐이다. 그것은 그들이 10대후반을 지나 20대에 들어서서도 바꾸지 않는다. 그들에게 ‘태양은 없다’. 3류복서 도철(정우성)과 3류 사기꾼 홍기(이정재)에게 여름 한낮의 긴 시간은 지루하다. 온 힘을 다해 뛰어도 가난하고 외로운 뒷골목을 벗어날 수 없다.

어찌 그들 뿐이랴. 상영중인 이상인 감독의 ‘질주’의 주인공들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점이라면 에덴빌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네명의 주인공이 청춘영화의 전형처럼 하나같이 밑바닥 인생이 아니라는 것. 산동네에서 여동생과 단 둘이 사는 상진(이민우)를 빼면 언더그라운드 로커인 바람(남상아)은 중산층 가정의 딸이고, 선우(송남호)는 서울대 법대출신이고, 승현(김승현)은 부유층 오렌지족에 가깝다.

이들이라고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진은 여고생인 여동생의 탈선, 바람은 상업문화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지킬 수 없어 방황하고, 선우는 고시실패로 인해 좌절한다. 승현 역시 아버지의 반대로 하고 싶은 만화공부를 못하자 자포자기하고 여자꽁무니만 따라 다닌다. 그들은 단합대회를 가지지만 모두가 혼자다. 제각각의 삶의 무게만큼 고민하고 자기 상념에 빠지다 헤어진다.

‘질주’가 아름다운 것은 그들 역시 꿈과 희망이 막혀 있지만 자기파멸적인 질주를 해놓고 세상에 그 화살을 돌리지만 않고, 그래도 각자 꿈을 찾아가려는 모습이다. 그것이 현실과 타협이든, 자기만의 고집이든. 오늘도 젊은이들은 꿈을 잃어서, 아니면 꿈을 쫓아서 질주한다.

이대현·문화부기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11월 제2855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11월 제2855호
    • 2020년 11월 제2854호
    • 2020년 11월 제2853호
    • 2020년 11월 제2852호
    • 2020년 11월 제2851호
    • 2020년 10월 제2850호
    • 2020년 10월 제2849호
    • 2020년 10월 제2848호
    • 2020년 09월 제2847호
    • 2020년 09월 제2846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천년 세월 담아낸 보헤미안의 도시'체코 프라하 '천년 세월 담아낸 보헤미안의 도시'체코 프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