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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자유.몰입... 그곳은 젊음의 해방구

틀에 박힌 형식도 없다. 누구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슴으로 리듬을 느끼고 그것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맡길 뿐이다. 강렬한 비트의 전자음 속에서 몰개성에 대한 저항과 세기말적 허무를 탐닉한다.

11일 밤 9시30분 홍익대앞 A테크노 클럽. 이곳에선 테크노음악 마니아들이 말하는 ‘레이브(RAVE)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지하 1층 입구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입장권(1인당 1만원)을 판매하며 손님을 맞았다. 주로 20대 중반의 젊은 남녀들이 하나둘씩 짝을 지어 온통 검게 장식된 홀 안으로 빠져 들었다.홀 안은 여느 록카페, 나이트클럽과 달리 실내 구조가 DJ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춤추기 용이하도록 좌석도 모두 벽쪽에 붙여 놓았다. 히피 의상에, 머리는 번개에 맞은 듯한 독특한 차림새의 DJ가 열심히 LP판을 앞뒤로 스크래칭 하거나 복잡한 전자 기계를 조작하며 음악을 틀었다.

반복되는 격렬한 비트의 전자 사운드에 사이키 보이스가 조합된 음악에 맞춰 젊은이들은 자유롭게 몸을 흔들었다. 음악에 비해 춤은 단순했다. 힙합이나 디스코, 브레이크댄스 등 기존의 요란한 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냥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팔을 좌우로 놀리는 정도였다. 형식도 없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즐기며 몸을 흔들었다.

의상도 춤 만큼 다양했다. 반팔 티에 청바지를 입은 거리 패션(이들은 이것을 빈티지패션이라고 불렀다)이 주를 이뤘고 간혹 사이버룩, 히피 패션 등 유별한 의상을 입은 부류도 눈에 띄었다. 머리를 금발로 염색하거나 인디안 스타일의 복장을 한 축도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아무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상당수가 서로 안면이 있는 듯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아 아직도 테크노가 클럽 단위로 일부 계층만이 향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이한 복장에 춤 잘추기로 정평이 나 있는 단골이라는 김희정(21·여·대학 휴학)씨는 “테크노 클럽은 누구의 간섭도, 누구를 의식하지 않아서 편하다. 내면의 감정을 음악에 실어 자유롭게 분출할 수 있어 일주일에 한번 정도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트클럽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나이트는 남녀가 서로 부킹하고 독한 술을 마셔대 탈선 소지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오직 음악과 춤을 즐기기 위해서 오기 때문에 훨씬 건전하다”고 주장했다.

3년째 테크노 클럽을 다니고 있다는 김태훈(23·대학 휴학)씨도 “2만원 정도면 하루 저녁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오히려 나이트클럽보다 비용도 저렴하다. 나이트가 주로 여자 친구를 사귀려 가는 곳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고가의 주류는 팔지 않았다. 이온 음료나 콜라에 진을 섞은 가벼운 칵테일과 맥주가 전부였다. 가격도 음료수는 3,000원, 가장 비싼 칵테일도 한잔에 6,000원을 넘지 않았다. 나이트 클럽에서 파는 고급 양주는 아예 팔지도 않았다. 안주는 비스켓, 과일, 빵 등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고 무료로 제공됐다.

이 클럽 매니저이자 인기 테크노 DJ인 화화(본명 이용원·28·테크노게이트소속)는 “빠른 전자 비트와 사이버틱한 분위기가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세기말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져 최근 테크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류쪽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DJ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끌려졌던 기존 음악과 달리 테크노는 뮤지션과 청취자가 1대1 관계로 만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자정이 다가오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20여평 남짓한 홀안은 서 있기도 힘들 만큼 100여명의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홀에서 귀청이 알릴 정도로 때리는 앰프의 파열음이 이어졌고 젊은이들은 무대와 좌석을 가릴 것 없이 아무곳에서나 꺼리낌없이 음악에 몸을 내맡겼다. 일부는 입장시 나눠준 야광 목걸이를 흔들며 흥을 돋우기도 했다. 20대 초반의 여학생은 2시간이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춤만 췄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재희(22·여·대학 휴학)씨는 “손님들은 대부분 테크노 마니아들”이라며 “이들은 서로 인터넷을 통해 파티 장소와 일시를 알리며 부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잘아는 사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춤을 동경해 이곳에서 일하게 됐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다. 그래서 월급에는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이날 국내에서 활동하는 12명의 테크노 뮤지션들이 함께 제작한 ‘테크노 앳 코리아(techno@kr)’라는 음반을 제작한 ‘디엠에스 트랙스’팀이 음반 홍보를 했다. 이 음반에 참여한 테크노 뮤지션인 DJ 트렌지스터헤드(민성기·29)는 “최근 주류 가수들중에 스스로 테크노 음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으나 대부분 아류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지 전자음을 삽입했다고 테크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멜로디보다는 반복된 리듬, 그리고 보이스도 극히 절제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과 전파 과정, 향유하는 계층 등도 고려되야 한다”고 말했다.

밤이 깊어가면서 외국인들의 수가 점차 늘어났다. 자신을 테크노 마니아라고 밝힌 한 20대 후반의 손님은 “예전에는 이곳을 찾는 외국 사람중에 극히 일부가 마약 등 약물을 복용했던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 젊은이들이 클럽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이런 외국인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털어 놓았다.

이 클럽의 주인이자 테크노 뮤지션인 DJAK(한익수·31)는 “외부에서 우려하는 것과 달리 국내 테크노 클럽은 광란의 장소가 아니다”며 “이 곳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억눌렸던 열정을 분출하는 건전한 방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새벽 2시가 가까워지면서 손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새벽 4시가 가까워 마감 시감이 다가올 때까지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예전의 소위 강남 물좋은 나이트클럽처럼 남녀가 서로 짝을 지어 2차를 가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없었다.

최근 1~2년 사이 우리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테크노 음악. 이 세기말적 음악 조류가 언더그라운드에서 뛰쳐나와 21세기 대중 음악의 큰 부류로 잡을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송영웅·주간한국부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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