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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서울 동대문구 제터마을

서울 성북구 안암동 5가와 동대문구 제기동 사이에 있는 안암로 큰길의 낮으막한 고갯길을 제터고개라 했다. 조선시대에 기우제 터와 산신제 터가 있었던 ‘제터마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제터마을’을 한자로 뜻빌림(意譯)한 것이 제기동(祭基洞).

우리나라는 예부터 농본지국(農本之國)이기에 농사의 신은 우리조상들이 가장 소중히 받들어 모신 신명이었다.

그래서 어느 왕조이건 종묘(宗廟)의 제사와 이 농신에 대한 제사는 이대국제(二大國祭)로서 임금이 직접 제주가 되는 것이 관례였다.

중국의 농사신인 신농(神農)을 영입하여 우리나라 농사신으로 삼고 있는데, 신라의 경우 입춘(立春)뒤 해(亥)일(돼지날)에 선농제(先農祭)를 지내고 입하(立夏)뒤 해일에 중농제(中農祭)를, 입추(立秋)뒤 해일에 후농제(後農祭)를 지냈다. 고려시대는 선농제와 후농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선농제만을 지냈다.

조선조에 선농을 모셨던 사단(祀壇)이 선농단(先農壇). 이 선농단 제사가 기원이 되어 그 인근 마을이 전농동(典農洞)이 된 것이다. 1908년 나라가 기울면서 선농단의 신위(神位)를 사직단(社稷壇)에 합사함으로써 수천년 계승해 내려온 선농제가 중단됐다.

조선조의 선농제는 경칩이 지난 뒤 첫돼지의 날, 축시에 맞추어 시작됐다. 임금이 직접 제사를 올리고 발을 걷고 들어가 손수 밭을 가는 친경(親耕)을 했다. 친경을 하고 나면 수행했던 왕족, 정승, 판서, 문무백관 그리고 노인, 농민, 노비, 거지에 이르기까지 이 날만은 제물에 썼던 고기를 나누어먹는 노주례(勞酒禮)를 베풀었다.

제물에 쓰인 짐승은 시대에 따라 곰, 소, 돼지, 양 등으로 바뀌었으나 가장 큰 나라 제사였기에 소를 쓰는 것이 관례.

이 노주례는 임금을 비롯, 많은 백성이 더불어 나누어 먹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희생고기로 탕(湯)을 만들기 일쑤였다. 그래서 ‘선농제의 탕’이란 뜻으로 선농탕(先農湯)이 ‘설농탕’으로 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선농제에 즈음, 임금에게 바친 헌시(獻詩) 가운데 ‘살찐 희생의 소를/ 탕(湯)으로 하여 널리 펴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 만복이 고루 펼치니…. ’하는 대목이 있다.

또. 당시 축문을 보면 ‘처음으로 농사를 일으키어/ 우리 백성의 양식을 두텁게 하셨네/ 이 제사를 흠향하고/ 풍년이 이르게 하소서’

성종 7년(1476)에는 이곳에 관경대(觀耕臺)도 쌓았다.

이 선농단에서 찾아 누려야 할 뜻이 있다면 사민평등(士民平等)을 음식으로 보장하고 확인하는 의식이 베풀어진 민주주의의 마당이라는 점일 것이다.

지금도 민주-민생의 마당에 선농단(先農壇: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15호)을 축조, 매년 5월 선농제를 올리고 있으니 땅이름처럼 ‘제터마을(祭基洞)’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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