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세무조사] '세정의 칼'은 권력을 위해 춤췄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稅吏長)이요 또한 부자라. 제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중략)…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留)하여야 겠다.…(중략)…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매주 일요일 교회에 꼬박꼬박 나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경(루가복음 19장 2절에서 7절까지)의 한 구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삭개오까지 구원하려는 예수의 박애정신을 강조하는 이 대목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2,000년전 예수시대의 이스라엘에서는 세무공무원이 환영받는 직업(비록 부자이기는 하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권의 앞잡이’오명, 여전히 부정적 시각

그렇다면 2,000여년이 흐른 20세기 대한민국에서 세무공무원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장구한 세월이 지난 만큼 이제는 모든 세무공무원들이 ‘국가의 돈줄을 관장하는 고귀한 공무원’이라는 존경을 받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듯이 여전히 세무공무원, 보다 정확히 표현할 경우 국세청은 그 막강한 힘에 비례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나라의 수입’을 관장하는 국세청이 이처럼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권의 앞잡이 역할에 충실했던 ‘과거의 구린’역사때문이다.

실제로 1966년 재무부 사세국(司稅局)에서 분리돼 출범한 국세청의 지난 30여년 역사는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권력의 친위부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대 국세청장이던 오정근 청장은 1971년 대선때 김대중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목포의 삼학소주를 집중 조사, 결국 회사의 문을 닫게 만들었다. 또 1987년 대통령 선거때는 당시 성용욱 청장이 ‘선거자금을 조성하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세청 직원들을 동원, 11개 기업으로부터 54억원을 거둬 들였다.

국세청의 비뚤어진 역사는 90년대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1991년 서영택 청장은 대통령 선거에 정주영 회장이 출마하자 현대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여 1,308억원을 추징했다. 이에 불복한 현대그룹이 소송을 걸어 1996년 6월 대법원에서 승소, 세금을 돌려받기는 했지만 신성한 국세징수권을 남용한 사례임에는 틀림없었다.

1997년 대선을 전후해 벌어진 소위 ‘세풍사건’은 국세청의 떳떳치 못한 역사에서도 가장 창피한 대목이다. 이미 언론보도와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97년 대선 당시 국세청장과 차장이던 임채주씨와 이석희씨는 ‘돈을 내지 않으면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협박을 내세워 기업들로부터 모두 76억8,000만원을 모아 한나라당에 전달했다. 나라 살림에 써야 할 세금을 탕감해 주는 대신 당시 여당의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징수하는 범죄를 징세기관의 고위간부가 저지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육군참모총장, 경찰청장과 함께 ‘권부의 5대 핵심’으로 통하는 국세청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임명되었을까. 그리고 역대 국세청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역대 청장 대부분 대통령과 동향

우선 전임 국세청장 10명은 ‘권부의 5대 핵심’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대부분 당시 대통령과 동향인 경우가 많았다. 대구·경북 출신이 4명, 부산·경남 출신이 2명 등으로 60%이상이 영남권 인사였다. 안정남 현 국세청장이 최초의 호남출신 청장이라는 사실도 국세청장이 어떤 자리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국세청장의 재임기간은 평균 3년여. 다른 정부기관장에 비해 수명이 길었다. 이 역시 국세청장의 능력이 다른 장·차관과 비교할때 특별히 뛰어난 것이 아니라면, 정권과 관련되는 비밀스러운 일을 맡기다 보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앉혀놓고 쉽게 바꾸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는 대목이다.

정권의 신임을 받는 자리였으므로 국세청장은 당연히 장관으로 승진하는 자리였다. 김영삼 정권 출범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을 조사했던 추경석(8,9대) 청장과 11대 이건춘 청장 모두 건설부와 건교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