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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삼성] 삼성의 힘은 '돈과 정보'

‘5대19’

아마추어 야구경기에서 한쪽의 일방적 우세로 중도에 게임이 끝나버리는 소위 ‘콜드 게임(Called Game)’점수가 아니다. ‘5대19’라는 점수는 놀랍게도 국정감사장에서 장관을 매섭게 몰아세우고, 틈만나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주장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삼성그룹의 로비력에 굴복한 점수이다.

10월7일 저녁 국회 재정경제위 ‘서울-중부 지방국세청’감사장. 불과 몇 분전만해도 안정남 국세청장을 비롯해 국세청 직원들을 매몰차게 다그치던 의원들의 태도가 갑자기 눈에 띄게 수그러졌다.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이건희 삼성회장 일가의 변칙 상속 의혹을 밝히기 위한 이회장과 아들 재용씨의 증인채택을 결정하는 표결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김동욱 위원장이 “찬반토론 없이 곧장 무기명 비밀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국민회의 김근태 의원 등 일부 의원을 뺀 대부분의 의원들이 동조했다. 물론 각자의 입장이 밝혀져, 언론에 공개될 경우 난처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김근태 의원이 “이재용씨가 40억원 남짓의 종잣돈으로 2년만에 2조원에 이르는 재산을 형성한데 대해 국민적 의혹이 있다”라며 증인채택을 주장했지만 이내 묻혀버렸다. 한나라당 이상득, 박종근 의원 등이 “국세청이 증여세를 부과하는지 여부를 보고 채택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논리로 반대했고, 그동안 강력하게 증인채택을 주장하며 한나라당 의원을 공격하던 국민회의 한영애 의원마저 “곰곰이 생각해보니 국가경제상 안부르는 게 좋겠다”고 거들었다.

당초 증인채택을 주장했던 한나라당 김찬진 의원을 비롯해 자민련의 지대섭, 정일영, 국민회의 정한용 의원 등은 “토론을 않기로 해놓고 왜 이래”라며 표결을 종용했다. 인사문제를 제외하고는 기명 투표를 하는 것이 국회법 정신이건만 ‘무기명 표결’을 문제삼는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결과는 이미 밝혔듯이 ‘5대19’라는 압도적 표차의 부결. 누가 봐도 삼성의 로비력에 국회의원들이 무너진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국회의원들도 굴복시키는 삼성의 이같은 로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리고 도대체 삼성의 힘은 어느 정도나 되는 걸까.

삼성그룹의 막강한 힘의 원천은 뭐니뭐니해도 금력(金力)이다. 삼성그룹은 보유자산이 우리나라의 1년 예산을 능가할 정도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99년 4월 현재 자산총액은 105조5,630억원으로 2000년 정부예산(92조9,000억원)의 1.13배에 달한다.

다음은 삼성이 얼마나 돈이 많은 회사인지를 알려주는 일화. 삼성의 지주회사라고 할 수 있는 삼성생명의 광고 담당자들은 요즘 ‘광고문안’때문에 고심이다. IMF체제 직후인 98년초 삼성생명의 건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33조의 자신감’이라는 광고를 만들어 히트를 쳤는데, 4개월마다 자산규모가 1조원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시중 금리가 연 10%라고 감안하면 매년 3조원, 4개월마다 1조원씩 자산이 증가하는데 그 때마다 광고문구를 바꿔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따라다닐 정도로 잘 짜여진 삼성그룹의 정보조직도 삼성그룹 영향력의 한 축이다. 실제로 삼성그룹 정보조직은 그 규모와 운영 시스템에서 경쟁그룹을 압도한다.

우선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대외·홍보부문에 근무하는 인원은 약 300명. 이는 삼성그룹과 그나마 우열을 비교할 수 있는 현대그룹(100명선)과 LG그룹(70명) 등과 비교할 때 최소 3배가량 많은 규모이다.

거미줄같이 짜여진 삼성의 인맥관리도 정보수집과 로비에 결정적인 힘을 제공하고 있다. 삼성은 전 직원의 신상에 대한 완전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 그룹차원의 로비가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와 관련 모 대학의 A교수는 “학계 토론회나 세미나에서 삼성의 사업확장을 반대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몇년전 삼성그룹의 신규 사업진출을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더니, 삼성그룹에 취직해 있던 제자가 연구실로 찾아와 ‘선생님, 저를 봐서라도 다음번 세미나때는 제발 반대의견을 말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원했다”고 말했다. 물론 A교수는 애원하는 제자들의 눈망울을 의식,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삼성그룹은 ‘막강한 삼성의 로비력’에 대한 세간의 비난에 대해 “잘 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는 입장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별다른 의도없이, 아주 우연히 벌어진 일도 삼성에서 벌어졌다면 뭔가 흑막이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며 억울해 했다.

‘세계 일류를 지향한다’는 삼성의 신경영 이념이 정보력과 로비력에서도 ‘일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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