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씨가 마른다] 세계는 지금 포성없는 '종자전쟁'

10/20(수) 20:16

지금 세계 각국은 21세기 인류 식량자원의 열쇠인 토종 생물종 확보를 위해 ‘포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는 미국. 세계 최대의 농산물 생산·수출국인 미국은 70년대부터 한국은 물론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오지의 저개발국에서 동·식물과 미생물 종자를 마구 훑어갔다.

미국의 국제맥류옥수수연구소 보로그 박사는 우리 토종인 앉은뱅이밀을 가져다 품질 개량을 통해 고품종 다수확 신종 밀 재배에 성공, ‘인류 식량 증산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7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 품종은 전세계 1억㏊의 농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아직 정확한 통계로 잡히지 않지만 미국은 최고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된 구상나무와 미선나무, 털개회나무, 산딸나무에서 대구 능금, 밀, 콩, 벼 등 원예와 과수 농작물에 이르기까지 수백종을 밀반출해 갔다.

외국으로 반출, 이젠 우리영역 위협

또 사료용으로 우리 은행잎을 수입해간 독일의 제약회사는 효능이 탁월한 혈액순환제를 개발해 일약 세계적인 회사로 발돋움했다. 가까운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생선회를 먹을 때 사용하는 와사비의 원료인 ‘고추냉이’가 실은 울릉도가 원산지인 우리 토종 식물이다. 지금 한국에서 환경부 지정 보호식물로 지정되는 등 멸종위기에 처했지만 일본은 이것은 개량해 엄청난 소득 효과를 올리고 있다.

일본은 최근 들어선 우리의 음식의 대명사와도 같은 김치를 ‘기무치’라고 개칭해 세계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배추씨를 가져다 일본 토양에 맞게 개량, 우리의 고유 영역을 위협하고 있다. 또 현재 중국 정부가 권장하는 벼 품종의 하나가 바로 국내산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에서도 96년 농업과학기술원 한 관계자가 중국에서 탐나는 종자를 가져오기 위해 도색잡지 페이지에 종자 하나씩을 테이프로 붙여 몰려 들여온 적이 있다. 지금은 시중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70년대 보리고개를 해결해 준 ‘통일벼’도 사실은 필리핀에서 가져온 종자를 개량한 것이다.

이처럼 각국의 종자 확보 노력은 그야말로 ‘전쟁’이라 할만큼 치열하다. 특히 원예 식물이나 동물, 심지어는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토종 소유국의 지적재산권으로 인정한다는 생물종다양성협약이 93년 12월부터 발효되기 시작하면서 물밑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선진국은 이미 100년전부터 보호

선진국은 이미 100여년전부터 토종 생물종 보호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미국은 콜로라도주에 ‘국립종자은행’을 설립, 전세계 8,900여종 47만여점의 생물종을 확보해 놓고 있다.

영국에는 거의 모든 대학에 분야별 유전자 은행이 있을 정도다. 한 예로 런던의 ‘KEW식물원’에는 세계 각국의 식물 1만7,000여종이 보관돼 있다. 러시아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바빌로프유전자은행’에 2,529종 33만1,000여점의 동식물을 표본화해 놓았다. 세계 최대의 곡물 수입국인 일본 조차도 쓰쿠바에 있는 ‘생물자원연구소’에 1,200여종 26만1,000여점을 보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초저온의 진공상태로 식물종자나 유전자를 휴면 상태로 보존, 언제든지 번식시킬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내 종자은행에는 97년말 현재 1,548종 13만6,000여점이 보관돼 있다. 이 중 조선시대의 진상품인 자광도등 재래종 벼 1,000여점 등 2만2,000여점이 벼 품종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식량작물이 78.6%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원예작물이 7.5%, 특용작물이 10.1% 정도다. 이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6만여점이 93년 생물다양성협약이 체결되기 전에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20세기가 ‘자원’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생물종’의 시대다. 선조들이 물려준 ‘우리 땅’의 ‘우리 것’도 지키지 못한다면 아마도 600년전 이 땅에 목화씨를 전파한 문익점 선생이 땅속에서 통곡할 일이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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