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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씨가 마른다] 무너진 씨앗시장.. 입맛까지 잃는다

‘우리 입맛까지 외국인에 팔아넘겼다’

선진국이 유전자 조작을 가한 음식으로 우리의 식탁과 제사상이 가득찰 날이 멀지 않았다. 한 나라 농업과 원예업의 근간이라 할 종묘 회사 대부분이 다국적 외국계 회사에 잇달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97년 10월 스위스 노바티스사는 서울종묘를 인수했고 일본 업체인 사카다종묘사는 중견업체인 청원종묘를 집어 삼켰다. 또 IMF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에는 국내 매출액 1위인 흥농종묘와 상위업체인 중앙종묘 마저 미국 세미니스에 헐값으로 넘어갔다. 국내 5대 종묘회사중 3개, 씨앗시장의 59.4%(채소종자 기준)가 다국적 외국사 손에 들어간 것이다.

IMF 이후 외국 자본 유치가 기업 경영의 최선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종묘(種苗)사업은 그 성격이 다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량이자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민족 고유의 음식 맛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달러가 아쉬운 상황이라지만 그렇게 쉽사리 팔아 넘겨서는 안 될 분야로 영원히 간직하고 개발해 나가야 할 소중한 민족 자산이다. 이를 외국에 넘긴 것은 곧 우리의 식탁을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감상적인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자칫하면 우리의 식량마저 외국인 회사들의 손안에 놓이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조짐은 이미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유전자 조작으로 씨앗생명 단축

최근 선진국 종묘 회사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프로젝트 ‘터미네이터 테크놀로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종자 교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고품질 씨앗을 만드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물론 잡초도 자라지 않고 병충해에도 강하도록 품종 개량을 시킨 좋은 종자를 말한다. 농민이라면 누구나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씨앗은 이듬해 심으면 똑같이 수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씨앗은 이듬해 심으면 싹이 나지 않고 썩어 버린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당대로 씨앗의 생명을 단축해 버린 것이다. 이럴 경우 농민들은 해마다 종묘회사로부터 그 씨앗을 새로 구입해야 한다. 씨앗 회사에 얽매이는 ‘신 농노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런 ‘터미네이터 기술’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실용단계에 와 있다. 실제 올해 3월 미국 농무성과 면화 씨앗회사 델타&파인이 미국 특허를 받으면서 이 문제로 한차례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식량문제와 직결된 종묘 사업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질 수 없는 사업이다. 특히 21세기는 폭발하는 인구에 따른 빈곤문제가 최대의 난제가 되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100년전부터 미래 유망사업으로 인식,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와 지원을 해왔다. 과거와 같이 식물 육종 중심의 1차원적 수준이 아니라 종자 육종은 물론 유전공학, 식·약품, 화학, 전기·기계, 경영, 유통 등 첨단 기술을 총동원해 오고 있다. 현재 세계 종묘 시장은 규모는 대략 450억달러 수준이지만 종자 생산이나 유통, 수출입에 다른 전후방 연관사업을 고려한다면 그 규모는 천문학적 수준에 달한다.

규모큰 원예작물산업에도 눈독

종묘 산업의 첫단계인 우량 식물종자 확보에 있어서 미국은 44만여종, 일본은 21만여종 러시아와 중국은 각기 30만여종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뒤늦게 뛰어든 우리나라는 겨우 14만점을 간신히 확보하는데 그쳤다.

국내 종자 시장 규모는 아직 연간 1,50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그러나 단지 규모만으로 따질 수 없는 특수 요인을 지니고 있다. 만약 종자 시장이 외국인 과점으로 넘어갈 경우 현재 국제 시세의 20~30%에 불과한 국내 종자 가격은 앞으로 4~5배 정도 높아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러지 않아도 영세한 국내 농가는 파산 직전에 이를 것이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외국계 다국적 종자회사가 노리고 있는 것은 9조8,500억원에 달하는 원예 작물 사업이다. 이는 식량 생산액이나 축산물 분야보다 규모가 큰 황금시장이다. 수천년에 걸쳐 개량되고 개발 되어온 우리 작물중 무, 배추, 벼, 고추, 호박, 사과, 배 등 10여개 품종은 전세계가 인정할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이들 외국계 회사는 바로 이들 작물에 대한 독점력을 장악해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21세기 씨앗전쟁에 대비해야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말 그대로 21세기 농사는 씨앗 전쟁이다. 한나라가 아닌 세계시장을 겨냥한 연구·개발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유전자원을 확보한 소수 거대기업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국내 농업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작물, 우리만의 맛을 지키기 위해선 정부의 중장기 대책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아직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국내 종묘회사에 엄청난 연구·투자비가 소요되는 토종 씨앗 보존 작업을 맡기는 것은 아직은 시기 상조다. 정부 차원에서 전담 연구팀을 구성해 체계적으로 연구·관리해야 세계 다국적 기업에 맞설 수 있다. 또 국제식물 신품종보호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the Protection of New Variety of Plant)에 조속히 가입, 국내업체가 개발한 신품종이 국제협약을 통해 지적재산으로 보호받도록 해야 한다.전문가들은 이같은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다면 우리 식탁은 외국인들에게 점령당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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