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삼성] 누가 삼성을 위기라 했나

10/20(수) 21:10

1년의 열두달을 특별한 이름없이, 순서에 따라 ‘1월, 2월, 3월…’로 부르는 우리와 달리 서양 달력에는 달마다 이름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영어로 1년의 첫번째 달은 잘 알다시피 ‘재뉴어리(January)’이다. 이는 로마인들이 서양 달력을 만들면서 1월을 ‘야누스(Jauns) 신(神)의 달’이라는 뜻인 ‘야누아리우스(Januarius)’로 부른데서 유래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야누스’가 무엇이길래 로마인들은 1월을 ‘야누스 신의 달’로 부르게 되었을까. ‘야누스’는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문(門)의 신’이다. 문이 모든 행동의 시작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야누스’는 집이나 도시의 출입구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로마인들은 또 ‘문이란 앞뒤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라는 생각에서 ‘야누스 신’은 두개의 머리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따라서 로마인들이 1월을 ‘야누아리우스’로 부르기로 한 것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하는 시기(지중해성 기후인 이탈리아 반도는 한반도와 달리 정말로 1월부터 봄이 시작된다)인 1월이 ‘겨울의 매서움’과 ‘봄의 온화함’을 함께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탁월한 작명(作名)인 셈이다.

이처럼 특정 개인이나 조직이 동시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얼굴이나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을 ‘야누스’라는 단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99년 10월 현재 한국 재계에서 가장 ‘야누스적인 재벌’은 단연 삼성이다.

삼성그룹은 정치권이나 여론과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겉으로는 사상 최대의 위기상황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올들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삼성의 모습은 최악이다.

‘삼성불패’신화에 종언을 고한 삼성의 자동차사업 포기, 5,000원짜리 주식이 사실은 그 140배인 70만원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발표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삼성생명 특혜상장 의혹, 단돈 16억원(?)의 상속세로 이뤄진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재용씨에게로의 경영권 세습, 세정(稅政)의 칼날을 번뜩이는 국세청이 삼성에 대한 세무조사설, 한때 삼성그룹의 대변지였던 중앙일보와 정부의 갈등 등 겉으로만 보면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며 시작된 ‘삼성의 60년’역사중 이보다 더 다급한 상황은 없었을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대외 홍보담당자들 사이에서는 “하루도 제때에 퇴근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라는 하소연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야누스 재벌’ 삼성의 ‘괴로운 표정’뒤에는 넘쳐나는 돈 때문에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는 ‘즐거운 표정’이 숨겨져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올해 전례가 없던 기록을 세웠다. 증권거래소가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의 99년 상반기 영업실적을 분석한 결과 증시에 상장된 삼성그룹 12개 계열사 전부가 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그룹의 경우 16개 계열사중 6개 기업이, 대우그룹의 경우 10개 계열사중 4개가 적자를 면치 못한 것과 크게 비교되는 실적이다.

단순히 흑자를 기록한 계열사 숫자 못지않게 재계를 놀라게 하는 것은 흑자규모. 현대계열 상장사의 경우 99년 상반기중 849억원의 적자를, 대우그룹의 경우 619억원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삼성그룹 계열사의 총 흑자규모는 1조6,722억원을 넘어선다.

경영의 건실도를 나타내는 재무구조나 정부가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계열사 축소에서도 삼성그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우선 재무구조. 삼성의 6월말 현재 부채비율은 192.5%로 정부가 연말까지 요구하고 있는 ‘부채비율 200%’를 유일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이는 SK(부채비율 227%), LG(246.5%), 현대(340.8%) 등 다른 재벌의 경우 연말까지 부채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강도높게 군살을 빼야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삼성은 또 계열사도 작년말 65개사에서 올 4월 중앙일보와 보광을 분리하는 등 현재 49개사로 축소했다. 앞으로 삼성종합화학 등 빅딜 대상업체를 포함해 9개사를 더 분리할 경우 연말까지는 계열사가 40개로 대폭 줄어든다.

삼성은 이와함께 “기술력에 있어서도 다른 그룹과 차원이 다르다”라고 주장한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1993년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뒤 본격적으로 추진한 ‘월드베스트’전략으로 반도체, LCD 등 시장점유율 측면에서 세계 5위안에 드는 제품이 17종에 이르고 있다. 더구나 이중에서 12종은 시장점유율이 1위라는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특히 후발주자로 93년에 사업을 시작한 TFT-LCD부문에서는 불과 7년만에 샤프 등 일본 선진업체를 뛰어넘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완제품으로는 전자레인지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야누스 재벌 삼성.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속으로는 잘 나가는 삼성. 사비니족(族)의 침공으로 위험에 빠진 로마를 야누스신이 침략자에게 뜨거운 물을 퍼부어 구원했다는 로마신화처럼 삼성그룹의 ‘외빈내화(外貧內華)’가 한국 경제에 과연 활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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