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대] '강한 현대'이면엔 계산.정경유착 있었다

10/26(화) 20:23

현대는 왜 강할까. 현대그룹은 무엇 때문에 한국의 최고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한국의 재벌에 대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 조차도 ‘현대그룹의 강점’을 묻는 질문에 대부분 ‘특유의 밀어붙이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만 본 피상적인 대답일뿐이다. 강원도 산골의 가출 소년이었던 정주영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을 일궈온 역사는 겉보기에는 도전정신에서 비롯된 모험의 역사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정 명예회장 특유의 철저한 계산과 ‘정경유착’이라는 다소 부끄러운 모습이 숨겨져 있다.

실제로 현대그룹이 한국 최고의 재벌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 계기인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현대의 성장과정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를 끝마친뒤 현대가 정부로 부터 받은 돈은 87억9,600만원. 이익은 3억3,000만원이었다. 이는 1968~1970년 기간중 현대건설의 국내 공사 도급액중 24.5%를 차지했으나 순이익 규모는 전체의 7.8%에 불과했다. 요컨대 수치상으로는 결코 잘한 장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현대그룹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왜 남지도 않은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까. 또 현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불과 3억원이 조금 넘는 이익을 남기는 것에 만족했을까.

대답은 이미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아니오’이다. 현대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은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는 1970년 7월7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서울-부산간 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달아준 금탑산업훈장으로 연결됐다. 그리고 이 훈장은 박정희와 정주영, 3공화국과 현대를 맺어주는 상징물이 됐고 현대그룹은 중동진출과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합류, 한국 최고의 재벌로 자라날 수 있었다.

정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사업을 확장하는 현대의 이같은 전략은 ‘국민의 정부’출범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정권’시절 미운 털이 박혀 상대적으로 삼성그룹에 비해 열세였던 현대는 ‘DJ정권’이 들어선뒤 불가사리 같은 기업인수 의욕으로 삼성을 따돌리고 재계 정상의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

98년 이후 현대그룹이 인수한 기업을 보면 자연스레 ‘정경유착’이라는 구시대적 단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현 정권의 지역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전남-광주 지역의 투자신탁회사였던 한남투자신탁이 1998년 모기업인 거평그룹의 부도로 위기에 몰렸을때 현대는 앞뒤 가리지 않고 ‘국민투자신탁’을 동원해 한남투신을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현대로서는 당연히 손해를 보는 장사였으나 끓어오르는 호남민심을 의식, 전전긍긍하던 정권으로부터 큰 점수를 얻은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한국 경제를 외환위기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기아사태’의 뒷처리도 사실상 현대가 맡았다. 부실덩어리로 전락해 어느 누구도 인수하지 않는 바람에 고위층의 속을 썩이던 기아자동차를 현대그룹이 인수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과 1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들여 금강산 관광을 실현시켜 보수세력의 반대로 위기에 빠졌던 ‘정부의 햇볕정책’을 구원한 것도 현대였다.

현대그룹으로부터 적극적인 도움을 받은 정부 역시 나름대로 충분한 보답을 했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 평가이다. 현대그룹은 펄쩍 뛰지만 LG그룹에서는 아직도 반도체 통합법인의 경영권이 현대에 넘어가게 된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고 믿고 있다.

물론 현대그룹은 1998년 이후 자신들의 확장정책에 대해 다른 설명을 내놓고 있다. 요컨대 문민정부때 움츠러들었던 ‘현대식 경영’이 다시 힘을 얻은 것뿐이지 정부와의 유착은 없다는 것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대부분 2, 3세 체제로 넘어간 다른 그룹들과 달리 현대는 창업주 특유의 대세판단과 일단 목표를 정하면 과감히 밀어붙이는 불도저식 경영으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영삼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몇년간 신규사업 진출이 막힌 것도 전화위복이 됐다”고 설명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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