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위기의 현대] '부자지간의 피'가 더 진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2년전인 서기 997년. 5대10국의 혼란기를 평정하고 중국을 통일한 송나라의 2대 황제인 조광의(趙匡義·태종)는 죽음을 앞두고 후계자 선정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송왕조의 창업자이자 자신의 맏형이던 조광윤(趙匡胤·태조)으로부터 제위를 넘겨받은 태종으로서는 명분상 태조의 맏아들이자 큰 조카인 덕방(德芳)에게 제위를 넘겨야 했지만 당연히 본심은 그렇지가 않았다.

고심끝에 태종이 조보(趙譜)에게 넌지시 물었다. 조보는 태조 재위때부터 조정의 중신이었다. “아무래도, 조카인 덕방에게 제위를 넘겨야 하겠지?”

권력의 흐름에 정통한 조보가 입을 열었다. “폐하, 태조께서는 이미 (형제에게 제위를 넘긴) 과오를 범했습니다.”송나라의 3대 황제가 태종의 세째 아들인 조항(趙恒·진종)으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송나라의 황제는 창업자인 태조 조광윤의 자손이 아닌 태종 조광의의 자손들로 이어져 내려갔다.

그렇다면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형제의 피’보다는 ‘부자간의 피’가 더 진하다”는 사실은 이제 1,000년전 중국에서 벌어진 아득한 옛 풍습에 불과할까. 1999년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느끼듯이 그같은 일들은 오히려 더욱 견고한 풍습으로 굳어져 가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 사례는 한국 재계의 ‘부동의 1위’인 현대그룹에서 재연되고 있다.

99년 3월5일 저녁,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지하강당. 강당에 마련된 650개의 좌석을 임직원이 가득 채운 가운데 정세영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의 이임식이 열리고 있었다. ‘포니 정’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현대자동차를 32년만에 세계수준의 자동차회사로 키워냈으나 이제는 조카인 정몽구 회장에게 넘겨줘야 하는 착잡한 심경을 말해주듯 상기된 표정으로 정세영 회장이 단상에 올랐다. “포니를 처음 개발할 때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어도 결국 우리 손으로 국산 승용차를 개발했다”며 “나를 도와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이후 현대자동차의 사가(社歌)를 부르는 순서. 임직원들과 함께 힘차게 노래를 따라 부르던 정세영 회장이 마지막 소절인 ‘현대로 달려가자. 우리 현대자동차로!’에 다다르자 눈시울을 붉히면서 눈물을 보였다. 측근들도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일부 직원들은 소리를 죽여 흐느끼기도 했다. 이임식이 끝난뒤 정세영 회장은 측근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뒤 정들었던 현대사옥을 완전히 떠났다.

정세영 회장의 ‘눈물의 이임식’과 관련해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역시 현대에서는 ‘부자간의 피’가 더 진하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요컨대 현대자동차를 포기한 대가로 정세영 회장에게 돌아간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매출액이 2조원을 넘어서는 ‘알짜배기 회사’이기는 하지만 현대그룹의 간판 계열사인 현대자동차를 일궈낸 정세영 회장의 공로와 비교할 때 비중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현대그룹에서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자신의 뜻과 반대되거나, 경영상의 이유로 동생들을 분가시킨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75년말에도 60세의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은 첫째 동생인 정인영 부사장(현 한라그룹 명예회장)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너도 이제는 독립해야 될 것 같다.” 정인영 명예회장은 그 자리에서 두말없이 보따리를 쌌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그 뒤를 봐줬다. 정인영 회장의 경우 53년 8월 현대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 20년이상 현대맨으로 체질이 굳어졌으나 중동진출을 둘러싸고 정주영 회장과 의견충돌을 빚게 된 것을 계기로 정주영 회장이 일방적으로 ‘독립’명령을 내린 것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정상영 KCC 명예회장 등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형제들을 분가시켜 현대와 특수관계를 통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한편 현대그룹은 정세영 회장의 분가를 계기로 정주영 명예회장의 아들 6명이 주요 게열사를 묶어 소그룹 형태로 독립하는 ‘핵분열’과정에 돌입한 상태이다. 전경련 회장의 물망에도 오르내리는 장자인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정공, 인천제철, 현대강관, 현대엔지니어링을 맡게 됐고 3남인 몽근회장은 현대백화점과 현대호텔을 관리하는 금강개발산업을 독립된 계열사로 경영하게 됐다.

5남인 정몽헌 회장은 현대전자, 현대건설, 현대종합상사, 현대상선, 현대증권, ㈜아산을 맡아 정몽구 회장과 함께 현대그룹의 간판 경영인이 될 것으로 보이며 현역 국회의원인 6남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은 조만간 지분을 정리하고 정치에만 전념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곱번째 아들인 정몽윤 고문은 이미 올해 초 현대그룹에서 현대해상화재보험을 분리해 독립했으며, 8남인 정몽일 현대종합금융회장은 현대파이낸스와 현대할부금융 등 일부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한뒤 아버지가 세운 현대그룹과 분리할 예정이다.

정주영 회장의 ‘장남론’

현대와 삼성의 차이점은 뭘까. 흔히 현재는 ‘뚝심’, 삼성은 ‘관리’라는 단어로 비교되지만 경영권의 상속과정에서도 두 그룹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성의 경우 이병철 회장의 3남인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상속했지만 현대는 ‘장자’인 정몽구 회장에게 주요 계열사가 상속됐다.

이처럼 현대가 ‘장남’으로 대를 이으려는 다소 봉건적인 상속형태를 띠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주영 명예회장 특유의 ‘장남론’때문이다. 6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정주영 명예회장은 동생들을 분가시키며, 자식들을 교육시키는데 있어서 ‘장남은 곧 그 집안의 아버지’라는 원칙을 앞세웠다. 정 명예회장이 정세영 명예회장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그룹의 주력인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을 장남인 몽구회장에게 넘겨준 이면에도 바로 ‘장남론’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편 정 명예회장의 ‘장남론’은 역시 7남매의 장남이었던 부친 정봉식(작고)의 엄격한 유교주의에서 싹튼 것으로 분석된다. 정 명예회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4번이나 가출했지만 번번히 아버지에게 잡혀 끌려왔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나는 네가 장남이 아니었으면 찾지도 않았다. 네가 잘못되면 네 동생들은 누가 책임지는가’라고 말씀했다”고 밝히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3월 제2821호
    • 2020년 03월 제2820호
    • 2020년 03월 제2819호
    • 2020년 03월 제2817호
    • 2020년 02월 제2816호
    • 2020년 02월 제2815호
    • 2020년 02월 제2814호
    • 2020년 02월 제2813호
    • 2020년 01월 제2812호
    • 2020년 01월 제281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멕시코시티 예술여행 멕시코시티 예술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