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대] 잘 나가는 현대.. "마구 먹다 체할라"

10/26(화) 20:26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62년. 핵전쟁의 문턱까지 상황이 악화하던 ‘쿠바사태’때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당시의 상황을 특유의 ‘위기론’으로 설명,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중국인들은 리스크(risk·영어로 위기라는 뜻)를 ‘위기(危機)’라고 말하는데 이는 ‘위험한 기회’라는 뜻이며, 사태가 위태로울수록 그만큼 기회도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낙관했다. 그리고 그는 특유의 뚝심과 낙관론으로 소련을 굴복시키고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위기’를 단순히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 사태를 호전시킬 기회까지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케네디의 시각을 빌린다면 한국의 재벌중 ‘가장 큰 위기에 빠진 재벌’은 현대그룹이다.

현대는 ‘국민의 정부’출범이후 기아자동차, LG반도체, 한남투신 등을 인수하는 한편 대북사업을 사실상 독점하는 등 겉으로는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몸을 불린 후유증도 톡톡히 치르고 있다. 금융권과 재계의 전문가들은 “현대의 경우 겉으로는 영원한 라이벌인 삼성을 따돌리고 부동의 ‘재계 1위’를 차지했지만 속으로는 심각한 유동성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현대는 ‘국민의 정부’이후 얼마나 몸집을 키웠길래 ‘과식의 후유증’을 보이고 있는 걸까. 또 현대는 외국 금융기관이나 일부 금융권이 지적하는 문제점들을 해결, 위기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정권교체 이후 현대의 사업확장은 ‘독주’라는 말밖에는 적절한 표현이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서 이뤄졌다. 삼성을 제치고 자산규모가 7조원을 넘어서는 기아·아시아자동차를 단숨에 인수, 국내 자동차산업의 최강자로 떠올랐고 ‘반도체 빅딜’에서는 LG그룹을 제압,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 따라 현 정권의 지역기반인 호남지역의 골치거리 투신사였던 한남투신의 인수는 아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정도이다.

‘잘 나가는’현대의 겉모습은 기업인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대는 1조원이 넘는 돈을 앞세워 정부가 추진중인 ‘햇볕정책’의 한 축인 ‘금강산 관광’을 성사시켰으며 대우그룹과만 거래하던 국방부와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인 끝에 중형잠수함 건조사업을 경쟁체제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최근에는 비록 대우그룹의 ‘공중분해’라는 특수상황이 개입되기는 했지만,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이 재계의 대외창구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후임회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현대의 이같은 독주는 불과 2년만에 그 후유증을 드러내고 있다. 삼성, LG, SK그룹 등 경쟁자들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벌이는 동안 오히려 몸집을 늘리면서 수익성이나 부채비율 등 경영의 건전성 측면에서 취약점이 노정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외국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대우 다음은 현대’라는 소문이 나돌 정도이다.

우선 현대의 형편없는 수익성.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주식시장에 상장된 17개 현대그룹 계열사는 올 상반기중 2,856억8,9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비록 전년도 상반기(5조775억8,300만원)보다는 적자규모가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기는 하지만 삼성(99년 상반기·1조6,722억원), LG(1조4,381억원), SK그룹(4,208억원) 등 경쟁그룹들이 대부분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형편없는 경영성적임에는 틀림없다.

현대그룹의 과도한 부채비율도 심각한 문제. 6월말 현재 현대그룹의 부채비율은 340.8%. 비록 지난해말(449.3%)에 비하면 크게 내려오기는 했지만 연말목표인 200%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23조7,530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더 정리해야 하거나, 6조3,99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해야 하는데 요즘 같은 증시상황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전망이다.

이같은 객관적 수치보다도 현대를 더욱 압박하고 있는 것은 현대에 대한 외부의 시각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대우사태 이후 일부 외국계 은행의 경우 현대그룹에 대한 여신을 축소하거나 아예 거래를 중지하는 등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대우그룹 문제의 타그룹 파급효과’라는 특별보고서에서 “대우사태와 관련해 국내 다른 그룹, 특히 대우와 함께 언급돼 오던 현대그룹에 대한 외국계 은행의 주목할 만한 조치사항이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금융센터는 보고서에서 “오세아니아계 은행의 서울지점은 대우사태가 발생한뒤 본점으로부터 ‘현대그룹과의 단순한 외환업무를 포함한 어떠한 거래도 당분간 중지할 것’이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밝혔다.

국제금융센터는 또 일부 현대계열 현지법인의 만기도래 자금도 일부 외국계 금융기관(크레디리요네, 도쿄-미쓰비시은행)이 만기를 연장할 때 최장기간을 3개월 이내로 제한하고 가산금리를 더 높여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대그룹과 현대의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의 경우 “현대는 대우와는 사정이 다르다”며 “외국의 좋지않은 시선은 과장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강봉균 재경부장관과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현대와 대우는 다르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위기의 재벌’로 불리는 현대를 둘러싼 수많은 소문의 진실여부를 떠나 승승장구하는 현대의 겉모습이 ‘문민정부’때 숙원인 자동차사업에 진출했다가 비참한 결과를 맞이했던 삼성그룹과 흡사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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