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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부 풍속도] "돌아서면 남인데..." 무너진 신뢰

사례 1. 방은미(44·여·가명). 미용사 출신으로 78년 중매 결혼.

결혼 후에도 미용실을 운영했는데 남편이 매일 가게로 찾아와 끝날 때까지 감시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미용실에 남자 손님이라도 오면 긴장해야 했고, 가게에 도청 장치까지 해 두고 전화 내용과 예약 손님 리스트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파악했다. 그 중 한 손님과 통화를 도청한 뒤 오해를 일으켜 칼로 손등을 찌르고 자해하면서 협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혼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집을 팔아버리는 등 이성을 잃은 행동이 계속돼 집을 도망쳐 나옴.

사례 2. 서만기(45·사업·가명). 18년전 한선희(43·가명)씨와 연애 결혼.

개인회사를 운영하는 서씨와 한씨 슬하에는 남매를 두었다. 서씨는 회사일로 해외출장이 잦아 가정에 그리 충실치 못했다. 활달한 성격의 아내 한씨는 모임 때문에 자주 외박을 해 좋지 않은 소문이 주변에 퍼졌다. 서씨는 평소 아들이 자신을 거의 닮지 않아 항상 아내를 의심하곤 했다. 결국 서씨는 형제들과 상의해 아내 몰래 친자확인 검사를 했으나 친자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를 알아차린 부인 한씨가 배신감을 느껴 현재 별거 상태에 있음.

사례 3. 정지은(31·여·가명). 피아노 학원 강사 출신으로 97년 연애 결혼.

결혼 후 남편이 무정자증으로 밝혀지자 시댁에서 혹시 바람이 날까 우려한 듯 분가한 살림을 합치자고 요구했다. 시부모와 시누이는 매번 전화를 하며 자신을 감시하는 바람에 강사 일도 중단하고 거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버렸다. 처음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던 남편도 조그만 일에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등 집안 분위기가 감옥처럼 변했다. 더이상 견딜 수 없어 현재 이혼 소송을 준비 중임.

90년대 들어 급증한 여성의 사회 진출은 유휴 고급 인력의 활용은 물론 가정내에서 여성 지위의 확보라는 순기능을 가져왔다. 반면 가정 생활의 불안정과 부부 상호간 불신의 폭을 넓히는 역작용도 동반했다. 아직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사회 풍토에서 여성의 외부 활동은 아무래도 남편들의 오해를 사기 쉬웠다. 또 사랑과 진실보다는 경제적 조건을 더 따지는 결혼 행태도 이런 부부간의 상호 믿음을 해치는 하나의 빌미가 되고 있다.

최근 한 통계에 따르면 1,156명의 고민 남성을 조사한 결과 가장 큰 고민 거리가 아내의 외도나 외박(522명)으로 무려 전체의 45%에 달했다. 이어 아내 가출이 173명(15%), 아내의 부채 문제가 128명(11%), 아내의 술과 도박이 43명(3.7%)로 각각 나타났다. 이는 상당수 남편들이 아내의 부정한 행동을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다.

늘어난 친자확인, 20%가 ‘남의 자식’

이런 현상은 DNA 친자 감정회사가 최근 들어 더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점과 일맥 상통한다. 친자 감정은 이미 미국에서는 거의 일상화 되다시피한 일이다. 아직 비공개적으로 이뤄져 정확한 통계를 파악할 순 없지만 알게 모르게 국내에도 친자확인 검사 숫자가 엄청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친자 감정회사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에도 익명을 요구하는 수십건의 문의 전화가 쇄도하며 실제 검사 의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문의 전화는 “검사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검사비는 어느 정도고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에서 시작해 “아내 모르게 할 수 있는가”, “법적 이혼 효력이 있는가”, “며느리의 부정을 입증할 수 있는가”등등 다양하다. 특히 이 관계자는 여성들도 상당수 공중전화를 통해 “이 사업을 계속할 것인가”, “남편이 친자 검사를 할까 두렵다”, “정말 그렇게 간단하게 친자를 판별할 수 있는가”라는 우려 섞인 질문을 해오기도 한다고 귀뜸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DNA 친자 확인 검사를 한 결과 약 80%가 친자이고 20%는 친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한창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방송인 B(35)씨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B씨는 전남편 사이의 난 아들의 친자 문제가 이혼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B씨는 명예 회복을 위해 재판부에 아들의 친자 확인을 요청하고 있지만 전남편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상류층일수록 ‘의심의 눈초리’강해

특히 흥미로운 것은 친자 확인 소동을 벌이는 계층이 주로 상류층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정부 고위층, 재벌 2세, 의사, 변호사 등은 친자 감정회사의 주 고객들이다. 전문가들은 재력과 조건을 따지는 비뚤어진 결혼 풍조가 이같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진단하다. 이런 경우 대개 남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거나, 사업일로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기에 부유한 가정에서 자유롭게 자란 ‘오렌지족’ 부인이 만나면 문제의 가정이 될 소지가 높다는 분석이다.

가정은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소중한 단위 개체이다. 가정이 불안하면 그 여파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부간의 신뢰는 가정을 지키는 뿌리다. 전문가들은 부부가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취미 생활이나 공동 목표를 갖는 것도 부부의 신뢰 회복을 위한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타액만으로 DNA 친자 감정한다

“당초 취지는 국내에는 남북한 이산가족이나 해외 입양자 부모찾기가 주 타깃이었는데 오히려 배우자 불륜을 검사하는 쪽으로 호황을 누려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올해 3월 문을 연 DNA 친자감정전문회사인 ‘아이덴티지 코리아(www.idtk.co.kr)’의 윤요셉(48)이사는 “국내에서 이처럼 친자 감정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지는 상상도 못했다”며 “그 만큼 신뢰에 금이 가 있는 부부가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이사는 정확한 검사 의뢰 숫자는 업무 성격상 밝힐 수 없지만 한달에 문의 전화가 150여통에 달하고 인터넷 사이트 검색이 2,000건이 넘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단기간에 이런 돌풍을 몰고 올 수 있었던 것은 획기적인 감정 방식에 있다. 그간 친자 감정은 주로 혈액 채취 방식이 대부분으로 몇몇 국내 종합병원에서만 이뤄졌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단지 타액만 있으면 1주일내에 친자 여부를 가릴 수 있다. 더구나 혈액 채취는 양 부모와 자녀의 혈액이 모두 필요하지만 타액 방식은 아버지와 자녀 것만 있으면 된다.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배우자 모르게 친자 확인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검사의 정확성도 상당 수준에 있다는 것이 윤이사의 설명이다. 윤이사에 따르면 미국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전미혈액은행위원회(AABB)로부터 공인을 받아 미국, 일본의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고 있다. 정확도가 99.9%에 가깝다는 주장한다.

이외에 이 회사는 임신 상태에서 임산부의 양수와 아버지 타액만 있으면 태아의 친자 여부를 가릴 수 있다. 또 아버지가 사망해도 할아버지의 타액만 있으면 친자인지 알 수 있어 불의의 사고나 범죄자 검거에도 활용될 수 있다.

윤이사는 “‘항간에 부부간의 불화만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지만 오히려 친자임을 확인시켜 가족간의 의심이 해결되는 경우가 휠씬 많다”고 말했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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