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독설 앞세워 정치행보 재개

10/20(수) 20:12

김영삼 전대통령이 다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김전대통령은 10월16일 부산 민주공원 개원식 참석차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방문, 김대중대통령에게 극한 발언을 퍼부었다. 민주산악회(이하 민산) 좌절 이후 주춤했던 정치적 행보가 한달여만에 재개된 것이다.

개원식 하루전에 부산을 찾은 김전대통령은 첫 방문지에서부터 참았던 독설들을 쏟아냈다. 김전대통령은 부산 삼성자동차를 방문한 자리서 김대통령을 가리켜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삼성자동차를 망하게 한 것은 부산 경남 시민 도민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의 심판을 받게해야 한다”고 말할 때는 입술까지 꽉 깨물었다.

모교인 경남고 학생들에게 훈화를 할 때도 김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학창 시절 회고담으로 얘기를 풀어가다 연설 끝부분에 가서 “거짓말을 잘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다. 잠시 국민을 속일 수 있지만 영원히 속이지는 못한다”고 김대통령을 겨냥했다.

차기 대선서의 ‘킹메이커 역할’시사

이날 저녁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민주동지’들과의 만찬에서는 한층 더 강도를 높였다. 83년 단식 투쟁때의 대형사진을 벽에 걸어놓은 채 진행된 만찬에서 김전대통령은 “역적” “유신독재의 망령” “형언할 수 없는 만행” 등 군사독재 시대에나 나왔을 법한 용어를 써가며 김대통령에 직격탄을 쏘았다.

뒷날 열린 개원식 축사에서도 독설 행진은 계속됐다. 김전대통령은 김대통령면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3共이냐 5共이냐”며 물은 뒤 “이런 사이비 민주주의를 위해 그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단 말이냐”고 몰아쳤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부정 타락선거가 될 것이요,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날 것”이라며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는 세력이나 개인은 하늘과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틀간 부산에 머무는 동안 김전대통령의 동선과 발언들을 되짚어보면 이번 방문은 김전대통령 스스로의 표현대로 그가 ‘평생 정치인’임을 국민들에게 새삼 인식시킨 이벤트가 됐다. 특히 김전대통령은 15일 만찬 연설의 끝부분에 서 “나는 나라를 바로 잡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다음 대통령에 누가 되는냐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을 민산 재건 과정에서 흘러나왔던 ‘영남 정권 재창출론’과 연결시켜 ‘킹 메이커가 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산 재건을 유보함으로써 야권 분열이라는 여론을 피하되 현 정권에 대한 강력한 견제세력으로 입지를 구축, 차기 대선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려한다는 것.

정치적 이벤트서 목소리 내기

지난달 13일 김전대통령이 “민산 재건작업을 내년 총선이후로 연기한다”고 밝혔을 때만해도 “YS의 정치일선 복귀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치권의 대세였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빗나간 관측이 돼버렸다. 김전대통령은 현실정치에서 결코 떠날 수 없음이 이번 부산 방문으로 증명된 것이다.

다만 김전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방법 등은 민산 재건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때와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맨처음 김전대통령측이 민산에 기대한 것은 정치적 발언의 통로 역할이었다. 당시 민산 관계자들은 “YS가 무슨 말을 하면 모든 언론이 팔 걷고 나서 ‘나라 망친 전직대통령이 무슨 할 말이 있나’라는 식으로 몰아붙였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민산관계자들은 “정권이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누구라도 나서서 지적해야 하는 데 언론은 물론 야당도 침묵하고 있어 YS가 나설 수 밖에 없다. 민산을 조직해 이를 도울 필요가 있다”고 민산 재건의 목적을 공공연히 밝혔었다.

하지만 민산 재건 깃발이 내려지면서 이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됐고 김전대통령에게는 두가지 선택만 남았다. 마냥 침묵하거나 민산 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중요한 정치현안이 떠오를 때마다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적인 이벤트를 가능한한 많이 만들어내는 것. 실제 김전대통령은 이번 부산 방문전에도 중앙일보 사태와 동티모르 파병안에 대해 ‘상도동 논평’을 낸 바 있다.

또 한가지 달라진 것은 김전대통령의 총구가 현 정권쪽으로만 향하고 있다는 점. 민산 재건을 추진할 때만해도 현 정권에 날을 세우는 것과는 별도로 한나라당을 “야당답지 못하고 무기력하다”고 나무랐다. 그러나 민산 재건을 유보한 이후에는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이 많이 누그러진 상태.

김전대통령의 정치 행보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가 이전보다 약해지는 대신 김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더 날카로워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성욱·정치부기자 feelchoi@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