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더치: 로널드 레이건 회고록’

10/26(화) 21:05

김영삼 전대통령이 16일 부산 민주공원 개원식에서 김대중대통령의 찬사를 독설로 대답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국민회의가 분을 못 참고 YS를 ‘열등분자’라고 표현한 것은 적절한 것일까.

해답을 좀 먼곳에서 찾고 싶다. 미국에서는 20세기 들어, 훌륭한 대통령에 속하는 로널드 레이건의 새로운 전기 ‘더치(Dutch): 로널드 레이건의 회고록’ 때문에 9월18일께부터 10월10일께 까지 한 소동이 있었다. 정치권의 싸움도, 전직 대통령과 현직의 싸움도 아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주간 출판인’, ‘네이션’ 등의 저명한 서평가들의 논쟁이다.

논쟁을 불러온 것은 레이건 전대통령이 85년 백악관 사상 처음으로 공식 전기사가로 임명한 에드먼드 모리스가 관행을 깨고 가공의 인물, 작가 자신을 화자(話者), 해설자로 삼아 874쪽의 책을 낸데 있다. 그 서술 방법이 사실(事實)이나 사실(史實)보다는 가상에 의해 소설같이 썼다는데 있다.

‘더치’는 9월30일 발간됐다. 이 책의 내용을 특종했던 뉴욕타임스 베스트 셀러 순위에서는 이번주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14년전에 300만 달러의 선수금을 주고 모리스의 원고를 기다려온 랜덤사는 9월30일까지 일체 카피를 통제해왔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서평기자 도린 칼바잘은 이를 특종 보도했다.

이 책의 저자인 모리스는 아프리카 케냐 출신인 59세의 백인. 영국을 거쳐 68년 미국에 왔다. 뉴욕에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 관한 시나리오를 썼다. 이것이 영화화 되지 않자 책으로 냈다. 논픽션인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성장’이란 제목의 이 책은 발행 1년후인 8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책은 미국 ‘현대문고’가 선정한 2000년 ‘백대서적’에 들어간다.

이런 모리스는 책을 낸 79년에 미국 시민이 됐다. 그가 미국에 온 때는 닉슨-카터의 시대. 아프리카 백인인 그에게 미국은 도덕과 이상을 잃은 나라였다.

그래서 그는 ‘알짜 미국적인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통해 미국을 경험했다.

모리스는 81년 12월과 82년 봄에 레이건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레이건 부처는 백악관에 들어오며 모리스 부부의 책을 가지고 와 침대에서 서로 읽은 것을 얘기하며 밤을 보냈다.

85년 추수감사절에 레이건의 만찬에 참석한 모리스는 좀처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는 레이건으로부터 다시 백악관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집무실에서 창밖의 제퍼슨 동상을 보던 레이건은 혼자 말하듯 부탁했다. “내 전기를 써 달라”는 것이었다. 모리스는 이 때 레이건의 겸손하면서, 거대한 것’, ‘매력적인 어떤 것’에 끌렸다.

그러나 한달에 한번씩 있는 면담은 3번째, 4번째가 되자 매력적인게 되지 못했다. 레이건은 문화적으로 ‘무뚝뚝한 거인’이었고 대화에 응할줄 몰랐다. 그 자신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얻는 것은 깊은 샘물에 돌던지기 같았다.

레이건이 백악관을 떠난 89년이후에야 보여준 일기는 분석적이거나 사색적인 것이 아니었다. 감상이 없었고 실용적이었다. 모리스의 판단으로는 레이건은 ‘건전한 이기심’을 갖고 있었으며 ‘헛된 허영’은 없었다.

모리스는 한 인터뷰에서 레이건의 전기를 쓰느냐, 마느냐를 7,500억번이나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레이건이 다녔던 유레카 대학 캠퍼스를 거닐면서 92년에야 새로운 기술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혼자의 고독’, 신념, 누구와도 상의없이 자신이 하는 일은 옳다는 ‘무오류성의 성역’에 갇혀있는 상상력이 강한 레이건, 그의 신념과 역사에 대한, 세계에 대한 미스터리와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모리스 자신이 레이건이 되거나, 레이건의 동시대인이 되거나 그를 지켜본 화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레이건보다 한살 아래인 일리노이 어느시장의 아들, 모리스. 유레카 대학의 대학신문 동료기자로 자신을 둔갑시켰다. 그의 아들은 60년대 좌파 학생으로 만들어 60년대 말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레이건 주지사를 비판케 했다. 할리우드의 생활을 유모어화 하기 위해 존재않는 가십기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건 결국 미국을 다시 세운 레이건의 고독에 쌓인 ‘혁명정신’을 찾아내기위한 14년간의 끈질긴 레이건에 대한 사랑이자, 새로운 국민이 된 미국을 알기 위한 아메리카인 모리스의 노력이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에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인 주장이나 변명이 많다. 그러나 모리스와 같이 차단된 취재대상의 벽을 깨기위해 가상적, 소설적, 영화적 기법을 사실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것이 매일 해석이 달라지는 역사적 사실에 가까워진다면 그렇다.

그렇다면 YS의 ‘독설’을 ‘열등분자’라 하는 것은 올바른 논평일까. 해답은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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