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은 '낙제감'

10/20(수) 20:10

‘파행과 부실로 점철된 밀실국정감사’

국정감사모니터 시민연대가 내린 15대국회의 마지막 국감에 대한 평가다. 새천년을 앞둔 20세기 마지막 국정감사가 정치개혁을 염원하는 유권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렸다.

이번 국감도 여·야간 정치공방과 의원들의 준비소홀은 예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내년 총선을 앞둔 의원들의 마음은 ‘콩밭(지역구)’에 가 있었고, 상당수 상임위는 시민단체들의 방청(감시)까지 강제로 막았다. 그런 상임위의 활동이 어떠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여야 정치공세의 장으로 전락

특히 보광, 한진그룹 탈세사건과 중앙일보 홍석현사장 구속에 따른 ‘언론탄압’ 시비, 도·감청 문제와 야당 후원회 계좌추적 등 민감한 정치현안들이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국감장이 여야간 정치공세의 장으로 전락하고, 내년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의 ‘근거없는 폭로’ 등도 감사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국감초반은 중앙일보 홍사장 구속의 형평성 문제와 언론탄압시비로 소관 상임위인 재경·문화관광위는 물론이고 전혀 상관없는 국방·과기정통위 등 다른 상임위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번 국감 최대의 정치쟁점이 됐다.

문광위의 경우 문예진흥원에 대한 국감이 진행된 5일 한나라당측이 홍사장 구속 사건과 관련한 진상조사특위 구성 및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의 위증문제를 다루기 위한 증인채택 등을 요구하며 국감을 거부하는 바람에 이틀동안이나 여당 단독으로 진행됐다. 15일 열린 정보위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감도 감청시설 공개여부와 관련 여당 단독으로 진행됐다.

특히 한나라당 과기정보통신위 소속 의원 7명과 국방위 소속 의원 4명은 6일 ‘언론탄압 규탄을 위한 긴급의총’에 참석한 뒤 당 지도부의 국감 참여 지시에도 불구,전주와 계룡대에서 실시된 국감에 개인일정을 이유로 불참하는등 잦은 결석과 이석으로 감사에 차질을 빚었다.

증인채택에서도 상임위마다 재벌에 약한 의원들의 모습을 또 다시 보여줘 눈총을 샀다. 이건희 삼성회장과 아들 재용씨 부자의 증인채택 문제는 재경위에서 이례적으로 무기명 비밀투표에 부쳐져 19대5로 기각됐고, 정무위는 증인으로 채택된 정몽헌 현대회장의 출석불응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알맹이 빠진 증인신문으로 비난을 샀다.

잘못된 통계를 인용했다가 뒤늦게 이를 지적당한 이규택의원은 국감장에 술을 먹고 나타나 횡설수설하며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일도 있었다. 예년 같이 매일 밤늦게까지 계속되던 질의답변이 거의 사라지고, 서면 질의 답변이 많아진 것도 무성의한 국감의 한 단면으로 꼽힌다.

총선의식, 민원성질의로 질 떨어져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질의도 국감의 질을 떨어뜨렸다. 산자위의 한나라당 신영국 의원은 대한석탄공사 감사에서 문경시 저탄소 이전을, 정무위의 자민련 이인구의원은 금감위 감사에서 조흥은행 본점의 대전 이전을 각각 요구했고, 건교위의 한국도로공사 감사에서는 한나라당 백승홍, 권기술의원과 국민회의 황학수, 자민련 김고성의원 등이 질의의 상당부분을 지역구 도로사업 민원에 할애해 눈총을 받았다.

특히 재경위 위원들은 피감 기관으로부터 향응을 받는 추태까지 보여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피감기관들도 국감 직전까지 요구자료 제출을 미뤄 의원들을 골탕먹이는 일이 다반사였고, 엉터리 자료제공 등 불성실한 피감태도도 부실 감사의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은 소관 부처 정책의 문제점을 소상하게 지적하고 나름대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자료집을 발간해 그나마 정책감사가 완전히 실종되지 않도록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회의 김홍일의원은 이번 국감중 발간한 7번째 정책자료집 ‘21세기 공항관리 효율화 방안 연구’를 통해 김포공항과 인천신공항 통합운영시 이점을 제시하고 두 공항의 단일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의했다. 같은 당 김민석 의원은 ‘금융거래비용의 현황과 문제점’이라는 자료집에서 은행 대출 각종 부대비용의 은행 부담을 주장했고, 정동채 의원은 ‘국가이미지관리위원회’ 설치 및 10대의 TV출연 제한 등을 제안했다.

자민련에서는 통일외교통상위 박철언, 이건개, 환경노동위 박세직, 산업자원위 김칠환의원 등이 탈북자 문제, 한·미 행정협정, 실업대책, 포스트재벌시대 신산업정책 등을 주제로 6건의 정책자료집을 냈다.

한나라당에서도 재경위 김재천, 행정자치위 강삼재 이윤성, 문화관광위 박종웅 박성범, 과학기술정보통신위 김형오, 농림해양수산위 권오을, 환경노동위 권철현의원 등 20여명이 정책자료집을 만들었다.

쫓겨난 시민단체, 텅빈 의원석

시민단체들의 조직적인 감시활동은 국감이 시작되기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국정감사 모니터 시민연대(국감연대)의 활동은 여·야 의원들의 공동반발에 밀려 총 운영·정보위를 제외한 14개 상임위중 행정자치, 농림해양수산, 문화관광, 과학기술통신, 환경노동위만 방청이 이뤄졌을 뿐 국방, 교육, 보건복지, 법사, 통일외교통상, 정무, 재정경제, 건설교통, 산업자원위 등 9개위원회는 모니터요원들의 출입을 막아 국감연대측이 13일 국회의 방청불허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국감연대측은 형평성문제가 제기됐지만 방청이 허용된 상임위를 대상으로 ‘베스트 워스트 질의 의원’들을 계속 발표했다. 국감연대는 20일 공동 대표단 기자회견을 통해 국감 모니터 활동에 대한 종합 결과를 발표함과 동시에 그간의 의정활동이 16대 총선 공천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연대활동을 강화키로 했다.

국감연대 양세진간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의원들의 국정감사태도는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나빠졌다”며 “국정감사에 임하는 의원 개개인에 대한 과학적이고 심층적인 감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력낭비와 국민들의 정치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용회·주간한국부 기자 songy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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