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어제와 오늘] 노근리 유산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 영어로는 ‘No Gun Ri Bridge’라 불린다.

1950년 7월26~9일 이 다리 주변에서 벌어졌던 전투 아닌 전투는 49년 세월속에 학살이냐 사살이냐는 물음을 던져준다. 그건 역사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이 역사적 사건에 참여한 미군인, 미 1기갑사단 7기갑연대 2대대 장병들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을 되살려 주고 있다.

이 다리 근처에서 살아난 한국민에게는 이 참혹한 현장을 사과와 배상의 역사 현장이기전 ‘총질이 없어야만 했던 마을’이다. 아곳은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해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우고 또 한편에서는 한국민을 열등민족으로 다뤘던 ‘두 얼굴의 미국’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다.

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어떻든 1950년 6월25일, 남한을 전면 공격한 북한에 있다.

일본 육전사 연구회가 편찬한 ‘한국전쟁’ 1권(‘38선 초기전투와 지연작전’)에는 개전 5주째를 맞는 이때의 대전_영동_황간의 전투상황을 자세히 적고 있다.

북한 제3사단(사단장·이영호소장·만주계)은 7월22일 대전을 떠나 영동을 향해 전진한다. 이날 태풍 때문에 포항에 뒤늦게 상륙한 1기갑사단 7연대(연대장·세실 니스트 대령)는 23일에야 황간에 연대본부를 설치한다. 문제의 노근리에는 2대대 H중대가 쌍굴 터널 양쪽 200여m 언덕에 포진한다.

‘한국전쟁’ 1권에 의하면 “26일 날이 밝아올 무렵, 먼저 수백명에 달하는 피란민들이 횡대로 늘어서서 전진해왔다. 그 후방에는 전차 4대와 약간의 보병이 뒤따르고 있었다. 피란민들이 진지로 접근해 왔을 때 지뢰가 폭발하자 주위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한군의 전차와 보병이 용서없이 피란민들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피란민은 북한군의 지뢰밭 통과물이었고 피란민속에는 북한 게릴라가 숨어 있다는 ‘소문’은 ‘이상한 나라, 무더운 한국’에 온 참전 경험없는 신병 미군들에게는 공포였다.

이런 때에 7연대 2대대 H중대 30구경 기관총 사수 에드워드·데일리 상병은 금발머리 동료 스캐그로부터 “다리 밑의 하얀옷의 사람들을 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린이나 부인들도 쏘는가.” “물론이다. 모두 쏘아라. 생존자는 없다.” 스캐그는 명령을 대대장 히서소령에게서 받았다고 했다.

이에 앞서 이 파란민들은 터널속에 들어 오기전에 철도위에서 남쪽으로 향하다가 100여명이 무스탕기 공습으로 사망, 철도밑 굴다리에 갇혀 있었다.

데일리 상병은 굴속의 흰옷 입은 한국 피란민들을 향해 기관총을 쏘았다.

데일리 상병은 1860년대 서부개척시대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명성을 날린 커스터 장군의 ‘황색 스카프’의 기병연대 지원병이었다. 그는 중위로 한국전을 마치고 80년대에 이 ‘악몽의 다리’ 이야기를 7기병 연대사에 기록하려 했다. 그러나 나이든 동료들은 ‘잊어버려’라며 말렸다.

“인생이라는 것이 계속 되기에 이런 악몽은 마음속에 두고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점점 더 이 사건을 생각케 되었다. 이제 68세 나이에 이런일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의 전우였던 노먼 틴클러는 말했다. “그건 양심의 문제다. 미국 정부는 조만간 그 군인들의 행동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상관들은 공적을 위해 사실을 숨긴다. 병사들은 이를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언저리에 있었던 윌리엄 카루프중위(대령예편)은 다른 의견이다. “전쟁에 있어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나 있는 일이다. 그런 일은 2차대전때 발지전투에서도 있었다. 내 의견으론 이 사건은 어떤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참전 병사는 덧붙였다. “법률가들이 전쟁을 수행할 수없다. 전쟁은 정의스런게 아니다. 전쟁터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행해진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개인이지 국가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25세의 어머니 박순용씨는 7월27일 굴다리속에서 다섯살난 아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자 밖으로 나왔다. 언덕위에 있는 미군은 두 모자에게 총질을 했다.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공산당이 아니예요”라고 빌었지만 그녀는 어깨에, 아들은 가슴에 총격을 받아 죽었다. 기절한 그녀에게 두 미군이 달려왔다. 아들은 흰백에 쌓여 매장됐다.

그녀는 앰뷸런스에 태워 남쪽으로 데려가 치료해 주었다. “나는 그날, 미군의 두얼굴을 보았습니다”가 그녀의 49년후의 회고다.

미국의 탁월한 군사역사가인 스테판 앰브로스 박사(‘D_day’, ‘시민군인’의 저자)는 분석했다. “훈련이 덜된 군인에게 총을 주고 외국에서 싸우라고 하면 그곳에서는 불행한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는 결론 짓고있다. “희생자인 한국민들이 기대하는대로 진실을 밝힌다면 화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민을 단결시키는데 큰 역활을 할 것이다.”

박용배·통일문제연구원 소장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