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특별검사제

10/20(수) 20:23

특별검사제는 세기말을 향해 새로히 움직인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과 옷로비의혹사건의 특별검사로 강원일, 최병오 변호사가 임명되고 특별 검사보로 김형태, 양인석 변호사가 선임됐다.

특별검사제의 고향인 미국에서는 그 제도가 사라졌지만 그 법은 언제고 재생 될 수가 있다. 행정부와 국민 사이의 불신의 간격을, 누구도 법앞에는 공평하다는 원리 밑에 진행된 특별검사제(미국에서는 독립검사제)는 그 운영에서 빛과 그늘을 던졌다.

봅 우드워드는 지난 6월초 그의 9번째 책인 ‘권력의 그늘-다섯명의 대통령과 워터게이트 사건의 유산’을 냈다. 공적인 일에 대한 음폐는 범죄며 이를 저지른 공직자는 추방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확립한 추적기자인 그. 비록 그의 책은 역사에 있어 ‘추문정치’로 표현될지 모르지만 특별검사제 운영에 있어서는 선례집이요 실무서다. 또한 피의자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억울함을 찾아낼 안내서 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고위 공직자들에게는 진실의 공개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사건들의 해결의 촛점임을 일깨워준다. 특히 법조인들에게는 그들이 특별검사의 편에 있건 피고의 변호를 받았건 법적 논리에 쌓일 때 사실은 밝혀지지 않으며 특별검사제는 소멸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검사제는 78년 10월 고위 공무원의 윤리확립을 위한 비상조치로 채택된 것이다.

첫 대상자는 카터대통령의 비서실장 해밀턴 조르단 이었다. 78년 6월 뉴욕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코카인을 마시고 소지했다는 혐의였다.

이때 검찰총장은 마약법에 따라 조르단의 혐의를 조사했지만 뚜렷한게 없었다. 그러나 조지아주 출신의 카터 선거 전략가였던 조르단의 워싱턴사교계에 겉맞지 않은 행동은 언론의 표적이 됐고 그는 상습 마약 흡연자로 몰렸다.

검찰은 특별검사로 뉴욕의 마약담당 검사였던 아서 크리스트를 임명했다. 그는 나이트클럽주인, 2명의 흡연 목격자를 대배심에 세우고 조르단이 나이트클럽에는 왔지만 마약을 소지하거나 마신 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증언을 들었다. 소환한 조르단으로부터 자신의 사생활이 조금은 복잡했지만 신문에 난 것은 과장된 것이라는 증언도 들었다.

카터 대통령은 혐의를 받은 조르단이 사표를 내려하자 말했다. “사임하려는 것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크리스트 특별검사는 언론에 어떤 사실도 공포 않고 6개월만에 조르단의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 큰힘은 면책특권을 주면 진실을 밝히겠다는 나이트클럽 주인과 혐의를 부인하는 백악관 비서실장 사이에 고민하던 검찰이 독립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한데 있었다.

미국에서 특별검사제가 일단 정지된 것은 부시 대통령 재임 마지막 해인 92년 12월이었다. 만약 부시가 재임했다면 이 법은 폐기되었을 것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같은 나이인 로렌스 월시 특별검사는 이란-콘트라사건을 8년여간 담당하면서 특별검사의 법적 한계를 충분히 즐겼다.

53년에 아이젠하워 때 연방판사를 지냈던 월시는 레이건이 85년 11월 이란에 토우미사일을 팔고 미국인 인질 7명을 데려오려 했다는 혐의에 대한 특별검사가 됐다. 공화당원인 그는 레이건의 인질교환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미사일을 판 대금을 니카라과 콘트라반군에 준 것은 탄핵감이라고 생각했다.

레이건은 인질석방을 위해 이란의 중도노선 인사들과의 접촉, 이스라엘을 매개로 방어적인 미사일을 파는 것은 애국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의 국무, 국방장관은 테러국가인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에 반대했다. 더욱 콘드라에 판매대금 변용을 의회의 대 니카라과 반군지원 금지결의 위반이었다.

레이건은 인질교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일기를 썼기에 기소를 면했다. 그러나 부시는 레이건의 정책에 동조했다고 일기로 썼기에 재임 선거 3일전 폭로되고 기소직전이 되었다.

레이건은 92년 7월 월시에게 L·A 그의 사무실에서 와인버거 국방장관의 월권행위에 대한 증인 심문을 받았다. 이때 레이건은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도, 그의 보좌관이었던 마이클 디버의 이름도 기억못했다. 81세였던 레이건은 “내가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부시는 67세 생일때 월시의 심문을 백악관에서 받았다. 이란-콘드라사건을 알고 협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부시는 고함쳤다. “그렇다고 합시다. 그렇게 진술서에 써요.” 그는 측근에게 말했다. “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이 플라스틱 방망이로 저사람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소. 땅, 땅, 땅 하고.”

그러나 레이건이나 부시는 워터게이트가 국민에게 음폐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을 알았기에 치매와 분노속에서 증언했다.

월시는 94년 클린턴때 8년간의 수사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이란-콘드라사건 수사는 대통령과 고위직의 사소한 권력남용과 부패도 무시될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박용배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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