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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만의 '사죄'와 '용서'

400년만의 화해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도 남의 나라를 유린한 적장들과 이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던졌던 장수들의 후손들의 만남은 과연 시공(時空)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일까.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한·일 양국 장수들의 후손 70여명의 만남이 이에 대한 해답을 던져주었다. ‘불행했던 과거’를 ‘발전적인 미래’로 바꾸자는 것이다.

21일 오후2시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지의 하나로 시산혈해(屍山血海)의 전투를 벌였던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행주산성 충의정. 한국측 후손들이 역사적인 ‘화해의 만남’인 탓인지 상기된 표정으로 충의정 앞뜰에 먼저 나타나 일본측 후손들을 맞이했다.

일본후손들의 ‘용기있는 참석’

권율장군의 12대손인 영철(71·서울 종로구 당주동)씨 등 한국측 후손들이 “먼길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고 환영하자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총사령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의 14대 후손인 우키다 히데오미(宇喜多家臣)씨 등 일본측 후손들은 “만나서 반갑습니다”며 화답했다.

재야사학자 조중화(78·약사·경남 마산시 상남동)씨의 2년여에 걸친 노력끝에 이뤄진 이날 행사는 애국가와 일본 기미가요를 각각 1절씩 부른뒤 임진왜란 당시 전몰장병에 대한 묵념, 양국 후손 대표 인사, 화해의 악수, 권율장군 사당 참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조씨는 인사말을 통해 “세계화시대를 맞아 일본인들에게 사죄의 기회를 주고 우리 국민들에게는 아량을 베푸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이번 만남을 주선했다”며 한국측의 ‘용서’와 일본측의 ‘사죄’를 강조했다. 조씨는 “한국에서도 이번 만남을 반대하는 후손이 아직 많고 일본에서도 임란을 말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오늘 참석자들은 정말 용기있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한국측 후손 대표인 영철씨는 인사말을 통해 “이번 모임이 총칼을 맞대고 전쟁을 치렀던 양국 장수들의 후손들이 ‘구원(舊怨)’을 씻고 한일우호의 초석이 됐으면 한다”며 “화해의 문을 연 만큼 앞으로 자주 만나 벽제관 싸움 등 당시 양국의 전적지 복원 등 민간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본측 후손 대표인 우키다 히데오미씨는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은‘불행’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비참한 침략전쟁이었다”며 “한국의 초대에 놀라움과 감격으로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고 답했다.

“과거집착 버리고 미래의 동반자로”

이순신장군의 15대손인 재엽(29·충남 천안시 쌍룡동)씨는 기념사를 통해

“이번 자리는 한일 양국의 후손 전체가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일부 후손들만의 화해의 장”이라며 “아직까지 양국의 감정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고 있다”고 앙금의 일단을 피력했다. 재엽씨는 그러나 “왜란이 끝난지 400년이 넘은데다 새천년을 앞둔 시점에서 과거에만 집착하는 것보다 무한경쟁시대에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국력을 신장시켜나가자”고 역설했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 등에서 일본군을 지휘한 마쓰우라 시개노부(松浦鎭信)의 15대 후손인 마쓰우라 아키라(松浦章)씨는 “일본에게 한국은 이웃이고 형님과 같은 존재로서 당연히 가장 친밀한 관계여야 하는데 임진왜란과 일제 식민지 지배로 나쁜 사이가 돼 가깝고도 먼나라가 됐다”며 “이제 과거를 정확히 인식하고 잘못됨을 인정해 미래를 지향하지 않으면 지진으로 무너지는 건축물과 같이 결함있는 관계 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날 만남에는 한국측에서는 영철·재엽씨를 비롯 원균의 후손 영철(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씨, 진주대첩의 김시민장군과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 사명대사, 곽재우, 고경명, 김덕령, 정기룡, 정발장군 등의 후손 50여명이 함께 자리를 했다. 일본에서는 우키다 히데오미씨를 비롯 벽제관 전투의 왜장 다치바나 무네시게(立花宗茂)의 18대손 다치바나 무네야키(立花宗鑑) 등 모두 16명이 참석했다.

양국 후손들은 개인별 소개와 함께 일일이 화해의 악수를 나눈뒤 한국측은 이충무공의 휘하 장수로서 진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운 진무성(陳武晟)장군의 후손인 경남도자기예술협회 진종만(69)회장이 준비한 전통 도자기 찻잔을 선물했다. 일본측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후손들이 제작한 도자기 향로를 전달했다.

매년 양국 오가며 행사 개최예정

양국 후손들은 권율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를 참배한뒤 행주대첩비와 행주산성 대첩문내 권율장군 동상 등에서 한데 어울려 기념촬영을 한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뒤 헤어졌다.

400년만의 화해의 현장은 국내 신문 및 방송사를 비롯 일본 NHK방송과 산께이(産經)신문, 니시니폰(西日本)신문 등 50여명의 양국 취재진이 몰리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행사를 주선한 조씨는 “앞으로 매년 한차례씩 양국을 오가는 등의 행사를 통해 한·일 친선도모에 기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일본측 후손 대표 우끼다 히데오미씨는“이번 만남을 계기로 일본 최대 전쟁으로 내년 400주년을 맞는 기후현 ‘세키가하라 합전(合戰)’에서 사망한 장수들의 후손들끼리 만나 서로의 응어리를 푸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양문화원 어한 원장은 “이번 만남은 임진왜란을 재조명하는 성격의 자리가 아니라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종전 400주년을 맞아 양국 후손들이 서로 만나 친선과 우호를 다지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 내달 8일 미 방문, 가해자들 만나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사건 대책위(위원장 정은용)가 11월 8일 미국 기독교교회협의회(NCC-USA)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방문자는 정 위원장을 비롯 정구도(44) 기획 및 홍보위원과 부상자 금초자(60·여), 양해숙(62·여), 정구학(56)씨 등 모두 5명이다.

이들은 방문 기간에 에드워드 데일리씨 등 당시 미군측 가해자들과 49년여만에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만남은 미국 기독교교회협의회가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한국 기독교교회협의회(KNCC)를 통해 대책위를 초청해 이뤄지게 됐다.

김혁·사회부기자 hyuk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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