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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물 오른 조선진 "바둑이 보여요"

조선진이 활짝 개화하고 있다. 일본으로 건너간지 16년만에 메이저 타이틀 본인방을 따내 일약 일본 2인자로 올라선 조선진이 세계무대에도 서서히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조선진은 지난주 속개된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중국의 신세대 대표주자 왕레이(王磊)를 물리치고 세계대회 4강에 진출해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며 세계바둑계의 주요변수로 떠올랐다. 그간 조치훈이나 류시훈이 세계무대에서는 죽을 써왔던 사실을 상기하면 일본바둑계에서도 상당한 센세이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재주가 있었던 바둑이다. 다만 기회가 늦게 찾아왔을 뿐이다” 양재호 9단은 조선진을 대기만성의 전형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기사들은 조선진이 특징없는 바둑을 둔다고 그의 장래에 대해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진은 스스로 밝히듯이 노력형이다. 흔히 천재들이 난무하는 바둑계에서 노력형이란 말은 재주가 없다는 식으로 이해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치훈도 그렇거니와 조선진을 평가한 양재호도 재주보다는 노력이 더 출중한 기사. 지구전에 강해야 살아남는 일본바둑계에서 조선진같은 노력형은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조치훈도 그랬고 류시훈도 그랬듯이 일본바둑계의 정상에서 활동해도 단기전인 세계대회에선 그리 이름값을 못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치부되기도 했다. 일본바둑은 마라톤이라고 치면 국제전은 단거리 경주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일본 일인자의 위치를 차지한 조치훈이 세계대회에서 단 한차례의 우승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류시훈은 일본 2관왕이었을 때도 4강에 한번도 들지 못했다. 그런 현상은 일본의 여타 고수들도 엇비슷했다. 그런데 조선진은 역시 큰 승부에 강한 한국적 기질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어 이례적이다.

사실 삼성화재배에 세계 32강이 초청됐을 때 조선진이 결코 8강까지 오르리라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일본만해도 요다 노리모토나 왕리청 등 국제전에서 히트를 친 기사들이 있고 중국에는 창하오 한국에는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등 막강 멤버가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진이 4강까지 올라간 것이 대견한 건 그가 처음으로 국제전에 참가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는 일본에서도 예선을 거치지 않고 추천 케이스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승부기질은 한국바둑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칭찬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가 조치훈을 이기고 본인방에 오를 때도 그의 승리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메이저 타이틀전에 올라본 경험이 그 이전까지 전무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조선진은 판을 거듭할수록 기량이 향상된다는 평을 들을 만큼 갈수록 노련미를 과시하여 단번에 정상급 기사의 바로미터인 세계 4강까지 진격해 센세이선을 일으킨 것이다.

기풍은 평범할진대 승부끼는 탁월한 조선진. 유난히 조씨 성(姓)을 가진 기사가 시대를 좌지우지하는 바둑계에서 또 한명의 조씨가 바둑계를 성큼성큼 큰걸음으로 앞서가고 있다.

이제 조선진도 30세 새천년에는 조선진이 세계무대에서 활개를 칠 해인지도 모른다. 더이상 ‘포스트 조치훈’이란 수식어는 그에게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영글대로 영근 절정의 기사인지 모른다. 가까이는 이창호와 삼성화재배를 놓고 자웅을 겨루게 될 지도 모른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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