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작은 차이가 갖는 의미

10/20(수) 20:49

슈쿠안초등학교 가오 선생님에게 일이 생겼다. 어머니가 아파 학교를 한달 동안 비워야 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선생님은 마을 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촌장은 대리선생으로 나(웨이 민치)를 추천했다. 내 나이 겨우 열세살. 초등학교를 갖 졸업한 소녀이다. 선생님은“말도 안된다”며 촌장에게 따졌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

그렇다고 무슨 수가 있는가. 마을에 대리선생을 할만한 사람이라고는 없는데. 할수없이 선생님은 나를 불러놓고는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즉석에서 당(黨)의 노래와 춤을 추었는데 그마저 중간에 노래를 까먹어다 못했다. 나보다 선생님이 더 당황해 하셨다. 그래도 어쩔수 없는 모양인지 선생님은 나를 대리선생으로 결정했다. 나와 선생님은 몇가지 약속을 했다. 당의 노래를 다 외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분필 26개를 아껴쓰기.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약속은 한명의 학생이라도 줄어들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냐고? 원래 학교에는 40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지금은 28명으로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은 너무 가난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도시에 나가면 돈을 벌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생님도 그게 걱정인 모양이다. 그래서 나에게 특별히 그것을 강조하며, “만약 그 약속을 지킬 경우 돌아와 10원을 더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나는 대리선생이 됐다.

나는 첫날부터 칠판에 교과서 내용을 적어 받아쓰게 하는등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건 가르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학교를 그만두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얼른 칠판에 공부할 내용을 써 놓고는 교실문 밖에서 아이들을 감시했다. 그런데 열살난 장휘거가 문제다. 늘 말썽만 피운다.명색이 선생인 나에게까지 덤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없어졌다. 이 일을 어쩌나. 알아보니 너무 가난하고 어머니마저 병이들어 도시로 돈벌러 나갔다고 한다. 선생님의 말이 떠 올랐다. “이 아이들은 한명도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다. 그러니 절대로 줄어들어선 안돼”

방법은 하나 뿐이다. 내가 직접 도시로 가서 장휘거를 찾아 데려오는 수 밖에. 문제는 갈 차비조차 없다는 것이다. 차비가 얼마인지조차 모른다.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중구난방이다.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이들과 벽돌을 나를 경우 벌 수있는 돈을 계산했다. 이를 보고 촌장은 내가 수학도 잘 가르친다고 대견해 했다. 힘들게 차비를 마련해 기차역에 갔지만 돈이 턱없이 모자랐다. “안되면 걸어서라고도 가지 뭐”

다행히 지나가는 경운기를 얻어 탈 수있었다. 도시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사람도 많았다. 어디서 장휘거를 찾는담. 기차역 안내방송도 해보고, 거리를 헤집고 다녀도 장휘거는 보이지 않았다. 배도 너무 고팠다. 기차역 대합실에서 어떤 아저씨가 방송에 나가면 혹시 찾을 수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방송국은 입구에서 나를 막았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외면하던 안내데스크는 국장에게 사정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누가 국장인지 알 수가 없다. 이틀동안 문앞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국장이냐”고 물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가장 인기프로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여자진행자는 “아직도 농촌의 교육환경은 열악하다”며 나에게 시골학생들이 학교를 자꾸 떠나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아무 말을 못했다. TV출연에 주눅이 들어서가 아니다. 사실 그 이유를 잘 알지도 못하지만 내겐 관심도 없다. 비슷한 질문을 계속했지만 할말이 없었다. 내 머리와 마음속에는 오직 장휘거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시청자에게 할말이 없냐고 물었다. 장휘거도 이 방송을 보고 있을지 모르니 카메라를 장휘거라 생각하고 말하라고 했다. 가슴이 메였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울면서 “장휘거, 나와 함께 돌아가자”는 한마디 밖에 못했다.

장이모 감독의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자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책상서랍속의 동화’는 마치 60년대 우리 농춘 어느 작은 학교를 연상시키며 웃음과 즐거움과 슬픔과 안타까움을 반복하다, 여기서 감동의 절정을 이룬다. 그것은 참고 기다릴줄 아는 감독의 힘이다. 감독은 웨이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교육환경이니 뭐니 하는 얘기를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아마추어들이다. 감독은 각각 자신들의 삶과 똑같은 역할을 맡겼다. 영화가 뭔가 다른 것이란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촬영장비나 카메라를 숨겨 아이들이 그냥 생활하게 했다. 누구에게도 시나리오를 읽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웨이는 TV출연이 관객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할말이 없고, 마지막 장휘거의 이름이 나오니까 눈물이 나왔고 그를 불렀다. 어떤 게산이나 연기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그 장면을 감독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거장은 기다릴 줄 안다. 자기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의 존재를 크게 할 줄 안다. 작은 차이지만 그것이 거장과 잘난 척만하는 감독의 차이다.

이대현·문화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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