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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도 인기를 먹고 산다

‘새천년 기선을 제압하라!’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펼쳐지는 방송 3사의 TV드라마 전쟁이 치열하다.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드라마에 방송사의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것이 제작진의 입장이다. 방송사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바로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흔히 시청률 40%대를 육박하는 드라마를 한두편 정도 보유하고 있는 방송사를 일컬어 ‘드라마 왕국’이라 한다. 이것은 제작자를 비롯한 출연자 개개인의 영예인 동시에 방송사의 실력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가 가장 역점을 두고 제작하는 것이 바로 저녁뉴스 프로그램이다. 뉴스 시청률은 방송사의 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KBS와 MBC는 전통적으로 9시 뉴스를 놓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쳐왔다. 뉴스의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다. 뉴스의 신뢰성과 객관적인 보도내용, 앵커의 역량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뉴스 직전 방영되는 일일드라마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가장 역점을 두고 제작하는 것이 바로 오후8시30분대의 일일드라마. 하지만, SBS는 두 방송사의 치열한 전쟁에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시간대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8시 뉴스에 이어 9시에는 적어도 2개 이상의 대표적인 드라마를 포진시키는 물량공세를 펴고 있다.

최근 방송3사가 동시에 가을 프로그램 개편에 들어갔다. 3사 모두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공영성 확보’와 ‘건전성 지향’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보통이상의 스트레스를 강요하는 오락 프로그램과, 시청률을 통해 PD들의 피를 말리는 드라마가 대폭 강화된 측면이 있다. 특히 드라마 부분은 곧 다가올 일대결전을 예상하게 한다.

먼저 드라마 전쟁의 기운을 서서히 조성한 곳은 KBS. 일단 지난 봄 개편때 드라마 폐해론에 의해 사라졌던 KBS 2TV 아침드라마를 부활시켰다. MBC TV를 통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왕초>의 작가 지상학과 <아씨> 등 KBS의 대표적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김재현 PD의 만남으로 이뤄진 <만남>은 그동안 빼앗겼던 아침 시간대의 채널을 되찾기 위한 히든 카드.

‘그린드라마’(남녀간의 불륜이나 폭력을 배제한 드라마)를 지향하는 KBS의 입장을 반영한 듯 내용이 암울한 현대사에 희생된 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다루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전혀 새로운 신인을 내세우는 파격이 없는 대신 탄탄한 연기력을 검증받은 탤런트를 위주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북에 두고 온 동생들을 잊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가장역에는 임채무가, 그와 이뤄 현숙한 여인역을 연기할 유씨는 선우은숙이, 6·25에 가족을 잃고 억새풀처럼 살아온 최보살역은 윤소정이 맡았다. 이들 외에도 이재룡, 박상민, 이상아 등 스타성이 있는 탤런트가 대거 등장한다.

KBS에는 수목 드라마가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KBS 관계자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KBS가 기획에 무게를 둔 프로그램은 밀레니엄 특집 <태조 왕건>이다. 타이틀롤 캐스팅을 놓고 정치권의 입김까지 작용했다는 갖가지 후문을 낳을 정도로 비중을 둔 드라마다. 하지만 왕건역은 ‘예상대로’ KBS의 간판인 최수종이 맡기로 했다.

이에 비해 MBC 드라마국은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최근 월화드라마 <국희>가 시청률 40%를 넘어서면서 1위로 뛰어 올랐고, 미니시리즈 <안녕 내사랑>도 타 방송사의 경쟁 프로그램을 압도하고 있다. 게다가 주말연속극 <사랑해 당신을>, 일일연속극 <하나뿐인 당신>이 모두 시청률 5위권내에 들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국희>는 우리나라 초창기의 여성 기업인의 좌절과 성공을 그린 드라마로 공영성이 담보돼 있다는 사실에 명분이 선다. 그리고 곳곳에 삽입된 갈등구조와 극적인 내용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채널에 머물게 한다.

시원시원한 대사와 몸짓의 김혜수와 원숙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손창민, 상큼한 맛의 연기로 눈길을 끄는 정선경이 어우러지면서 극의 상승곡선을 더욱 가파르게 하고 있다.

MBC TV 드라마국에는 소위 스타 PD들이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쓰리리(Three Lee)로 일컬어지는 이창순, 이진석, 이승렬의 연출력이 쉽사리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평이다.

SBS는 불과 한달전에 누리던 영화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드라마 스페셜 <해피 투게더>에서 <퀸>으로 이어지던 수·목 밤시간대는 소위 ‘SBS판’이었다. 하지만 판이 뒤집혔다.

사실 방송3사의 드라마 전성시대는 궤적을 그리고 있다. SBS TV 드라마가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때 드라마를 총괄하는 SBS 제작본부 안에서는 언젠가는 양보해야할 정상 자리에 대해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SBS TV는 정상 재탈환을 위한 잠시 쉰 것 뿐이라며 뉴밀레미엄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확보를 위해 연말 영화속의 드라마인 <러브스토리>와 우리나라의 현대 정치경제사를 가상공간으로 옮겨 가볍게 터치하는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인 <신화>를 준비하고 있다.

방송사의 예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드라마 제작비다. 편당 1,000만원에서 1억여원까지 규모와 비중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된다. 하지만, 많은 드라마가 외주제작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방송사가 갖는 기대치만큼 드라마제작이 수월한 것이 아니다. 50% 가까이 많은 출연료를 보장해주는 외부 프로덕션을 더 선호하는 연기자들이 방송사 PD의 캐스팅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능력있는 작가들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게 됐다. 이래저래 인간적인 정으로 접근해야 하는 일선 PD들은 더 노심초사 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인간사가 존재하는 한 드라마는 존재한다. 그리고 드라마도 생명체처럼 자라나기도 스러지기도 한다. 드라마의 인기도 생명수가 있을 때 활짝 꽃 피우게 된다. 방송사 역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처럼 언제까지 ‘드라마 왕국’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다가오는 새 밀레니엄에 어떤 방송사가 칼 자루를 쥘 수 있을지 아직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말이다.

오태수·일간스포츠 연예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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