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맛과 향이 있는 분위기있는 영화

10/20(수) 20:56

제작, 각본, 연출, 연기를 모두 아우르는 젊은 재간꾼으로 에드워드 번즈를 빼놓을 수 없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비상식적인 임무의 의미를 묻던 고집스런 표정의 레이번 일병역이 가장 널리 알려진 번즈의 출연작이다. 그러나 선이 가는 얼굴, 꼭 다문 얇은 입술에 머무는 시니컬한 미소, 낮고 성긴 음성의 이 젊은 배우는 자기 분위기와 장기, 경험들을 살린 정감 넘치는 영화로 차근차근 경력을 쌓고 있다.

번즈는 제작, 각본, 연출, 주연을 도맡은 ‘맥멀랜가의 형제들’로 1995년 선댄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동성애나 마약 등을 소재로 한 직설적인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던 선댄스영화제의 유행과는 거리가 먼 삼형제의 아기자기한 애정사와 자기 일 찾기를 그렸다. 1996년 작 ‘그녀를 위하여’와 1998년 작 ‘치즈 케익과 블랙 커피 No Looking Back’(18세 이용가 등급, 폭스 출시)도 젊은이들의 최고 관심사인 남녀간 애정과 장래 진로 문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배경으로 항상 부모 세대의 어긋난, 애틋한 사랑을 깔고 있는데 여느 젊은 영화와 차별화되는 점이기도 하다.

‘치즈 케익과 블랙 커피’는 원제목이나 내용에서는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 우리말 제목이지만, 영어음을 그대로 차용하는 무성의에서 벗어나 기대를 하고 골라 보게된다. 그리고 그 기대는 세심한 관찰과 표현력에 힘입어 바람이 차가워진 이 계절, 따뜻한 부엌 식탁에 앉아 갓 구어낸 치즈 케익에 엷은 원두 커피를 곁들여 먹는 느낌으로 남게된다. 철 지난 바다가 내다 보이는 창 넓은 부엌에 스웨터 차림으로 앉아 있다고 상상하면 더욱 좋겠다. 영화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는 장치로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비가 자주 흩뿌리는 초겨울, 바닷가 작은 마을. 클로디아(로렌 홀리)가 일하는 식당에 3년전 새로운 세상 운운하며 떠났던 찰리(에드워드 번즈)가 찾아와 예전처럼 사랑을 해보자고 유혹한다. 무정하게 떠났던 찰리로 인한 상실감을 달래준 성실한 마이클(존 본 조비)과 동거 중인 클로디아는 찰리를 비난하고 멀리 하려하지만, 식지 않고 있던 사랑이 점차 달아오름을 느낀다.

선댄스영화제를 주관하고 있는 대스타 로버트 레드포드가 계속 제작비를 대주고 있는 번즈는 그의 젊음이 다할 때까지, 애정과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의 초상만을 그린다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연출한 세 작품을 차례로 보기를 권하며, ‘치즈 케익과 블랙 커피’는 특히 호주 영화 ‘크로싱’과 비교해보면 좋겠다.

옥선희·비디오 칼럼니스트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