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어린 소녀들이 몰려 다닌다.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모습들, 여성스러움이 어렴풋이 비치는 소녀들,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함께 헤매는 모습들이다. 여자에게 있어서 여자친구는 누구이고 어떤 의미인가.

여자들은 말한다. 여자친구들은 좌절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고 한사람의 여자로 또한 한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하게 한다고. 또한 여자의 인생에서 여자친구는 여자 자신의 모습을 비쳐주는 거울이라고.

사민서각이 펴낸 ‘여자들의 친구’는 이같은 여자와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책이다. 심리학에 관한 책들을 주로 출판하는 미국 밀 출판사의 발행인 타마라 트레더와 심리치료사 카르멘 르네베리가 쓴 이 책은 여자와 여자친구의 관계를 중심으로 여자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정의하려고 하고 있다. 생생한 현장인터뷰를 담은 이 책은 20대부터 70대까지의 여성들이 자신의 사랑과 모험, 실패와 승리,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여자친구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존재로 다가오는지를 깨닫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숙사에 있을때 개미와 바퀴벌레 때문에 문제가 많았어요. 그러나 관리인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기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살아 있는 바퀴벌레를 있는 대로 모아서 사감 선생님의 방문 아래로 집어넣었죠. 한 20초가 지났을까 소름이 오싹 끼치는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나이든 조그만 사감이 발가벗은채로 뛰쳐나오는 거예요. 물론 그후로 바퀴벌레가 말끔히 사라졌지요’(말썽꾸러기 소녀들)

‘소녀들에게 중요한 성교육은 월경과 패드, 탐폰을 다루는 것이다. 신체의 생리학적 변화를 배우기 위해 여학생들만 한 방에 들어가 교육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생리를 저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을 듣고 생리기간 중에 수영을 해도 되는지에 관해 듣지만 결정적인 정보는 친구들로 부터 배우게 된다. 즉 어떻게 탐폰을 끼우느냐 등등 핵심적인 정보는 결국 우리 여자친구로부터 얻게 된다. 그런 문제를 엄마에게 묻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쉿, 섹스에 관해서는?)

함께 몰려다니는 소녀 ‘동지’들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혼자서는 감히 할 수 없던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하며 또한 용기를 잃게 되었을 때 즉시 미성숙한 어린이로 돌아올 수 있게하는 안전핀이 되어준다.

이 책에는 여자와 여자친구들 간의 다양한 모습의 우정을 볼 수 있다. 비슷한 유머 감각때문에 생겨난 우정, 아픈 상처를 공유하면서 갖게 된 우정, 비슷한 점도 특별한 계기도 없으면서 첫눈에 반해 생긴 우정, 자신들만이 들을 수 있는 영혼의 울림으로 시작된 우정, 너무나 달라서 만들어진 우정…. 이렇게 다양한 우정의 모습이 성공하기도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이야기를 통해 여자에게 여자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여자가 여자친구와 나누는 우정은 나름대로의 성장과정을 거친다. 이 책은 이같은 성장과정을 반영하기 위해 수집한 이야기들을 ‘함께한 소녀 시절’‘친구의 발견’‘우정을 음미함’‘변화속에서 살아남기’‘우정을 위한 이벤트’등 크게 다섯가지 주제로 묶었다.

남자를 기준으로 여자들의 삶을 비교하거나 아니면 남자를 통해서만 여자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했던 기존의 여성이야기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 책은 ‘여자친구’라는 새로운 화두로 다가 올 것이다.

김철훈·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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