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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잔치와 문화, 영화제와 영화

잔치는 좋은 일이다. 모두 즐겁게 놀고 만나고. 잔치는 풍성하다. 평소 보지도, 먹지도 못해던 것들이 준비된다. 가난한 집 아이는 무엇보다 배불리 여러가지를 먹을 수 있어 좋아한다. 그러나 그 뒤에 닥칠 더 배고픈 나날을 모른다. 빚을 내 잔치를 벌였으니 살림은 더욱 궁핍해지고, 양식 살 돈마저 없으니 아이의 영양은 점점 부실해진다.

문화란 것도 마찬가지다. 한꺼번에 많이 먹고 한동안 외면하면 그 문화는 건강할 수 없다. 우리의 영화는 연일 잔치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남의 잔치를 우리 돈 들여 마련해 주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열리는 영화제. 부천국제 판타스틱영화제가 끝나기가 무섭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시민영화제, 인권영화제에 사이버영화제까지. 영국영화제 독일영화제 등 작은 것까지 합하면 무려 수십개. 여기에 국제행사가 열리면 으레 그속에는 영화도 들어있다. 내년에는 전주서도 국제영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잔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영화산업이 탄탄하면 탄탄한대로 영화제를 열어 해외수입업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취약하면 우수한 외국영화를 보고 우리영화의 나아갈 길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또 영화상영문화가 척박하고, 할리우드 오락물에 편중된 현실에서 좀처럼 감상하기 어려운 예술영화들을 영화제를 통해 만나는 일도 즐겁다. 마니아들로서는 이런 영화제야말로 귀중한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끝났다.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입장권이 동이나고, 650여명의 해외 게스트들이 부산을 찾았다. 54개국 208편의 필름이 12개극장에서 연일 돌아갔으며 PIFF광장은 연일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초청작품도 수준급이다. 국제영화제 수상작들이 즐비했고, 유명 단편과 다큐멘터리까지 한데 모았다. 영화잔치로는 더없이 화려하고 풍성하고 떠들썩했다. 마니아들은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는 잔치의 목적을 잃었다. 특색이 없다. 양만 갈수록 늘리는 잔치. 굳이 말하자면 마니아들의 잔치요, 배급자 수입업자들의 홍보장이다. 한국영화산업과 영화문화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아시아 영화의 창’이란 이름도 구색맞추기에 급급한 다른 영화들 때문에 그 빛이 가려졌다. 처음으로 개막작을 한국영화 ‘박하사탕’으로 했지만 여전히 한국영화의 해외 알리기는 미약하다. 부산프로모션플랜(PPP)이 있지만 그것으로 아시아영화와 한국영화 투자기반을 조성하는 영화제라고 말하긴 어렵다. 비경쟁영화제니 세계우수영화들을 발굴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냥 거대한 영화 상영장이란 비판이 나온다. 더구나 그것도 일부 마니아들만을 위한. 이렇게 극단적인 빈정거림도 있다. “부산영화제는 소수의 영화관계자와 일부 마니아, 10대 부산 청소년, 외국영화제작자와 한국수입업자 몇 천명의 잔치”라고. 순수 외국 영화팬이 부산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의 작품이 노미네이트 되는 경쟁영화제가 아니니까 유명스타들이 오지 않는다. 대신 한국에 영화를 팔려는 해외배급자와 초청작을 이미 수입한 국내 영화사들의 거대한 홍보장일 뿐이다. 프랑스는 정부차원에서 부산영화제를 홍보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역시 하나도 다르지 않다.

마니아들의 열기는 또 어떤가. 예술영화상영문화의 향상과는 별개다. 그들 역시 일회성으로 영화제에서 난리를 칠 뿐, 그 이후에는 냉담하다. 그래서 “영화제에서 난리를 친 것을 믿고 개봉하면 참패한다”속설까지 나왔다. 이런 잔치에 정부는 7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지원했다. 부천영화제에도 2억원을 주었다. 잔칫집 부조금으로는 너무 많다. 그게 아니고 워낙 척박한 예술영화의 감상 기회를, 그것도 몇명의 마니아들을 위해 마련해준 것이라면 어리석다.

예술영화 전용관이라고 나선 극장들이 모두 수익성이 없어 포기한 현실. 그래서 예술영화가 할리우드 상업영화와 같은 규모와 마케팅으로 개봉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 돈은 일회성 축제보다 예술영화상영을 위한 기반조성에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처럼 예술영화가 특정극장에서 장기적으로 프로그램을 갖고 상영될 때 예술영화는 늘 우리곁에 있게 되고 한국영화의 예술성도 모색된다. 등급외 전용관보다 더 소중하고 시급한 것이 예술영화전용관이다. 일회성 잔치에 아까운 돈을 낭비하지 말자.

이대현·문화부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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