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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휴화산 SK] 오이밭에서 신발끈만 맸을 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

“오이밭에서는 신발끈을 매지 않으며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쓰지 않는다”는 속담으로 쓸데없이 의심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4대그룹중 SK그룹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매우 깨끗하다.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 SK그룹을 성장시킨 최종현 회장 등에 대한 일반인의 이미지는 다른 4대그룹의 경영자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참신하고 양심적이다. 그러나 1953년 수원의 중소 섬유공장이던 ‘선경직물’이 46년만에 ‘한국의 4대재벌’인 SK그룹으로 급성장한 과정의 이면에는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는 속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 소장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SK그룹의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은 무명의 지방 기업인에 불과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수원공장과 서울 동대문시장을 오가며 억척스럽게 장사를 했지만 재계 정상권으로 진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부정축재처리법으로 기존의 기업인들을 단죄하고 ‘도와 줄 만한’참신한 경영자를 찾으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1961년 10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선경직물 수원공장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선경직물’이 수출전선의 첨병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선경직물’이 군사정부의 후원을 받게 된 배경은 순전히 ‘선경직물’이 ‘도와 줄 만한’가치가 있었기 때문일까. 당사자들은 물론 “억울하다”고 하겠지만 군사정부의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선경직물’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점은 ‘정경유착’이라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실제로 최종건 회장과 이후락씨는 막내 딸(예정)과 막내 아들(동욱)을 결혼시킬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소어(小魚)가 대어(大魚)를 먹었다’는 말을 유행시킨 1980년 선경의 유공인수 과정도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다. 신군부의 위세가 서슬퍼렇던 1980년 11월27일 정부는 매출액이 1조1,200억원에 달하는 거대기업인 유공을 매출액 2,000억원의 중견회사인 선경㈜에 넘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선경이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사우디에서 5만배럴의 석유를 도입한 것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공인수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던 삼성, 현대, 대한항공, 효성, 동아건설, 코오롱 등 다른 재벌들은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정부가 유공인수의 조건으로 내건 항목중 원유도입실적을 제외하고는 자체자금조달, 원유도입을 다변화할 수 있는 해외지사망, 정유회사 운영에 필요한 전문인력 등에 있어서 선경이 삼성, 현대 등에 비해 뛰어나지 못하다는 평가였다. 실제로 당시 선경은 인수자금(671억7,800만원)의 대부분을 차관으로 조달해야 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좋은 형편이 아니었다.

1988년 9월13일 선경그룹이 대통령의 사돈기업이 된 뒤에는 그같은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대통령 가문과 사돈을 맺은뒤 최종현 회장은 “대통령이라고 해서 굳이 사돈을 맺지 못하라는 법이 없다. 배우자 선택은 당사자 스스로 하는 것이지 자식들을 ‘정략의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다. 대통령과 사돈을 맺는 것이 정경유착은 아니며,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돈끼리 부정한 방법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때 정경유착이 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회장의 다짐과는 달리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 말년인 1991년과 1992년에는 석연치 않은 많은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이동통신사업자 선정’과 ‘태평양증권’의 인수였다. 특히 당초 예상대로 이미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이 입증된 이동통신사업(현재 SK텔레콤)이 당시 선경그룹에게 돌아간 배경에는 숱한 의혹이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1992년 8월 정부가 선경그룹을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하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선경그룹이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인 삼성, 현대 등을 원천적으로 경쟁대열에서 배제했으며 선정기준도 선경에게 유리한 것만을 적용했다는 얘기였다. 특히 은행감독원이 1992년 3월 105개 업종의 자기자본 지도비율을 발표하면서 유독 선경의 계열사인 유공이 속한 석유정제업의 비율을 35.2%에서 27%로 대거 낮추자 “노대통령이 임기 말년에 사돈기업에게 보답하려 한다”는 소문이 항간에 퍼지기도 했다.

이밖에도 SK그룹은 최근 ‘문건파동’의 장본인인 문일현 중앙일보 기자가 SK텔레콤이 제공한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의혹을 받기도 했다. SK그룹이야 억울하겠지만 이번에도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는 말을 실감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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