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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력·권력 사이 줄타기서 '삐끗'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 ‘진나라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며 이름조차도 ‘최초의 황제(始皇)’라고 지었던 진시황.

그러나 그는 몸안에 진나라 왕족의 피가 단 한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진시황의 실제 아버지는 여불위(呂不韋·?~기원전 235)라는 대상인(大商人) 이었다.

여불위의 아들인 진시황이 황제가 된 연유는 이렇다. 하남성 출신의 거상(巨商)인 여불위는 조(趙)나라 수도 한단(邯鄲)에서 볼모로 잡혀 온 진나라의 보잘 것 없는 왕족인 자초(子楚)와 친교를 맺는다. 여불위는 막강한 금력을 동원, 권력을 얻기로 마음먹고 공작을 꾸민다.

자초의 아버지이자 진나라 왕위계승자인 안국군(安國君)이 총애하는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뇌물공세를 펼쳐, 자초를 후계자로 삼게 한다. 또 이미 자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애첩을 자초에게 시집 보내는데, 그 태아가 진시황이 된 정(政)이었다.

여불위는 자신의 공작대로 자초가 안국군의 뒤를 이어 장양왕(莊襄王)이 된 뒤부터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휘둘렀으나 결국 자신의 아들인 시황제의 노여움을 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요컨대 여불위는 금력으로 권력을 사려 했으나 결국 자신이 추구했던 권력으로 파멸했던 것이다.

‘금력과 권력’의 미묘한 함수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 일가의 시련은 여불위의 시련과 닮은 점이 많다. 여불위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려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처럼, 3공화국부터 문민정부까지 핵심권력과 맺은 돈독한 관계 때문에 ‘권력에 대한 유연성’을 상실한 조회장 일가가 고집을 부리다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의 최근 시련은 조회장 일가가 자초한 면이 크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20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 사고(4월15일 상하이 사고)는 오너경영의 실패를 보여주는 케이스다. 전문경영인이 나서 인명을 중시하는 경영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경고했을 때 ‘제대로 행동했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평가이다.

김대통령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98년이후 1년 4개월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12차례나 계속됐다.

특히 98년 10월 빈번한 사고 때문에 건교부로부터 ‘6개월간 국내선 운항감축’이라는 중징계를 받은뒤에도 3월15일 포항에서 비행기가 착륙중 동체가 동강났고, 4월15일 상하이에서 또다시 화물기가 추락했던 것이다. 대한항공 경영진에 대한 청와대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4월22일 한진그룹이 단행한 인사는 기대이하였다. 조중훈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조양호 대한항공 사장이 회장자리에 앉았다. 비록 조양호 회장의 승진은 ‘대외업무만 맡겠다’는 약속이 붙기는 했지만 경영실패 책임에 대한 문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또 경영퇴진을 약속했던 조중훈 회장이 대한항공 회장직에서만 물러났을뿐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등 나머지 5개 계열사 회장직은 그대로 유지키로 한 것은 누가 봐도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한진그룹의 이같은 소극적이지만 명백한 반발은 엄청난 사태를 유발했다. 6월19일 국세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착수, 1조895억원의 탈루소득을 적발해 한진그룹과 조회장 일가에 모두 5,416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또 조회장 일가 3부자가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창피한 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조회장 일가는 왜 처음부터 적극적 대처를 하지 못한 걸까.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이 과거 자신들이 쌓아온 인맥을 너무 믿은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98년 이후 대한항공기의 잇딴 사고에 대한 건교부와 국회 상임위의 대응은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다. 건교부는 98년 8월 김포공항 활주로 이탈사고에 대해 당초 서울~도쿄 노선의 주2회 감편운항 조치를 내렸으나 이후 운항좌석수 7% 감축으로 수위가 낮아졌다.

또 국회 상임위 속기록에 따르면 상당수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이상하리만치 대한항공에 우호적이었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진이 대통령의 경고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은 결국 자신들이 구축한 막강한 로비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45년 조중훈 회장이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만들면서 시작된 한진그룹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권력핵심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다. 요컨대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사주로서 조회장 일가는 정권 핵심은 물론 외국에서도 각별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특히 조회장 일가는 정치자금을 제공하는데 그친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정권에 대해 때로는 적극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다. 5공시절 전두환 대통령의 특명을 띤 조회장은 당시 프랑스 경제인들에게 “만일 프랑스가 북한을 승인하면 대한항공은 프랑스 비행기를 한대도 구입하지 않겠다”고 경고, 프랑스의 대북 수교를 저지시켰다는 것이다.

조회장은 가깝게는 92년 대선때 당시 김대중후보의 경쟁자였던 김영삼 민자당 후보를 공공연하게 지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야당 일각에서는 현정부의 대한항공에 대한 일련의 조치가 ‘구원(舊怨)’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바야흐로 세무조사와 강도높은 검찰수사 등 온갖 공권력이 한진그룹 조회장 일가를 옥죄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조회장 일가를 조이는 현 정권은 “모든 것이 조회장 일가가 저지른 업보”라는

입장이다.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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