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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복권에 뒤덮인 사회

복권발행 31년째. 올해로 한 세대의 교체기를 맞은 한국 복권시장이 마침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한명에 최고 20억원 당첨이 가능한 밀레니엄 복권이 11월15일 발매되면서 복권시장 쟁탈전에 열기를 더하고

복권천하 쟁패전이 촉발된 것은 90년 주택은행의 21년 독점체제가 무너지면서부터. 현재 시판중인 복권은 8개 기관에 13종. 주택은행이 추첨식 2종과 다첨식 1종, 즉석식 1종을 발행해 아직은 패자(覇者)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어 국민체육진흥공단과 과학문화재단이 각각 2종을 발행해 시장의 한축을 점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과 중소기업진흥공단, 지방재정공제회, 제주도, 임업협동조합도 1종씩 내놓아 군웅이 할거하는 양상이다.

‘공익사업 기금조성’본래취지 퇴색

여기다 환경부, 통일부, 국방부, 철도청 등도 복권발행을 추진중이라 경쟁은 가열될 전망이다.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은 글로벌 경제시대의 금과옥조. 하지만 복권 범람에 따른 폐해가 지나쳐 문제다. 공익사업 기금을 조성한다는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사행심을 더욱 부추긴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왜 기금조성에 차질이 생길까.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이다. 재고가 쌓이고, 판촉비가 늘어나면서 손실액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현재 복권발행량을 보자. 추첨식 3종과 다첨식 1종의 매주 발행매수는 2,220만매. 2000년 1월15일까지 한시적으로 발행되는 밀레니엄 복권이 1,500만매. 2~3달 간격으로 발행하는 즉석식 8종이 모두 5,300만매. 1년간 발행되는 복권이 밀레니엄 복권을 빼고도 12억7,760만매에 이른다.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장당 2,000원하는 밀레니엄 복권과 다첨식 또또복권을 제외한 나머지 복권은 장당 500원이다. 3달동안 발행되는 복권의 총 액면가는 밀레니엄 복권 300억원, 또또복권 720억원, 일반 추첨식 복권 3종이 960억원, 즉석식 8종이 265억원이다. 모두 합하면 약 2,245억원. 1년에 약 7,780억 어치가 발행되는 셈이다. 밀레니엄 복권을 합치면 1조원이 넘는다.

기금 적립은 어떻게 될까. 적립되는 기금은 총 판매액에서 복권의 법정 당첨금(판매액의 50%)과 소매상의 수수료, 인쇄·추첨·광고비를 포함한 발행비용을 뺀 나머지 돈이다. 적립금 규모에는 복권 판매량과 수수료, 발행비용이 큰 영향을 미친다. 적립금은 복권이 많이 팔리면 규모가 커지고 안팔리면 보잘 것 없게 된다. 수수료 등 유통비용과 발행비용이 커져도 적립금은 줄게 된다.

주택은행과 국민체육진흥공단 2곳에서 복권을 발행하던 92년 복권 실판매액은 약 2,300억원이었다. 발행기관이 8곳으로 늘어난 올해 실판매액은 3,200억원. 판매액 자체가 늘었기 때문에 기금 적립액도 절대액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적립률을 29%로 잡았을 때 올해 8개 기관이 적립할 총 기금액은 1,000억원 남짓이 된다. 하지만 발행기관별로 복권 판매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판매율이 낮은 기관은 공익기금 치고는 ‘푼돈’에 가까운 돈을 적립할 수 밖에 없다.

복권범람, 판매율·기금 급감

복권은 본래 판매수익에서 얻는 적립기금으로 공익사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러나 적립금이 이렇게 적으면 어느 세월에 공익사업을 할 만큼 돈을 모을 수 있을까. 한마디로 백년하청이다. 본래 취지는 간데없고 복권만 판을 치게 된다.

한정된 규모의 시장에 복권이 범람하면서 판매율도 급감하고 올들어 팔리지 않은 복권은 8개 기관에 따라 30~70%에 달했다. 폐기되는 복권의 발행비와 배송비용은 고스란히 허공에 뜨게 된다. 발행기관들이 정확한 수요예측없이 무조건 찍어댄 결과다.

과당경쟁은 기금 적립률 저하로 연결된다. 발행기관들이 외상판매와 덤핑판매, 경품제공 등 물량공세를 벌이는 탓이다. 판촉비 지출 비율이 커지면 기금 적립률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기업복권과 적립복권 등 6개 복권의 기금 적립률이 95년 23.6%에서 올들어 15.6%로 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감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복권은 판매액의 40.4%(331억원), 기업복권은 38%(69억원)를 판촉비와 판매수수료로 지출했다. 이에 반해 지점을 통한 자체 판매망을 갖고 있는 주택은행은 지난해 36.5%의 비교적 높은 적립률을 기록했다.

복권시장이 저수익, 저판매의 난맥상을 보이는 데는 정부의 복권정책 부재도 한 원인이 되고 과거 복권 발행과 유통을 통합조정했던 기구는 국무조정실 복권발행조정위원회. 하지만 이 기구는 지난해 말 규제완화 차원에서 폐지됐다. 대신 올초 건교부 산하에 발행기관과 주무부처가 참여하는 복권발행협의회가 설치됐지만, 공식회의 한 번 열지 않았을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발행종류·기관 난무 ‘복권공화국’

복권 범람에 따라 착실한 노력보다는 ‘한탕주의’가 확산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최근 각종 매장에서는 복권을 경품이나 고객 확보용으로 배포해 복권이 선물용으로 둔갑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97년에는 교육부가 학교발전기금 조성 방안으로 학교별 복권발행을 검토하기도 해 비난을 산 바 있다. 복권바람을 타고 인터넷을 통해 해외복권을 불법 판매하는 사례도 적발됐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복권형식의 상품판매는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복권 공화국’으로 가고 있는 징후가 보인다는 우려가 단순히 기우만은 아닌 셈이다.

복권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복권은 미성년자에게는 판매하지 않도록 업계에서 자율규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복권 자동판매기가 나와 있는 마당에 규제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소매상에서도 어느정도 따라줄지 미지수다.

복권은 사행심 조장 품목으로 지정돼 복권판매 회사는 보증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권의 사행성 여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복권은 도박이나 경마 등과 달리 당첨에 기술이나 베팅이 적용되지 않고, 오로지 행운만 작용하기 때문에 사행성이 없는 오락품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성실성보다 요행이 우선하고, 일종의 중독성이 있는 복권은 정신을 좀먹는다”며 사행성을 강조한다.

통폐합등 정리필요성 제기

복권의 기능에 대한 시비도 그치지 않고 있다. 조세저항을 우회해 특정 목적의 재원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준조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소득 재분배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세종대 경제학과 이재기 교수의 이야기. “복권은 역진세의 성격을 띤다. 부유층보다는 서민층이 주된 수요자이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가질 수 없다. 현재 상황에서는 적립기금도 미미해 실질적인 공익사업에 도움이 안된다. 발행기관이 난립해 비용이 너무 들기 때문이다. 복권을 정리·통폐합해 질서를 세울 필요가 ”

복권 유통과정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잠정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1순위로 온라인 복권 도입을 꼽는다. 온라인 복권은 수요자가 돈을 내고 단말기에서 6개의 숫자를 선택한 뒤 추첨일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 기존 복권과 달리 온라인 복권은 발행비용과 유통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않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주택은행 복권팀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 복권은 유통구조를 100% 개선할 수 있다. 단말기 5,000~1만대를 전국에 설치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장년기에 들어선 한국의 복권은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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